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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프리랜서입니까? 근로자입니까?

by 주형민

A 씨는 커피 전문점의 매니저로 채용되었다. 출근 첫날, 사장은 계약서를 내밀며 서명하라고 했다. 언뜻 보니, '프리랜서 계약서'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내가 프리랜서라고?' 뭔가 찝찝했지만,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서명했다. 혹시 몰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처음에 A 씨는 취업이 될 때까지만 일하고 그만 둘 생각이었다. 6개월 정도로 예상했는데, 쉽게 취업이 되질 않았다. 시간은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어느새 1년이 지났다. 1년 6개월쯤 되었을 때, 드디어 합격 통보를 받았다. 원하던 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된 것이다. A 씨는 사장에게 퇴사하겠다 말했고, 퇴사일이 다가왔다. A 씨는 1년 이상 일했으니 당연히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장에게 조심스럽게 퇴직금 이야기를 꺼냈는데, 사장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자네는 프리랜서라서 퇴직금이 없어. 입사할 때 프리랜서 계약서를 쓰지 않았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무슨 계약서에 서명했고 사진을 찍어 둔 게 생각났다. 다행히 계약서 사진은 휴대폰에 남아 있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연차휴가나 주휴수당, 퇴직금 등에 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A 씨는 낙심했다. 하지만, 1주일에 5~6일을 매장에 출근해서 일했고, 사장의 지시에 따라 매니저 업무를 수행했는데, 자신이 프리랜서라는 사실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상담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 전쯤에 지하철 역사에서 무료 노동 상담을 한다는 광고를 본 게 기억났다. 그래서 상담 시간대에 맞춰서 노동센터를 방문했다.


상담실에서 나는 A 씨와 마주 앉았다. A 씨는 휴대폰에 저장된 '프리랜서 계약서'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나는 사진을 확대하여 계약서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나는 A 씨가 약 1년 6개월 간, 고용 관계를 유지한 채 계속 근로했음을 확인하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프리랜서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입니다.
따라서 사용자인 커피 전문점 측에서는 선생님께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A 씨는 역시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점을 확인해서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낯빛이 어두워지며 사장이 퇴직금을 주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래서 노동청에 임금체불 신고를 하여 다툴 수 있다고 답하면서, 관련 절차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A 씨는 새로 취업한 회사에 곧 출근할 예정이라서, 신고할지 망설이는 태도를 보였다. 어쨌든 알겠다며 A 씨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상담실을 나섰다.


몇 년 전부터 이러한 상담이 끊이질 않는다. 근로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계약서가 난무한다. 커피 전문점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누가 봐도 근로자다. 그런데도 사장은 이상한 제목과 내용이 담긴 계약서를 근로자에게 내민다. 프리랜서 계약서, 업무 위탁 계약서, 용역 계약서 등등 명칭은 다양하다. 그 계약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근로자가 아니라 사업자이고, 근로소득세가 아니라 사업소득세 3.3%를 공제하며, 연차휴가나 퇴직금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등의 독소 조항이 가득하다. 일부 업종이나 직종에서 악용되던 계약서가 이제는 모든 업종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사장이 이상한 계약서를 내밀며 서명하라고 할 때, 사장은 이미 당신을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취급하겠다고 선포하는 셈이다. 근로자가 아니므로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근로소득세가 아니라 사업소득세를 공제하며, 연차휴가나 퇴직금, 주휴수당, 해고예고수당 등 근로자의 권리를 배제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계약서에는 서명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 서명하는 순간, 어쨌든 그 계약서는 유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근로자는 일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한다.


노동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이러한 위장 계약서가 노동 현장에서 횡행하고 있다. 최근에 지상파 방송사에서 근무했던 기상 캐스터 한 분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그분의 유족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위장 프리랜서 계약을 없애기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방송사뿐 아니라 모든 업종과 직종에서 '위장 프리랜서 계약'이 판을 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는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이 예외가 되고 있다. 별도의 법을 만들어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리 찾기 유니온'이라는 노동 단체가 '가짜 3.3 신고' 등의 활동을 펼치며,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여, 작년 말에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었고, 2025년 10월 23일부터 시행된다. 이른바 '가짜 3.3 금지법'으로 불리는데, 노동부의 요청에 따라 국세청과 근로복지공단 등의 기관에서 보유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이제라도 노동부는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프리랜서 계약서' 등으로 3.3% 사업소득세를 공제하는 꼼수를 부리면, 호되게 당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는 사용자가 이상한 계약서를 내밀면서 서명하는 관행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대하지만, 아마도 서서히 사라질 것 같다. 근로자도 자신이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근로계약서'에 서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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