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바쁘던 지난 연말 집사람한데 응급실에 가는 중이라고 톡이 왔다.
화들짝 놀라서 얼근 전화를 걸었는데 집사람은 받지 않았다. 두세 번 더 해봤는데 받지 않아 초조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금 지난 후 집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다쳤어? 왜 응급실이야"
"내가 아니고 ○○(둘째 딸) 이가 119에 실려서 응급실에 왔어"
"뭐, 왜? 학교에서 다쳤어?"
"계단에서 굴렀어. 일단은 검사받아봐야 알겠지만 입원해야 할 것 같아"
퇴근을 하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입원실로 옮긴 ○○이를 만날 수는 없었다. 코로나 검사를 받은 보호자 1명만 인증 바코드가 새겨진 놀이동산에서 쓰는 것 같은 팔지를 발급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신경과 뼈에는 이상이 없었고 척추와 골반에 골절로 약간 금이 가서 허리보호대를 차고 안정을 취하면 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집사람과 나 모두 안심했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당장은 통증이 있어 움직일 수가 없어 보호자가 상주해야 했다. 결국 집사람이 먼저 2일 정도 간병을 하고 학교에 휴가를 내고 내가 또 2일을 간병하게 되었다.
내가 간병을 한 첫날은 무사히 잘 지나갔고 다음날 저녁에 문제가 생겼다. 통증으로 움직일 수 없어 소변줄까지 차고 있던 ○○ 이가 약간은 민망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빠.... 나..... 어.... 기저귀 차야 될 것 같아.."
"어......... 혹시 언제 대변봤어?"
"입원하고는 대변은 한 번도 안 봤는데.."
"참기는 어렵니?"
"....... 그럴 것 같은데...."
난감했다.... 아가였을 때는 수도 없이 기저귀를 갈아 주었지만 지금은 키가 170이 넘는 16살의 다 큰 숙녀인데............
별수 없었다. 어쩌랴! 혹시라도 실례를 하게 되면 대형참사가 되니 기저귀를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다인실이라서 먼저 주변에서 보이지 않게 커튼을 쳤다. 성인의 기저귀를 처음 갈아봐서 기저귀 봉투에 붙어 있는 사용방법을 꼼꼼히 읽어 보았다.
기저귀를 환자옆에 잘 펼쳐 놓는다. / 똑바로 누워 있는 환자를 옆으로 돌려세우고 엉덩이 위치에 기저귀를 잘 놓는다. / 환자를 다시 반대 방향을 돌려세우고 아까 위치해놓은 기저귀를 완전히 펼친다. / 기저귀 뒷면에 붙어 있는 찍찍이를 잘 펼쳐서 앞부분에 꼭 붙인다.
읽어 보니 별거 아닌 것 같았다. 간단했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을 달랐다. 더 구다나 기저귀를 채우기 위해 ○○ 이의 병원복 바지를 벗기면서 나도 모르게 당황하게 되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정말 지금 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민망했던 순간이었던 같다. 아마 ○○ 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쨌든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아이! 몸을 더 세워봐"
"아파서 안 돼"
"야 아파도 더 세워야 돼 기저귀를 채우지"
"아야 아파!"
"야! 너 왜 이렇게 무겁냐"
"아이 뭐가 무거워"
"아니 살졌나?"
"아니 아빠는 어떻게 딸한테 그런 말 할 수 있어!"
"아이 좀 엉덩이 좀 들어봐"
"아파서 안 된다고"
이러다 보니 어색함은 사라지고 서로 평소처럼 툭탁대고 있었다.
거의 20여분 가까운 사투 끝에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어 기저귀를 채울 수 있었다. 기저귀를 다 채우고 커튼을 걷으니 옆자리에 계시던 할머니 환자께서 웃으시며 말했다.
" 아버지 이신가 봐요 "
" 아 네! 예전에 잘했는데 이게 15년이 지나니까 이제는 어렵네요"
이렇게 힘들게 기저귀를 갈아 놓았지만 결국 그날 ○○ 이는 응가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집사람이 간호할 때 응가를 했다고 한다. 뭐 다행일 수도 있다. 응가한 거 까지 치우려면 정말 생각만 해도.........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내고 퇴원전날 집사람과 교대를 하여 내가 ○○ 이를 퇴원시키게 되었다. 허리보호대를 해서 이전보다는 조금 움직이 낳아져서 휠체어에도 겨우 앉힐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짐들을 다 정리하고 챙겨서 차에다 두고 퇴원수속까지 다 하고 병실로 올라왔다. 이제는 기분 좋게 퇴원만 하면 되었는데........
"아빠 나 병원복 입고 퇴원해?"
"어. 어어 아니? 아 옷을 안 갈아입었구나!!!"
이제 병원에서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과 크리스마스이브날이라는 약간의 들뜸으로 인해 옷을 갈아입혀야 한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번 미션은 기저귀를 가는 것보다 더 난이도가 높았다. 상하의를 다 갈아입혀야 하고 심지어 위에는 병원복위에 허리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이전의 경험으로 바지는 손쉽게 갈아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상의를 갈아입히는 것이었다. 상체를 들지 못하는 상태여서 허리보호대를 벗기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하의는 순간적으로 갈아입혀 민망함이 덜했지만 상의는 허리보호대를 제거하고 옷을 갈아입혀야 해서 난이도가 훨씬 높았고 시간이 많이 걸려 더 민망한 순간이 지속되었다.
"허리를 세워야지 보호대를 벗기지.."
"아파서 안된다니까"
"아빠가 손으로 받칠 테니까 해봐"
"아야!, 아파!!"
"야! 너 왜 이렇게 무겁냐!"
"뭐가 무거워!!"
"아냐 확실히 살찐 것 같아!"
"아니라고, 어떻게 딸한테 그렇게 말해!"
이렇게 한참 말싸움을 하며 툭탁거리다 결국에는 서로 피식하고 웃게 되었다.
이전처럼, 아니 이전보다 훨씬 긴 투정들 끝에 옷을 갈아입힐 수 있었고, 나의 온몸은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침대에 있던 커튼을 젖히니 이전처럼 옆자리와 앞자리에 계시던 할머니 환자들이 웃으면서 수고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런 우연곡절을 겪은 끝에 크리스마스는 비로소 모든 가족이 집에서 보낼 수 있었다.
이번일로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것 같다. 가족 중에 누구라도 한 명이 아프게 되면 가족 모두가 힘들어지니까. 건강은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고들 하는데 나의 건강은 아니지만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건강은 가족 모두의 건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소홀했던 운동도 좀 더 열심히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크게 신경 쓰지 못했던 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소 어색하고 민망할 경우에는 상황에 맞지 않지만 약간의 억지스러운 유머가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락에는 맞지 않지만 어이가 없어서 픽 웃음이 나오게 하는 그런 말들을 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다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퇴원하면서 물었다.
"나중에 아빠 아프면 이렇게 간병해줄 거지?"
"어, 아니 간병인 쓰면 되지"
"뭐............. 야!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언니가 할 거야! 그런 거는 원래 맏이가 하는 거야"
"헐~ 와!!!! 진짜"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는 둘째 딸의 모습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그 말이 괘씸하기도 한데 그냥 픽 웃음만 나왔다. 어이가 없었지만 픽 웃음만 나왔다.
'그래 네 말대로 아빠는 전문 간병인 쓰면 되니까 너희들만 행복하게 잘 살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