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시간도 한 시간 늦춰지고, 무엇보다 2교시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에는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되는 굉장한 날이다.
아직 까지도 상당수의 학생들이 수시로 대학 진학을 하지만 일부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
정시로 또는 수시에 접수하지만 최저 학력기준이 필요하여 수능을 응시하는 학생들이다.
며칠 남지 않은 수능일에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초조해하거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고3 담임샘들은 아이들과 똑같이 긴장을 하고 있고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고3 담임이 아닌 선생님들 심지어는 중학교 선생님들도 수능일이 다가오면 긴장하게 된다.
바로 수능시험감독을 가야 되기 때문이다.
자녀가 고3 이거나 특별한 지병이나 사유가 있거나 퇴임이 임박한 원로교사가 아니면 대부분의 중,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수능 감독에 차출된다.
교실 내 수능 감독 2명이 번갈아 앉으라고 교실 내 의자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거의 대여섯 시간씩 서 있어야 돼서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선생님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민원에 따른 책임소재이다.
수능이 끝나 후에 다양한 민원들이 올라온다. 감독 선생님이 답안지를 잘 못 바꿔 주어서 시간이 소비되어 시험을 망쳤다. 감독 선생님이 너무 왔다 갔다 해서 신경이 쓰여서 시험을 망쳤다. 2교시 듣기 평가 시에 기침을 하는 학생이 있어 듣기를 못했다. 정말 다양한 민원 사례가 발생한다.
감독 선생님들은 정말 지침을 명확하게 숙지해야 되고 민원이 나오지 않게 철저히 감독을 수행해야 한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정해진 자리에서 가급적 움직이지 않고 서 있으려고 한다. 그리고 움직이게 되더라도 발소리를 내지 않기 위하여 신경을 쓴다.
나 역시 수능 시험감독 가는 날은 편한 운동화를 신는다. 발도 편하고 걷는 소리도 나지 않기 때문에 편리하다. 그리고 당일 아침 시험 시작 전 제공되는 물과 간식은 가급적 먹지 않는다. 짧게는 2시간 길게는 거의 3시간 가까이 교실에 있어야 되는데 소변이 마렵거나 배가 아프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이 전에 이러한 경험이 있어 이제는 습관처럼 아침에 나누어지는 간식과 물은 전혀 먹지 않는다. 오후에도 조금만 먹고 마신다.
작년부터 수능 시험장에 코로나 예방을 위한 투명 아크랄 판이 개인별 책상에 설치되었다. 덕분에 감독을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시험지, 답안지를 나누어 주는 것도 개인 신분확인을 위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도 더 어려워졌다.
이렇게 항상 두려웠고 싫었던 기억만 있었던 수능시험감독 경험 중에서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던 일이 있었다.
작년 수능 감독 때의 일이다. 수능 시험의 마지막인 4교시 때였다.
4교시는 탐구영역으로 아이들 별로 다르기 하지만 대부분 2과목을 선택한다. 수십 개의 과목의 인쇄된 시험 지중에서 자신이 선택한 과목을 꺼내어 따로 보관한다. 그리고 시정표에 맞추어 자신의 수험표에 적힌 과목 순서대로 과목의 시험을 치른다. 수험표에 적힌 순서대로 과목의 시험을 치르지 않거나 전혀 다른 과목을 꺼내어 풀고 있으면 부정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4교시의 첫 번째 과목의 응시 시간이 시작된 지 10분 정도 지난 후였다. 교실 맨 뒤쪽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손을 들어서 가 보았다. 그 학생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기가 잘 못된 과목을 풀고 있는 것 같다고 거의 울면서 이야기했다.
'낭패다!'
학생뿐 아니라 나도 그리고 정감독도 모두 당황했다. 자세히 학생이 선택한 시험지와 수험표의 과목을 비교해 보니 과목 이름이 길었는데 뒷에 네 글자는 맞았는데 앞에 두 글자가 달랐던 것이다. 학생들이 응시하기 전에 확인한다고 했는데 가림막이 있어서 나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바닥에 내려둔 시험지 뭉치에서 학생의 수험표에 있는 과목을 찾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긴 시간으로 느껴졌고 시험지를 찾는 내 손길이 슬로비디오처럼 느껴졌다. 해당하는 시험지를 찾은 후 학생에게 다른 과목의 문제를 풀게 되면 부정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았고 학생은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새로 찾아낸 원래 선택한 문제지를 풀라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10분 정도 지났지만 이건 본인의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학생은 열심히 부지런히 문제를 풀었다.
내 자리로 돌아가서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 마음속이 편지 않았다.
첫 번째 과목의 응시시간이 끝나고 학생들이 응시한 문제를 걷은 후 학생들의 책상에 올려져 있는 두 번째 과목의 문제를 꼼꼼히 확인했다. 특히 아까 맨 뒤에 있던 여학생의 문제지는 더욱더 꼼꼼히 확인했다. 학생의 표정은 아까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도 긴장을 많이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뭐라고 격려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도감독관과 수험생은 사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다만 눈이 잠깐 마주쳤을 때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드디어 4교시가 종료되고 정감독은 답안지와 문제지를 가지고 나가고 나는 교실에 남아 퇴실 방송이 나올 때까지 아이들을 관리했다. 정감독은 나가면서 고사본부에 상황을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정말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 10여분 지난 후 다시 정감독이 올라왔다. 고의가 아니였으니 부정행위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었다.
학생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해 주니 조금 전과는 다르게 정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고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교실을 나왔다.
그동안에는 수능 감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늘 피곤했던 것 같았는데 오늘은 조금 느낌이 달랐다.
그 여학생의 미소가 기억 속에 남으며 수능시험감독으로 처음 느껴보는 보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말 그대로 대학에 수학할 능력이 있는 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수능은 자심의 인생과 삶을 결정지는 시험이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그 사람의 남은 평생의 삶과 인생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잔혹한 일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학벌 위주의 능력사회란 이야기이다. 대입전형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이 주가 되는 수시보다는 시험으로 평가하는 정시가 공정하다고 하여 현행 고1부터는 입시제도가 바뀌고 정시의 비중이 확대된다. 하지만 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가진 자와 있는 자에게 유리한 입시가 될 수 있다. 현행 적자생존에 기반한 입시 위주의 경쟁적 교육체제는 결국에는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교육에서의 공정은 절차적 공정성에 기반한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를 추구한다. 시험과정만 공정하면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개인의 학력을 개인의 노력만으로 보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본인이 열심히 해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공부를 안 해서라는 이야기다. 일견 맞는 이야기 일 수 있지만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고액과외와 좋은 학원을 다니며 부모의 관심과 케어 속에서 걱정 없이 공부하는 아이는 좋은 성적을 거둘 확률이 높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과외는커녕 학원도 다닐 수 없고 생계를 위해 당장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아이가 좋은 성적을 거둘 확률이 높을까? 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고 너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공정성, 특히 교육에 있어서 공정성은 디그노크라시(존엄 주의)에 기반하여야 한다. 개인을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고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이를 지원하는 사회적 복지 지원체제가 갖추어져야 한다. 즉 아이들이 공정한 절차를 가진 시험을 제대로 치를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기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제는 시험장을 준비하는 학교도, 아이들을 지도하고 시험을 감독해야 하는 교사도, 자신의 인생을 단 한 번의 시험에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하는 아이들도 모두 힘들어하는 수능시험을바꿔야 한다. 그리고 입시위주의 우리의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교육을 받고 대학을 가던지 취업을 하던지, 또는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진로지원체제가 갖추어져야 하고 학벌이 아니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인정하고 대우해 주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학교교육이 아이들을 변별하고 줄세우기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이 원하는 진정한 배움을 지원해야 한다 이는 교육계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서 공정한 배움이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