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인생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by 서쌤

이번 주 나는 교직 생활 20여 년에서 처음이고 남은 교직생활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결정을 했다.


오랜 고민을 했고 주변에 조언도 구했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적지 않은 교직생활을 해왔지만 처음 실행하는 일이었고, 고민하고 준비하는 과정도 고통스러웠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다른 위원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고통스러웠다. 특히 나에게도 아무런 이익도 없고 잘못되면 민원이 나와서 도교육청의 위원회에 가서 소명을 해야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오랜 고민과 주저함 끝에 내린 결정이었고, 칼을 뽑았으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다시 칼집에 넣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런 이익도 없고 오히려 위험 부담만 커지는 일을 우직하게 추진했다.


학교의 생활지도를 총책임지고 있는 학생부장으로서





학생에 대한 '퇴학' 조치를 내렸다.









그 녀석과 나의 인연은 이 학교로 내가 전입 온 작년부터 시작되었다.

작년에 내 수업을 수강했던 녀석이었는데 팔에 문신도 있었고 거칠어 보이는 행동으로 눈에 띄는 녀석이었다. 야외 실습수업시간에 지시를 따르지 않아 한 번 둘이 크게 부딪힌 적이 있었고 녀석은 흥분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물리적 폭력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 후에는 나도 다소 여유롭게 녀석을 대했고 녀석도 큰 문제없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고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올해 학생부장 하게되었고 이제는 예전의 여유로움으로 녀석을 대할 수는 없었다.

보통은 학년이 올라가서 3학년 정도 되면 철이 들어서 그런지 문제행동이 줄어들게 되는데 이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학교 밖에서의 문제 행동으로 한 달 동안 사법 기간의 처벌을 받고 학교로 돌와와서도 다양한 사고와 문제행동을 일으켰다.


문제는 그러한 문제 행동들이 자꾸 반복되는 것이었고 전혀 반성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문제행동들 중 선생님에 대한 교권침해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단호하지 못한 성격으로 학생부장은 안 맞는 옷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치밀하게 퇴학처리를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위원회에서도 반대하는 다른 위원들의 의견을 누르고 고집스럽게도 나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선생님께서 " 항상 열린 마음으로 배려하시는 부장님께서 이렇게 고집스럽게 직진만 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라고 단 둘이 가진 술자리에서 나에게 말했다.






나의 고집과 직진으로 결국 그 녀석은 '퇴학' 처리되었다. 평소 퇴학처리를 싫어하던 교장도 나의 설득과 고집에 아무 말 없이 퇴학처리를 승인했다.

솔직히 나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다. 오히려 민원의 제기나 학생이 이의를 제기하면 도교육청 징계조정위원회에 회부되어 자료를 정리해 제출해야 되고 때로는 회의에 출석하여 왜 그런 조치를 했는지 소명해야 한다. 귀찮고 번거롭고 아무런 이익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공무원 사회에서도 더욱더 그렇다. 그런데 나는 아무런 이익도 없는 일을 했다. 그것도 마음의 번뇌와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말이다.

뭐 그렇다고 내가 정의감의 뛰어나거나 하지는 않다. 웬만하면 남의 일에 간섭 안 하고 모른 척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진짜 이건 아니다 싶고 내가 마음에 결정을 내리면(절대 쉽게 내리지 않고 웬만하면 무리한 결정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주변 상황 신경 쓰지 않고 밀어붙이는 똘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퇴학 결정을 내린 날 생활지도를 담당하시는 샘과 둘이서 술 한잔을 마셨다. 늦게 까지 남아서 고생하신 샘을 격려해드리고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씁쓸함과 찜찜함이 남아있는 나의 기분 전환을 위해. 술에 얼큰하게 취해 먼 퇴근길을 대중교통을 여러 번 갈아타면서 돌아오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3학년이고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의 제기에 대비하여 자료를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뜻하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 녀석이 퇴학 전에 그냥 스스로 자퇴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퇴 처리가 되기 전까지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비장한 마음으로 이의 제기에 대해 대응을 하려고 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다소 김이 새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아직도 내가 잘한 것이진 모르겠다. 그 녀석의 집안 사정도 불우하고 좋은 가정 형편이 아니다. 그냥 그럭저럭 지내게 하면 졸업을 시킬 수 있고 고등학교 졸업을 통해 그나마 사회에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그냥 없애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부서원들에게 또 다른 샘들께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나는 생활지도의 최전선에 있는 장수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침부터 아이들과 실랑이를 하며 싸우고 학부모의 민원 전화를 받고 경찰서에서 오는 사건 확인 전화를 받고 다른 학교 학생부에서 오는 사안 확인 전화를 받는다. 씩씩하고 당당한 장수의 모습을 부서원들과 선생님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마음은 그렇지 못하지만...


결국 학업을 중단하게 된 그 녀석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물론 나는 학생부장으로서 나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도 내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이고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퇴직 이후에도 마음속에는 계속 짐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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