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날 잊어버릴 수 있어?
금요일 별도의 약속도 없고 그냥 집에서 푹 쉴 요량으로 일찍 퇴근했다.
큰 딸을 학원에 차로 데려다주고 기분 좋게 음악을 크게 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중3인 둘째 딸한테 전화가 왔다. 좀처럼 전화하는 녀석이 아닌데 웬일이지라는 궁금함을 가지고 전화를 받았다.
"아빠! 어디야?"
"어!!, 뭐?"
"혹시 날 잊어버린 거 아니지?"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학원을 다녀 큰 아이를 내려주면서 조금 기다렸다가 바로 작은딸을 태워오면 되었는데,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인지 둘째 딸을 정말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 아냐! "
"언니 만났는데,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했는데 없네."
"어... 근처에 있어, 빨리 갈게!!!!"
차를 바로 다시 돌려 5분 만에 학원에 다시 도착할 수 있었다.
"추운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혹시 저번처럼 날 또 잊어버린 거 아니지?"
둘째 딸의 푸념 섞인 말을 듣고 있자니 문득 얼마 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도 금요일이었다.
일찍 퇴근해서 운동을 마치고 큰 딸을 데려왔다.
그리고 거실에서 나의 소확행 중 하나인 네플릭스 보면서 맥주 마시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9시 40분쯤 집사람이 늦게 퇴근해서 집에 들어왔다.
"oo이 어디 있어?"
"어. 당신이 데려오기로 했잖아?"
"난 당신이 데려온 줄 알았는데"
"9시 30분에 끝나는데 벌써 15분이 지났는데 이거 큰일 났네"
"당신이 빨리 갔다 와"
"어.. 나 맥주 마셨는데......"
집사람은 강력한 레이저 눈빛을 쏘아주고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다시 허겁지겁 나갔다.
30분쯤 지나서 집으로 돌아온 둘째는 불만을 터뜨렸다. 쿨한 성격이어서 웬만한 일 가지고 불평하지 않는데 많이 섭섭했던 것 같다.
"어떻게 날 잊어버릴 수 있어?" 이 한마디를 남기고 둘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집사람과 나는 서로 머쓱하게 거실에 서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거는 큰딸은 단 한 번도 두고 오거나 태워오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집사람도 나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첫째와 둘째를 차별하지 않고 키웠다고 생각하지만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던 같기도 하다.
양쪽 집안의 첫 손주로서 큰아이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고 돌잔치도 성대하게 했었던 같다. 그렇지만 둘째 때는 집안에 중환자가 있었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돌잔치도 못하고 첫째 때만큼 신경을 못 쓴 것 같다. 첫째 때는 태교에 좋다고 태교 동화도 읽어주고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3D 초음파도 찍었던 것 같지만 둘째 때는 이런 게 하나도 없었다.
차별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집안에 우환도 있었고 아이 키우며 맞벌이를 해야 하니 당연히 둘째까지 신경이 가는 것이 매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집사람을 큰애의 이름을 붙여 oo엄마라고 불렀는데 초등학교 때 인가 둘째가 왜 언니 이름만 붙여서 부르냐고 항의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큰 딸의 생일로 했었던 공동현관 비밀번호와 현관문 도어록 번호 중 공동현관을 비밀번호를 둘째의 생일로 바꾸어 주기도 했다. 물론 둘째 딸은 덜 중요한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자기 생일로 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첫째든 둘째든 차별하지 않고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부모만의 생각이었던 것 같고 둘째는 살면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차별을 받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써로 다툴 때도 많지만 자매간에 우애가 좋다는 것이다.
옛 어른들이 첫째를 선호하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부모가 되어보니 그러한 것이 특별히 의식하거나 결심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어째튼 우리 둘째가 나름 서운함이 있었겠지만 불평불만 없이 쿨한 성격으로 커준 것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