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롭힘 피해자와 나의 성장 스토리
<직장 내 괴롭힘, 그냥 퇴사할까>. 최근에 내가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나는 12년 차 공인노무사다. 2019년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신설되었는데, 그전부터 나는 비수도권 지역의 노동 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을 하였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직장 내 괴롭힘은 여전한 것 같다. 직장 내 괴롭힘이 법으로 금지됐다고 해서, 체감할 만큼 괴롭힘이 줄지는 않은 것 같다. 왜일까? 직장 내 괴롭힘은 조직의 구조와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따라서 조직의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괴롭힘 문제는 반복하여 발생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학교-군대-직장의 구조가 비슷하다. 수직적이고 위계 서열이 중시되는 구조 말이다. 그래서 학교 폭력과 군 인권 문제와 직장 내 괴롭힘은 세 쌍둥이처럼 닮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노동 인권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2017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주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연구원으로 참여했고, 그 후로도 노동 상담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를 계속 만났다. 작년에는 노동 센터에 제안해서 <직장 내 괴롭힘 심층 상담>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참 슬픈 일이다. 아무리 무료 상담이라도, 상담을 받으러 상담실을 찾는 괴롭힘 피해자의 마음은 나름대로 간절하다.
괴롭힘 피해자는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어 있다. 그리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직장에서 빨리 벗어나 괴롭힘을 피하고 싶은 한편, 이렇게 도망치고 싶지는 않다. 이들은 마음을 정하지 못하여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상담을 받으러 온다. 상담을 할 때, 나의 주된 역할은 '촉진자'다. 조금만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나아가도록 독려한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통해, 가해자의 괴롭힘 행위를 멈추게 하는 데 집중하도록 한다. 대다수의 피해자는 지나치게 자신을 검열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이 당한 행위들이 괴롭힘이 맞는지, 괴롭힘 신고를 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자주 묻는다. 그러면, 나는 관점을 바꾸어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이익이 아니라 권리와 자존감의 측면을 부각한다. 아울러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작년에 진행했던 <직장 내 괴롭힘 심층 상담>을 통해 만났던 피해자 중에서, 상담을 통해 용기를 얻어 행동에 나선 분이 2명 있었다. 전적으로 나의 영향을 받아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상당히 놀랐다. 나의 상담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확인하면서, 좀 더 정성스럽게 상담을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글을 쓰다 보니,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 듯하다. 노동 상담은 상호 소통의 과정이므로, 그 과정에서 나도 배우고 성장한다. 그런 면에서 노동자의 이야기는 곧 나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한 것 같다. 최근에 발간한 책 <직장 내 괴롭힘, 그냥 퇴사할까>에서, 다양한 상담 사례를 쏟아내서 속된 말로 진이 빠진 것 같기도 하다.
올해에도 노동 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심층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화나 카톡, 홈페이지를 통해서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지만, 상담의 질과 양 면에서, 대면 상담에 비해서 턱없이 미흡하다. 그래서 대면 상담을 통해서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심층 상담을 기획한 것이다. 올해에는 또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지 자못 궁금하고 기대된다. 직장 내 괴롭힘이 사라져서, 상담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면서도, 어떤 피해자를 만날지 기대하는 내 마음도 참 이중적인 것 같아 멋쩍은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