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리할 일이 있어 여름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출근을 했다가 일을 마치고 점심때쯤 큰딸을 데리러 갔다. 인천 국제캠퍼스에서 고교생을 위한 여름방학 특강을 듣는 큰 딸을 아침에는 집사람이 태워다 주고 끝날 때는 내가 태워 오기로 하였다.
큰 딸을 태우고 나와서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출발하였다. 점심을 먹은 직후여서 인지 약간은 나른한 기분에 멍하니 딴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비게이션에서 우측으로 빠지라는 표시가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우측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진입로로 들어섰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멍한 나의 정신을 깨우는 도로 이정표가 보였다.
인천공항
'인천공항????', 어..... 왜??'
얼른 내비게이션을 보니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와 있었다. 아까 도로 우측으로 빠져야 되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탄 것이다.
한 번 올라오면 인천대교를 건너 영종 ic까지 빠져나올 길이 없는 인천공항 고속도로에 올라선 것이다.
내비게이션으로 확인해 보니 영종 ic까지 20km가 넘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딸을 태우고 나와서 집에 간다고 했다가 전혀 반대방향인 인천공항 고속도를 올라탄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멍한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지만 반대로 나의 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냥 웃었다. 아니 웃음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왔다. 그 순간 긍정이 기운이 나를 덮쳤다.
'어차피 나갈 수도 없는데 어쩌겠나, 그냥 드라이브한다고 생각해야지'
옆자리에 있는 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냥 드라이브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음악을 켜고 속도를 낮추고 차를 가장 바깥쪽 차선에 대고 펼쳐진 바다의 풍경들을 감상하며 달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서해대교를 넘어 영종 ic에 도착했다. 차를 하이패스 대신에 현금을 톨게이트에 대고 요금을 징수하시는 분에게 회차로를 물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듯 익숙하게 회차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찾기 힘든 위치에 있었던 회차로를 다행히 잘 찾아서 차를 다시 회차하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음악을 켜고 가장 바깥 차선으로 차를 몰면서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하면서 왔다.
잘못 들어간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달리며
잘못 들어간 인천공항 고속도로 인천대교를 넘으며.
우리 딸은 여전히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 잠에서 깬 큰 딸은 시계를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아빠, 출발한 지 1시간 30분 가까이 된 것 같은데 아직 집에 안 왔네?"
"어.. 우리 딸 깰까 봐 일부러 아빠가 천천히 왔어. 그리고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차도 막혔네.."
'차마 아빠가 길을 잘 못 들어서 영종도까지 갔다 왔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미안해 딸^^; '
음악을 들으며 바닷가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비용으로 왕복 45km와 톨게이트비 5500원과 알 수 없는 연료비를 지불했지만 뭐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하려고 한다. 뭐 좀 늦을 수도 있지 뭐!!
예전 같았으면 운전하는 내내 화를 냈었을 것 같고 나 자신을 계속 자책하였을 것이다. 소비된 시간과 들어가 톨게이트비, 휘발유값이 아까워서. 하지만 이미 지나간 것에 나의 정신적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지나가고 벌어진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신 벌어짐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잘 수습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원래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작년에 말기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하신 어머니와 마지막 한 달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내게 되며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뀐 것 같기는 하다.
아직도 열정적이고 항상 긍정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사람이지는 못한다. 우울해하기도 하고 짜증을 낼 때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종종 어디선가 긍정의 기운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나의 잘못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건데.
부정적인 상황에 처해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일인 것 같다. 일단 받아들이게 되면 긍정적 사고가 발생하고 어떻게 대처하고 풀어나가야 할지와 같은 건설적 사고가 생기는 것 같다. 덕분에 하루 종일 화가 날일을 웃음으로 풀어버리고 글감으로 만들어 브런치에도 글을 쓰게 되었으니 분명히 예전보다는 발전한 것 같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나이도 들었으니까 삶을 관조하고 여유롭게 받아 들이려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오늘 예기치 못한 에피소드는 또 이렇게 나에게 추억을 남기고 또 브런치에 하나의 글을 남기게 해 주었다. 그렇지만 다음 부터는 이런 일이 없게 운전할때는 최대한 집중하려고 한다.^^
Tip 인천공항고속도로 영종 IC의 회차로는 톨게이트 나가자마자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다. 따라서 하이패스를 이용하시면 그냥 하이패스라는 사실. 현금 또는 전자카드를 내는 요금소로 나오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가장 바깥쪽에 있는 요금소로 나와야지 회차로로 진입하기 좋습니다. 회차로 눈에 잘 띄지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