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신뢰받는 존재일까?
연말이면 학교도 여느 회사들처럼 바쁘다.
학생들의 생기부 마감을 위해 입력하고 점검해야 할 내용들도 많고 교육청에서 교부하는 각종 보조금의 정산처리 및 공문 작성도 해야 한다.
이렇게 정신없는 연말을 보내는 중 이번 주 월요일에 이례적으로 학부모 상담을 실시했다.
학교 적응에 큰 어려움이 있는 학생이어서 올 한 해 굉장히 신경이 많이 쓰였고 학부모와도 상담을 많이 했던 학생이었다. 학생부장 상담을 먼저 한 후 비로소 나와 상담을 하게 되었고 처음의 우려와는 다르게 큰 문제없이 원만하게 상담이 마무리되었다. 처음에는 교사의 말과 학교를 믿지 못하여 직접 방문하셔서 상황을 파악하고 시시비비를 가려 보겠다는 의도가 있으셨던 것 같다. 보통 학부모 님들은 학생들의 말만 믿고 학교로 항의 전화를 하거나 교육청에 민원이 들어간다. 그전에 담임교사와 한 번 유선이든 방문이든 상담을 하시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 그런 과정은 생략되고 바로 액션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교사의 말보다는 아이의 말을 더 신뢰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학부모이니까 그 마음이 당연히 이해가 되고 공감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녀를 맡고 있는 선생님도 어느 정도 신뢰를 해주면 좋겠다.
교무학사 관련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구축된 나이스 시스템에 로그인을 하려면 교육부에서 발급한 인증서를 통해 인증을 받아야 하는 과정이 있다. 공적 업무처리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접근에 제한을 두는 것은 당연한 절차일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인증절차가 하나가 더 생겼다. 개인 및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입력할 때 아래 그림과 같은 별도의 인증을 한 번 받아야 한다. 교과 세부능력 특기 상항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일 년 동안 교과 수업태도 및 성취 등을 서술형 문장으로 입력하는 항목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입력하려고 하면 다음과 같은 인증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처음에 이런 인증이 생겼을 때는 다들 기분이 나빠했지만 요즘에는 다들 그런가 보다 한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의 교과 및 개인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기록할 때마다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고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더불어서 신뢰받지 못하는 존재로 느껴져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보안 프로그램이 컴에 설치되어 있다. 개인정보(이름, 전화번호, 생년월일)에 대한 내용이 컴퓨터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암호화시키던지 삭제를 하라고 계속 메시지가 뜬다. 의무적으로 설치를 해야 되는 프로그램으로 내 맘대로 삭제도 안된다. 수업 중 동영상을 시청할 때 갑자기 메시지가 튀어나와 수업을 방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메시지에 따라 삭제를 했다가 실수로 다른 파일을 삭제해서 나중에 어려움에 처한 경우도 있었고 비밀번호를 채웠다가 기억을 하지 못하여 업무처리를 제대로 못한 기억도 있다.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취급해야 할 일이 많으므로 당연히 개인정보에 대한 보안이 철저해야 한다. 그렇지만 과도하게 개인정보를 조사해서 제출하게 하고 취합하게 하는 현재의 학교 행정도 문제가 있다. 다양한 개인정보를 취합해서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데 매번 그 파일을 삭제하고 비번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학생 개인의 정보의 제공을 요구하는 교육행정의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
교직에 입문하여 거의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점점 더 교사는 신뢰받지 못하는 존재로 느껴진다. 교사들 자체의 문제도 분명히 있다. 소명의식을 가진 스승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인으로 살기 위해 교사가 되는 젊은 샘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때로는 '저런 분은 교직과는 안 어울리는데'라고 생각이 드는 교사들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아이들과 같이 하는 것이 좋아서 열심히 학생들과 함께하는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존재한다.
우리의 사회는 학교와 교사에게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현실적인 근무여건은 일반 직업인과 똑같이 취급하고 대우하지만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스승으로서의 모습을 요구하는 것 같다.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친구들은 '그래도 공무원이고 방학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말한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코로나 위기 속 전쟁터 같은 사회에서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펼치는 분들에게 교사들은 온실 속에 있는 화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온실 같은 학교현장에도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제기', '선생님을 무시하는 아이들' , '교권침해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장치의 미비', '과도한 행정 업무' 등과 같은 다양한 어려움이 존재한다.
젊은 선생님들이 학생과 학부모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위로를 건네면서 초임 시절 나의 모습들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지만 우리는 선생님이잖아. 어쩌겠어.'라고 격려의 말을 건넨다. 오래전 교직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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