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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Jul 05. 2023

힘겨웠던 여름의 초입, 아무것도 소용없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운 음악 한 곡과 책 한 권


  6월의 마지막 날을 향해 가던 어느 날이었다. 전날부터 내리는 세찬 빗줄기에 아침부터 연신 안전 재난 문자까지 날아오고 있었다.

그날따라 하필이면 삼청동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어 운전할 일이 걱정 되었다. 비 오는 날 운전을 좋아하는 나도 이  정도 비에는 후덜덜했다.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차 지붕 위를 뚫을 듯한 빗소리에 핸들을 꽉 쥐고 엉금엉금 기어가면서도 내내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반복해서 망설이던 중, 친구들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친구1: oo아~ 공연 잘 마쳤어? 비 오는데 차 안에서 Homegrown 듣는데 너무 좋아서 반복 중.

나: 나도 오늘 삼청동 가느라 운전 중~ 어디 나도 한 번 들어볼까나~

친구2:  오늘 같은 날씨에 딱이지!



  여자 둘, 남자 하나로 구성된 우리 셋은 네덜란드 유학 시절 만나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는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자주 보진 못해도 늘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가끔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음악으로 대동단결하는 사이다.


  나는 무심코 틀어두었던 라디오 채널을 끄고 애플 뮤직 보관함에서 같은 음악을 찾아 볼륨을 높였다. 빗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낯익은 멜로디에 차창 밖 풍경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떨어지는 빗소리는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고 음악과 함께 잘 어우러졌다. 지금 이 순간 카톡을 보내 나의 기분을 바꾸어 준 친구들이 새삼 반갑고 고마웠다.


  잔인한 6월이었다. 내 안의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고 텅 빈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참으로 재미없고 의미 없는 하루하루였다. 아직 진짜 여름은 시작도 안 했는데 싫어하는 계절이라고 너무 티를 내서 그런지 이번 여름은 시작부터 유독 혹독하게 나를 대했다. 신나게 일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드라마에 빠져 정주행 하던 지난날들이 그리웠다. 입맛은 어쩌면 이렇게 하루아침에 달아나 버릴 수가 있는 건지. 달아난 입맛은 쉬이 돌아오지 않고 내내 나를 힘들게 했다. 매일 기운이 없고 힘들어하는 모습의 엄마와 아내의 자리도 부담스럽고 싫었다. 5월 말에 앓았던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훨씬 더 전에 받았던 자궁근종 수술 때문인지 떨어진 체력의 원인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 시간은 참 덧없고 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바다를 닮은 파란 책 표지 위에 그보다 더 시원한 사이다 같은 제목이 적혀있는 책을 발견했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오래 묵혀있던 체증이 쑤욱 내려가듯 속 시원했다. 서로 애정하는 두 작가님이 각자의 삶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편지로 공유하며  함께 계절을 통과해 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저 서로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그럴 수 있지요. 저도 그랬답니다.“ 와 같은 마음으로 쓴 답장은 읽는 나에게도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 날, 비가 내리는 차 안에서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쿡쿡 웃음이 나왔다. 반절은 실없는 농담뿐인 우리들의 대화창은 그 작가들이 주고받았던 편지에 비해 다소 경박스러울지는 몰라도 따뜻함의 온도는 전혀 다르지 않았다.


텅 비었던 내 안의 에너지가 서서히 다시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잦아든 빗줄기 틈으로 반복 재생을 누르며 나는 서서히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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