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학원 수업과 큰 아이의 개인 사정으로 8월 첫 주 주말, 여름 휴가의 최 전성기 기간에 가족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역시 휴가의 최 전성기인 만큼 숙소 요금도 어마어마했고 사람도 정말 많았다.
물놀이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두 딸을 위해 휴가의 모든 일정은 물놀이였고 숙소도 해수욕장 바로 앞 콘도에 잡았다. 전투적인 바닷가 물놀이를 마치고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가족들 모두 곯아 떨어졌다.
아침 6시쯤 피곤할 법한테 일찍 일어난 두 딸은 엄마를 졸라 같이 바닷가를 거닐겠다며 나갔다. 나는 졸려서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고 우기고 결국 숙소에 남아 비몽사몽하고 있었다.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스마트폰 벨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몸을 겨우 일으켜 전화를 받았더니 둘째 딸이었다.
"아빠!"
"어. 왜?"
"언니가 다쳐서 피가 나?"
"어 뭐라고?"
"언니가 해변을 걷다가 조개껍질 줍는다고 하다가 넘어졌는데 무릎 있는 데가 찢어져서 피가 나?"
"에이! 장난치치 말고. 아빠 피곤하다."
"진짜야, 그래서 여기 밑에 편의점에서 약사서 바르고 소독하고 있어"
잠이 퍼뜩 달아났다. 벌떡 일어나서 차키와 지갑을 챙기고 입던 옷 그대로 숙소 1층의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큰 아이는 무릎 밑에 상처보호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상처를 꼬매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네비 검색을 통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 의료원 응급실을 방문했다. 많이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꼬맬정도의 상처는 아니어서 응급처치를 했지만 물이 닿으면 염증이 생길 수 있으니 물놀이를 하면 안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오늘은 해변에서 물놀이랑 레일바이크, 내일은 워터파크에서 물놀이, 모든 일정이 물과 관련되거나 활동적인 건데.........
둘씩 짝을 지워 한 팀은 물놀이하고 나머지는 다른 것을 하자고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가족이 모두 함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큰 딸의 상처가 더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움직임이 적은 정적인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결국 휴가일수를 하루 줄여 1박 2일로 변경하였다.
오전(숙소에서)
나는 해변이 바로 보이는 숙소 베란다에 앉아 풍경도 감상하며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e-book으로 보았다.
큰딸과 작은딸은 각자 자기의 태블릿으로 인강을 듣고 과제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조용히 열중하고 있었다. (물론 무엇을 하는지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휴가인데 무슨 상관인가?!)
이번 휴가에서 자기가 운전을 전담하겠다고 하여 계속 운전만 했던 집사람은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휴식을 취했다.
오후(집사람이 급하게 검색하여 구성한 일정)
첫 번째, 지역의 맛집으로 소문난 곳에서 맛있게 물회를 먹었다. 뭐 특별히 맛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창가 쪽 자리라서 청초호의 풍경을 감상하며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일정에 여유가 있어 여유롭게 먹으며 가족간 대화도 충분히 나누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몇 년 전 새로 생긴 대관람차를 타기로 하였다. 뭐 시시하게 대관람차를 타냐고 딸들과 내가 모두 반대했지만 막상 타 보고 나니까 이전에 타봤던 대관람차와는 시설과 크기가 달랐다. 에어컨도 나와서 시원했고 높이도 높아 주변 도심과 해안의 경치를 다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한 옥 형태로 되었고 다양한 공간을 갖추고 있던 교외의 한적한 카페를 찾아서 가족 모두 전자기기를 활용하여 3시간가량 각자 인강 듣기, 동영상 보기, 독서, 대화를 하였다.
마지막, 마지막으로 시간이 조금 남아 케익 만들기 체험을 하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많이 다녔던 거 같은데 집사람은 성인도 참여할 수 있는 체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시 중3, 고3인 우리 두 딸은 초등생이나 유치원 생들로 보이는 아이들과 같이 열심히 체험을 했고 각자 독특한 디자인의 수제 케이크를 만들어 왔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저녁을 먹고 4~5시간 정도 걸리는 귀갓길에 올랐다.
그동안 여름휴가는 무조건 액티비티였다. 오전 일찍 부터 물놀이 및 각종 활동적인 체험을 하고 저녁에 숙소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 모두가 피곤해서 곯아떨어지는 유격훈련 같은 휴가를 보내던 것 같다. 이렇게 정적인 활동을 한 휴가는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하지만 전투적으로 정신없이 활동을 하는 대신 정적이고 움직임이 없는 활동을 하게 된 휴가의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더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다주었다. 평상시 집에 있었으면 각자 시간들이 바빠서 한 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카페에서 처음에는 다들 각자 태블릿과 책을 들었지만 결국 어느 순간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시시할 것 같은 대관람차는 에어컨이 나오는 최첨단 시설과 거대한 높이로 인해 정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고 오랜만에 딸들과 여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항상 여름휴가=물놀이, 활동적 외부활동의 공식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며 가족 간에 이야기를 나누고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나름대로 좋았던 것 같다.
이제는 여름휴가의 개념을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냐 보다는 가족들이 얼마나 여유롭게 그리고 마음 편하게 소통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큰딸은 아직도 상처에서 진물이 나서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우리 가족에게 신박한 여름 휴가를 경험하게 해준 해변가의 조개껍질들은 큰 딸의 방에 잘(?) 모셔져 있다. 저렇게 나둘껄 왜 가져 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