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멘달 Oct 24. 2022

나의 참새 방앗간

공간이 주는 힘에 대하여

  나는 예전부터 내가 자주 가는 곳 근처에 늘 단골 카페를 정해 두는 편이다. 하고 있는 일이 외부 출강이 잦은 편이라 새로운 곳에 가 볼 기회가 많은데 늘 새롭게 일하게 되는 곳의 근처를 세심하게 둘러보고 내 취향의 카페를 정해두어야만 마음이 편하다.

수업이 있는 날은 적어도 30분 전에 미리 도착한다.(소심한 완벽주의자라) 이때 나의 아지트에 들러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리는 것이 수업 전 늘 있는 나의 루틴이다. 어떤 카페가 내 아지트로 선정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저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내 몸이 느끼는 반응에 의해 결정될 뿐.


  매주 목요일 오후에 나는 이대 후문 근처에 있는 유치원에서 음악과 꽃 수업을 진행하는데 마침 그 근처에 <필름포럼>이라는 카페가 있다. 주로 독립 영화들을 상영하는 작은 영화관을 겸하고 있는 이 카페는 건물 지하 2충에 위치하고 있지만 건물 구조가 특이해서 커다란 창 밖으로 하늘이 보이는 중정이 자리하고 있다. 날씨가 좋으면 중정에 있는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내가 마치 정원이 있는 지상 카페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어쨌든 그 중정 덕분에 사계절 내내 나는 맛있는 커피를 홀짝이며 창 밖으로 지나가는 계절과 그날그날의 다양한 날씨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도착하는 시간은 늘 오후 세시 반. 손님이 그다지 많지 않은 시간이라 바리스타님은 늘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면 “어서 오세요”라며 나를 맞아주신다. 넓지도 그렇다고 좁게도 느껴지지 않는 적당한 규모의 카페 안에는 테이블 두세 개만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대부분은 홀로 앉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둘 혹은 셋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들어서면 편안한 분위기 속에 금세 나도 스며들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카페의 가장 큰 장점은 커피 메뉴이다. 늘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우유를 먹지 않는 내가 어쩌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날 식물성 크림을 사용한 아인슈페너와 오트밀 우유를 사용한 카페라테는 나에게 그날의 최고 힐링이 되어준다.

이렇게 매주 목요일 오후 나는 이 공간이 나에게 주는 에너지를 끌어안은 뒤 17명의 에너자이저들을 만나러 유치원으로 출동한다


  또 다른 나의 아지트는 5호선 전철역 오목교 역과 연결되어 있는 <예스 24 중고서점>이다. 이곳 역시 지하에 위치하고 있지만 꽤 넓은 규모의 서점이라 전혀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곳곳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 놓은 다양한 공간 덕분에 밝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든다. 한쪽에는 작은 카페도(만원 이상 책을 구입하면 모든 메뉴 천 원 할인!) 있어서 원하는 메뉴의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거나 일을 하기 편안한 공간이다. 나는 주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주말에  비가 내리거나 해야 할 일이 많으면 아이 손을 잡고 이곳에 온다. 나는 카페에 앉아 일을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카페와 어린이 코너를 왔다 갔다 하며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는다. 책 냄새와 커피 냄새 그리고 도란도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라들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 묘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인지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일 처리도 왠지 이곳에서는 빨리 해결된다.


  그러나 내가 가장 많이 들락거리는 아지트는 뭐니 뭐니 해도 아이의 학원가 근처에 있는 시나몬 롤 프랜차이즈 전문점 <시나본>이다. 약 한 달 전 새로 생긴 이곳을 처음 본 나는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시나몬 롤을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이곳은 넓고 쾌적한 공간이라 일하기도 좋지만 사방으로 창이 나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기 무척 좋은 곳이다. 게다가 맛있는 시나몬 롤까지 먹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 나는 이곳이 생긴 후부터 아이를 데려다주고 기다리는 일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되었다.


  카페… 라는 그 이름만 들어도 힘이 생긴다. 그곳에 가면 바리스타가 만들어주는 신선한 커피와 맛있는 메뉴를 먹을 수 있고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으면 비로소 혼자가 된다. 아무도 날 방해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동시에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온기는 느끼고 싶다.

오전 열 시. 오늘도 나는 오늘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다. 기분 좋은 시나몬 향이 코 끝을 찌른다.

작가의 이전글 소심한 완벽주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