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그렇게 우리 반의 폭력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종례시간이 되면 스스로 알아서 나와서 미리 엎드리고 기다리는 녀석들도 있었고 반성문도 누가 봐도 반성문처럼 보이게 적절하게 잘 써서 제출하고 있다.
그렇게 폭력의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반의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반의 '폭력의 시간'들은 전교에 알려지게 되었고, 학생부에서 학교폭력 담당교사로 영입 제안이 오기도 했다. 물론 다음 해 학교를 옮기게 되어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내 수업을 수강하는 평소에 조금 친분이 있는 다른 반 여학생들이 나를 보고 영화배우 같다고 말했다.
첫해부터 여학생들이 잘 따랐고 나름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해 있던 때라서 약간은 우쭐하면 말했다.
" 샘이 영화배우처럼 그렇게 멋져 보여"
" 그게 아니라 조폭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아요, 마지막 부분에 쇠 파이를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홀로 적진으로 향하는"
그러고 보니 종례를 가면서 한 손에 아이들이 잘못이 적힌 교무수첩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당구 큐대를 들고 걸어가면 복도에 있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옆으로 피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내가 조금 예민한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내가 교직에 입문하면서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는데....
언제나 변함없이 계속될 줄 알았던 우리 반의 '폭력의 시간' 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종례 시간에 체벌을 받는 아이들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당연히 오후에 나한테 전화나 메신저로 날아오는 아이들의 문제행동에 대한 제보도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1학기가 종료될 때쯤에는 '폭력의 시간'이 필요 없어 큐대 없이 종례를 가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아이들이 정말 철이 들어가는 것일까?' 나름대로 의문도 가져보기도 했지만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특성화고의 2학기는 매우 바쁘게 돌아간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취업)을 나가는 학생들이 있어 교실에 빈자리가 생기고,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어 실기시험이나 면접을 보러 가는 경우가 많아 모든 아이들이 다 교실에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의 관심이 학교보다는 학교 밖으로 향하면서 더 이상 '폭력의 시간'의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었다. 물론 자의적으로 알아서 학교를 안 나오는 녀석들은 부모님 상담을 통해 다시 나오게 하여 '폭력의 시간'들을 가졌지만, 원래 '폭력의 시간'이 생겨난 이유와는 맞지 않는 상황들이었다.
솔직히 많은 고민이 들었다. 아이들의 폭력, 음담패설, 선생님들에 대한 불손한 행동들의 교정을 위해 시작된 '폭력의 시간'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시점이 된 것이다. 그동안 말썽을 피웠던 녀석들도 이제는 취업을 나가겠다고 뒤늦게 전문대학이라도 가겠다고, 또는 직업훈련기관에 등록하겠다며 나름대로 졸업 후의 생활을 준비했다. 수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종례시간에 아이들에게 공식적으로 '폭력의 시간'을 종료하겠음을 공식 선언했다. 그렇게 강렬하게 시작하여 우리 반의 일상이 된 '폭력의 시간'은 종료되고 '평화의 시간'으로 전환되었다.
졸업식 준비를 위해 바쁘게 업무를 보며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던 어느 날 책상 서랍 하나를 가득 채웠던 종이뭉치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일 년 동안 녀석들이 작성했던 반성문이었다. 처음에는 글씨도 대충대충 내용도 엉터리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글씨도 안정되게 쓰고 내용도 충실해졌다. 개인정보이니까 파쇄기에 넣어서 처리하려고 종이뭉치들을 챙기던 중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졸업 선물로 일 년 동안 쓴 반성문을 아이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이었다. 어림짐작으로 보니 적게 잡아도 이백장은 넘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야근을 시작했다. 한 장씩 코팅을 한 후 아이들 별로 모아서 펀치로 구멍을 뚫고 문방구에서 사 온 링을 끼었다. 양이 많다 보니 며칠 동안 일과 후에 야근을 해서 졸업식 전날까지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힘들게 뭐하러 그렇게 하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는 샘들도 있었지만 정말 우리 반의 '폭력의 시간'들에 대한 기억을 그냥 파쇄기에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당에서 졸업식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모두 자리에 앉고 뒤에는 졸업식에 온 친구, 가족, 친척들이 서 있어 교실이 모두 꽉 차게 되었다.
"샘이 너희들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어. 뭐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 한명씩 호명하고 졸업장 속에 며칠 동안 야근을 통해 만든 '폭력의 시간'에 대한 흔적들을 끼워서 주었다. 아이들을 궁금해하며 나의 선물이 무엇인지 친구들과 가족들과 같이 들여다보고 읽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나오고 재잘대는 소리들이 들려서 교실이 시장통처럼 씨끄러웠다.
아이들 모두와 같이 단체사진을 찍고 개인 사진을 요청하는 친구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졸업식을 마치게 되었다. 1년 동안 좌충우돌했던 교실에 혼자 남게 되니 조금 외로운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교실 뒷정리를 하며 혹시 내가 준 선물을 버리고 갔나 보았더니 단 한개도 버려진 게 없었다. 의외였다. 추억으로 생각해서 가져간 걸까?
이렇게 교사로서 담임으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폭력의 시간'은 이렇게 끝을 맺게 되었다.
가끔씩 영화나 드라마에서 학창 시절 무자비한 폭력을 행한 교사를 찾아가서 복수하는 장면들을 보며 '나의 폭력의 시간'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 녀석들은 그때의 '폭력의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