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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Jul 15. 2022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부럽습니다

  선선해진 날씨도 고마운데 촉촉한 가을비까지 내려주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아침부터 꽃 시장에 가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차 시동을 걸고 여느 때처럼 오디오 북을 카플레이에 연결했다.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책 <불편한 편의점>을 어서 빨리 이어서 듣고 싶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너 알고 있었어?” 아이 친구 엄마이자 평소 가깝게 지내는 동네 언니였다. 그녀는 어서 빨리 무엇인가를 내게 알려주고 싶은 듯 짧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바로 본론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 왜 있잖아.. 우리 동네 골목에 새로 짓던 삼층짜리 건물. 그거 주인이 바로 미선이래.“


미선은 나와 동갑내기로  같은 동네 아이 친구 엄마이다. 그런 미선이 바로 그 건물의 주인이란 말에 나도 순간 흠칫 놀라긴 했다. “와~ 미선이는 이제 건물주네요?”라고 내가 말하자, “그러게 말이야… 부럽지 뭐야” 라며 그녀는 대답 끝을 어딘가 모르게 흐렸다.


  우리는 미선이 알뜰한 거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그렇게 그 큰 돈을 모았을까. 부터 대체 대출은 얼마나 받았을까 그리고 건물을 올리면서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을까 등등 끝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진 언니와의 긴 대화 끝에 마침내 통화는 종료되었다. 나는 이미 오디오 북을 듣고 싶은 마음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살짝 피로감이 몰려온 나는 질투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들을 껴안은 체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즐겨 듣던 클래식 방송에서 파헬벨의 <캐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렸을 적 피아노 학원에 다녀봤다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거쳐갔을 곡. 우리에게는 조지 윈스턴의 <캐논 변주곡>으로 더 잘 알려진 바로 그 곡이다. 나는 규칙적인 선율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마치 누군가의 시작을 기다리듯 낮은 음역의 베이스 악기가 동일한 두 마디를 반복해서 연주하고 있다. 이어서 마침내 등장하는 세 대의 바이올린은 돌림노래 형식으로 하나의 멜로디를 돌아가며 연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은 누가 누가 더 잘하나 뽐내듯 서로 흉내 내고 뒤쫓아 가며 그들만의 화려한 잔치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연주가 클라이맥스로 다다르던 순간, 여전히 지루하리 만큼 같은 음을 규칙적으로 연주하고 있던  낮은 베이스 소리가 내게 가슴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세 대의 바이올린이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묵묵히 바라봐주고 기다려주고 있는 베이스 선율.


  사는 동안 우리는 늘 화려한 순간을 꿈꾼다. 하지만 묵묵히 나를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는 시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순간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하루하루는 지루하리만큼 반복되는 베이스의 선율 같은 규칙 속에 만들어지겠지만 그 규칙 덕분에 우리의 삶이 오늘도 아름다운 선율로 흐를 수 있는 것 아닐까?


  빨간색 신호가 다시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가을비로 촉촉하게 젖은 검은색 아스팔트 위에서 나는 서서히 액셀레이터를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오디오 북을 켜고 볼륨을 높였다. 베이스 선율 같은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다.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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