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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쌤 Jan 10. 2022

수다쟁이가 되다

부서에서 혼자 청일점이면

"아니 샘은 어떻게 젊은 여 선생님들과 그렇게 편하게 잘 지내?"


"예전에는 과묵한 것도 알고 있었는데 굉장히 말수가 많아진 것 같아요"


"되게 세심하고 다정해졌어요"


작년 1년 동안 예전에 같이 근무한 적이 있어서 나를 아는 선생님들이 해준 말이다.


2021년 10년 만에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로 돌아와 다시 근무하게 되었다.


보통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한번 근무한 학교에서 다시 근무하지 않는 편이지만 근무할 수 있는 학교가 많지 않은 특성화고 샘들은 같은 학교에서 두세 번 근무를 하게 된다.

올해는 처음으로 부장교사(보직교사: 학교의 특정 부서를 책임지는 교사)를 10년 만에 안 하고 담임을 맡게 되었다.


학교는 10년 동안 많이 변해 있었다. 물적 환경도 변화했지만 인적 구성도 예전에 근무할 때 보다 많이 바뀌어 있었다. 여자 교사의 비율이 예전에 근무할 때 보다 훨씬 많아졌고 젊은 남자 교사들의 비율이 훨씬 적어졌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도 이제 상당히 고경력 교사가 되어 있었다. 새로운 학교로 전근을 와서 거의 10년 만에 부서를 책임지는 부장교사(보직교사)를 맡지 않고 부서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부서를 배정받았는데 그런데 정말 충격적으로 나 혼자만 남자였다.

우리 부서는 총 5명이었고 나를 빼고 모두가 여선생님이고 전원 미혼이었다.

부장교사는 예전에 같이 근무한 적이 있었고 나보다 2살이 어리다.

내 옆자리 샘은 32살이고 마주 보는 앞자리 샘은 30살 대각선에 있는 샘은 36살이 이었다. 처음으로 담임을 했던 아이들보다도 나이가 어린것이다. 어떻게 지내야 되나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가까운 지인은 그냥 제자처럼 지내는 것이 어떻냐고 했지만 그래도 직장 동료이고 같은 선생님인데 그것은 안될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학일 전주 휴일에 나의 최애인 안마의자에 앉아 맥주를 한 잔 마시며 휴식을 취하며 어떻게 하면 사무실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방에 있는 식탁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우리 집 세 모녀의 소리가 들렸다. 특별히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대충 들리는 이야기들은 정말 일상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들이었다. 그런데 별로 특별하거나 재미있는 일이 아님에도 세 모녀는 웃으면서 유쾌하고 즐겁게 이야기 꽃을 피웠고 방에 가서 침대에 누워 더 이야기하자고 자리를 옮겼다.


'아니 별 이야기 아닌데 한 참 이야기하고 뭘 또 자리를 옮겨 또 이야기해'라는 생각이 들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 순간 번뜩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사무실에서 같이 수다를 떨면 어떨까?'

그런데 원래 다소 과묵한 편이고 말이 별로 많지 않다. 그리고 말 많이 하는 사람을 싫어했었다.

그렇지만 가장 나이 내가 사무실에서 말없이 과묵하게 있으면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하여 개그 프로그램, 유머집, 유튜브 등을 보며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평소에 친분이 있던 여선생님과 안부전화를 하다가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 선생님은 막 웃으며 '여 알못'이라고 놀렸다. 그런 얘기 잘해봐야 아재 개그밖에 안되고 그냥 잘 들어주고 시시콜콜한 일상의 얘기들을 편하게 나누면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래서 개학 후 첫 주부터 수업이 없는 시간에 교무실에서 부서 선생님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에 안 맞는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하고 수다를 떨 수 있었다. 40 대 아저씨가 30대 미혼이 주축이 되는 여선생님들과 같이 수다를 떨며 점심시간에 식사도 같이하고 산책도 했다.





물론 중년의 아저씨 샘의 말을 잘 받아주고 같이해준 인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선생님들의 넓은 아량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 나는 부장교사를 다시 맡으며 부서를 옮기게 되었고 다른 샘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부서로 가게 되어 2021년의 즐거운 수다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 기간 준비한 시험에 떨어지고 말기암으로 투병하신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 드렸지만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즐거운 수다' 였던 것 같다.

2022년 모두가 꺼려하는 학생부장을 맡게 되어 고난이 예상되지만 학교를 옮긴 후 처음 맡은 2021년의 즐거운 기억은 계속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시시콜콜한 일상적인 삶에 대한 수다가 가지는 힘에 대하여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일상에서 이런 수다를 활용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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