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튀김과 순대볶음을 앞에 두고 드는 생각
40대 이후부터는 야식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가끔 저녁에 먹고 싶은 메뉴가 떠오르더라고 꾹 참고 ‘내일 꼭 먹어야지~’ 하며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잠자리에 들던 기억만 있을 뿐.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설렘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나이가 들면 입맛도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걸까?
먹고 싶은 거? 아무리 생각해 내려해도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날이 더우니 입맛이 떨어진 거겠지.. 싶어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식욕이 없어짐을 느낀다. 배가 고프면 그때그때 먹을 수 있는 걸 먹을 뿐이다. 그렇다고 살이 빠지는 건 또 아니니 참 아이러니 하다.
주말 부부라 평일 저녁 메뉴는 늘 아이들 위주다. 시들시들한 입맛을 가진 나와는 달리 한창 성장기인 우리 집 아이들의 식욕은 입에 꿀을 발라놓은 듯 무시무시하기만 하다. 각자 원하는 메뉴도 먹는 시간대도 다르므로 아이 둘의 식사를 챙기고 나면 나를 위한 메뉴는 늘 최대한 간단히 차리게 된다. 출근해서 혼자 먹는 평일 점심 메뉴는 늘 김밥이나 샌드위치 그리고 가끔은 내킬 때 작업실 가까운 곳에 있는 도시락 집에 간다. 그곳은 점심에만 8000원에 날마다 다른 메뉴의 건강한 한식 뷔페를 먹을 수 있다.
며칠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들이 이어졌다. 더위에 무기력해진 몸과 마음은 더 입맛을 잃게 했고 식욕이 없는 삶은 나를 어딘가 욕구불만인 것처럼 매사에 시들시들하게 만들었다. ‘안 되겠어. 오늘은 오랜만에 도시락 집에 가서 꼭 점심을 먹어야겠어!‘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날이었다. 마침내 오전 일을 마치고 도시락 집으로 향하는 길, 오늘의 메뉴는 뭘까?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오랜만에 가 본 도시락 집 점심 뷔페의 가격은 9000원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메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지 튀김이었다. 그리고 순대볶음! 세상에~순대볶음을 먹어본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아주 옛날 소주를 앞에 두고 친구들과 안주삼아 먹었던 그 메뉴였다.
정성스럽게 국과 밥, 그리고 반찬들을 큰 접시에 가지런히 담았다. 오랜만에 군침이 돌았다. 어서 빨리 이 음식들을 하나하나 먹어보고 싶었다. 창가를 보고 앉는 자리에 홀로 앉아 제일 먼저 가지 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한 기름에 갓 튀겨낸 가지 튀김은 바삭바삭했고 거기에 곁들인 소스는 튀김의 느끼함을 싹 잡아줄 만큼 새콤달콤했다. 아, 그리고 순대볶음. 들깨의 풍미를 해치지 않는 적당한 매콤함에 볶아진 통통한 순대와 양배추 그리고 깻잎의 조화가 맛깔스러웠다. 어느새 한 접시를 다 비운 나는 배가 불렀지만 가지 튀김을 몇 개 더 가져다 먹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입가를 냅킨으로 닦으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입맛 없다고 징징거렸던 사람치곤 너무 많이 먹은 것 아닌가 싶어서~
계산을 하며 사장님께 가지 튀김과 순대볶음이 최고라고 엄지 척~해드렸다. 오늘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에 힘이 실려있었다. 사장님이 웃으며 자주 오라고 하셨다.
작업실에 돌아오던 길, 안 풀리던 수학 문제가 사실은 아주 쉽게 풀리는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처럼 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입맛이 없을 땐? 나가서 건강한 한 끼를 사 먹으면 된다. 왜냐하면 남이 해 준 요리는 다 맛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