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12월을 보내고 조금의 여유를 찾은 요즘,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와 책들을 틈나는 대로 섭렵하고 있는 중이다. 2025년 마지막 날에는 심은경 배우가 주연인 '여행의 나날'을 보기 위해 홀로 영화관을 찾았다. 평일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절반 이상의 좌석이 메워졌고 그중에는 나이대가 좀 있는 연인들 혹은 부부들도 꽤 많았다. 평일 오전에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나이가 많든 적든, 연인이든 부부든, 한 해의 마지막 날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의 표정은 설레고 행복해 보였다. 홀로 영화관에 앉아 그들의 다정한 둿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남자와 여자가 함께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심지어 평생을 함께하는 것일까? 과연 그 긴 여정 속에 사랑이라는 것은 끝까지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게 사랑이란 그저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다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설레고 좋을 때는 아주 잠깐(길어야 2년)이고 이내 서로 상처를 주고받다 헤어지거나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곁에 머물러있거나 그 둘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내일모레 오십을 바라보는 아줌마(나)에게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는 생각만 해도 너무 피곤한 일. 그런 것보다는 잔잔한 호수 같은 내 마음의 평정을 지키는 삶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나는 사랑이라는 정의를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에만 두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곁에 남아있다는 것은 사랑 그 이상의 감정일테니까. 그것은 연민일 수도 있고 동지애일 수도 있고 어쩌면 슬픔일 수도 있다.
“사랑은 완전한 이해 없이도 시작될 수 있다. 설렘과 직관만으로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깊은 사랑은 앎에서 자란다. 상대의 지난 시절 상처를, 반복되는 습관의 이유를, 말하지 못한 꿈들을 알아갈 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깊은 연대가 된다.”<최갑수 작가 ‘얼론 앤 어라운드’ 레터 중>
‘여행과 나날’ 영화 속 주인공은 각본가로서 슬럼프에 빠져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느끼다 홀로 여행을 떠난다. 깊은 산속 설국의 여관에서 무심하고 수상한 주인과 보낸 시간은 '어쩌면 끝'이라는 생각과 말로부터 도망쳤던 그녀에게 의외로 치유의 시간을 선물한다.
"이렇게 즐거웠던 건 오랜만이에요."
나도 살면서 혼자 여행할 날이 과연 올까?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혼자 무엇을 하는 것에는 늘 용기가 필요했던 나는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혼자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마침내 혼자가 되었을 때 막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될까 봐 때때로 두렵다. 하지만 나는 이제 용기를 내어 홀로서기를 완성해 보려 한다. 스스로 그것이 가능할 때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에서도 성숙한 내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