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늘 고3 수업 시에 전혀 의도하지 않게 오징어 게임을 주제로 토론을 하게 되었다.
이맘때 특성화고의 고3 교실은 참 수업하기 어려운 장소가 되었다.
이미 산업체 현장실습(취업)을 나가 있는 학생들이 있고, 예체능 입시 준비로 인해 결석하는 학생들, 그리고 어러 저런 이유로 결석하는 학생들이 발생한다.
교실에 남아 있는 학생들도 이미 취업이 확정되어 날짜를 기다리고 있거나 아니면 대학 수시전형에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많다.
항상 농담 조로 '몸만 학교에 있고 정신과 마음은 회사와 대학에 가있다' 고 선생님들끼리 말하곤 한다.
그날도 교실에 들어가니 재적 24명 가운데 절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날 보다 좀 더 아이들이 적었다.
보통은 밀도 있는 수업이 어려워 학습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여 학습하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또는 유튜브의 직업 관련 영상을 시청한다.
유튜브 영상을 틀어 주려고 채널에 들어갔는데 맨 위에 오징어 게임에 대한 리뷰 동영상이 있었다.
맨 앞에 앉은 녀석이 "샘 저거 보면 안 될까요?" 요청을 했다. 평소에 잘 요청이 없는 녀석이기도 하고 동영상 분량도 짧기도 해서 시청하기로 했다.
출처: 넷플릭스
멍하게 있거나 엎어져 있던 아이들도 집중하여 동영상을 시청했다. 2학기 때 실로 오랜만에 보는 아이들의 진지한 눈빛이었다.
"샘은 보셨어요?"
"그럼, 나는 나오자마자 바로 당일에 정주행 했지"
평소 네플릭스 애청자여서 오징어 게임이 올라오자마자 반나절을 꼬박 들여 바로 모든 회차를 완주했다.
"샘은 보시고 느낌이 어땠어요?"
"재미있게 봤는데 조금 신파가 넘 많은 것 같아"
"그래도 그런 게임들을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평상시에 수업활동에 소극적인 아이였는데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여 조금은 놀랐다.
그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의 모습이 좋았다', '기존의 생존 게임과는 다르게 현실적이다' 등과 같은 다양한
영화 감상평을 아이들이 자진하여 한 마디씩 했다.
2학기 때는 잘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활력 있고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기왕이면 단편적인 영화평을 말하는 것을 넘어 보다 교육적 효과를 가지게 간단한 토론을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국어 교사도 아니고 토론 전문가도 아니지만 짧은 시간에 의견을 편안하게 서로 교환할 수 있게 비경쟁식 토론을 하기로 하였다.
토론 주제는 '오징어 게임의 젠더 감수성 논란'으로 하자고 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잘 받아들였다. 젠더 감수성 논란에 대해 찬, 반의 의견을 가진 학생들을 나누어 의견을 정리하고 대표자가 발표하게 하였다.
나름대로 아이들은 자신의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였다. 양쪽의 의견 제시 후 상대편 의견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게 하였고, 몸만 학교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이 보이던 아이들이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의견들을 보여 주었다. 남학생들 중에도 젠더 감수성에 문제가 있음을 찬성하는 친구들도 있어고 여학생들 중에도 젠더 감수성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의 생각보다 아이들이 균형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시작 시에 비경쟁식 토론으로 하기로 하였기에 토론의 승자는 따로 정하지 않았고 내가 의견들을 정리하여 제시하여 주고 웹 상에서 제시된 의견들도 덧붙여 주었다. 오징어 게임을 보고 우연히 읽은 칼럼이나 영화평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모두 정말 열심히 활동하고 좋은 의견을 제시해 주었다고 칭찬을 하고 훈훈하게 수업을 마무리하였다.
토론 수업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부분도 있었지만 어쨌든 몸만 교실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적극성을 보이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교환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데 의미를 두었다.
수업을 마치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애들아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청불 아니냐?"
"에이 샘 고3인데 그리고 이제 선거권도 있잖아요."
"아 그렇네 참! 뭐 그래도..."
"샘 마이네임 보셨어요?"
"그럼 그것도 정주행 했는데"
"그럼 다음 시간에는 거기에 대해 얘기해 봐요"
"어 샘이 좀 고민해 보고...."
정말 의도치 않게 수업 시간에 청불 영화인 오징어 게임에 대하여 토론을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뭐 내가 보여준 것도, 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다 알아서 보고 왔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