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늦은 저녁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만 잠시 더 머무르려 했지만 막상 노래가 끝나고 나니 아쉬운 마음에 결국 같은 노래를 찾아 다섯 번쯤은 더 반복해서 들었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 나는 늘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에 잠시 앉아 음악을 듣다 가곤 했다. 왜 그랬을까? 치워도 치워도 늘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던 어수선한 집이 싫었던 것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말을 걸던 아이들 곁을 잠시 떠나 있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잠시.. 아주 잠시만 혼자 음악을 들으며 숨을 고르고 싶었던 거겠지. 이렇게 음악은 끊임없이 나를 기억 속 여기저기로 데려가더니 끝내 마지막에는 눈물을 글썽이게 만들고 말았다.
요즘 소리 없이 자주 우울해진다. 눈물도 많아졌다. 나이 탓일까? 어제는 친구와 톡을 주고받다가 별 것 아닌 말에 눈물샘이 폭발해서는 주책맞게 폰을 부여잡고 혼자 울었다. 한참을 울다 이게 울 일인가 싶어 친구의 톡을 다시 읽어보았다.
친구: 야 우리 아빠는 나랑 통화든 만나든 헤어질 때 마지막 말이 항상 그거야. 즐겁게 보내 즐겁게~
다시 봐도 딱히 울 만한 문자는 아니다. 이런 날 보고 친구는 아무래도 갱년기가 찾아온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벌써?라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사십 중반을 넘어 오십을 향해 가고 있는 나이니 이상할 것도 없지 싶다.
갱년기로 말하자면 나보다 여섯 살 더 많은 남편에게는 진작에 찾아오긴 한 것 같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말수도 부쩍 줄고 별것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평소에도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편이지만 요즘은 더 심해졌다.(대답을 안 하거나 눈을 안 마주친다) 상대방의 반응이 늘 신통치 않으니 나도 언젠가부터는 남편에게는 꼭 필요한 말만 아껴하게 되었다. 남편과는 연애기간까지 합치면 26년을 함께했다. 이젠 내 부모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함께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은 세월만큼 편하지가 않다. 왜일까? 주말 부부로 또 남편의 잦은 해외 출장으로 너무 오래 떨어져 지내서일까?
나는 이제 부재가 잦은 남편 대신 16살 큰 딸(어느새!)과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눈다. 아이는 듬직하고 생각이 깊다. 게다가 유머러스해서 대화는 늘 즐겁고 유쾌하다. 물론 틴에이져답게 가끔은 내 속을 뒤집어 놓기도 하지만 딸과는 여러모로 마음이 잘 맞는 편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궁합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데 다행히 아이와 나 사이의 그것은 꽤 괜찮은 편인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의 마음도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허전함을 눈치챈 아이는 친구처럼 철없이 마음을 털어놓는 엄마 때문에 어쩐지 좀 일찍 철이든 것 같기도 하다. ‘아~애한테 의지하는 부모라니.. 진짜 별로네 ‘ 하면서도 나는 또 딸아이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돈’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늘 한없이 작아진다. 개미처럼 일해서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어서인지 아무튼 ‘돈’이라는 것은 절대 모이지 않고 마치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살뿐이다. 일을 좀 더 늘려볼까? 싶어도 아직도 아이들에게 손이 많이 가고 게다가 체력은 점점 약해져서 조금만 무리해서 일하면 바로 몸이 신호를 보낸다.(그러면 돈이 더 든다) 이제는 일도 적당히 내 몸 상태 봐가며 해야 하는 그런 나이인 것이다.
문득 내게도 인생을 몇 년 앞서 살아가는 가까운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나 직장 선배 정도? 하지만 여고와 여대를 졸업해서 외국에서 학교를 오래 다녔고 직장 생활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게 그런 존재가 있을 리 만무하다. 물론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힘들 때마다 하소연하는 친한 친구는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친구는 친구이고 선배는 선배인 것이다.
어두운 주차장 한 구석에서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를 들으며 나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 그 ’ 선배‘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는 젊었을 때 세상 경험이 풍부해서 이제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고 말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알아서 맛집도 많이 알고 있다. 아마 그는 힘들어하는 나를 어느 허름한 식당에 데려가(하지만 숨은 맛집인)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다. 내 눈을 바라보며 내 이야기가 쓸데없다 하지 않고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고도 하지 않는 그런 선배에게 비로소 나는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선배, 지금 이 나이가 원래 이런 건가요? 중년의 부부가 이 정도면 그래도 양호한 건가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는 하는 건가요? 아이들이 크고 나면 그때는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을까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아쉽게도 노래는 끝났고 나는 선배의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