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노줌마존' '노시니어존'... 세상에는 쉽게 NO를 외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 낙인과 차별이 난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편이라고 생각이 든다.
1. '노-존'이 만들어진 이유
특정 집단에 대한 불편함이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집단에 대한 이미지, 집단과 관련된 경험이 쌓여 그 집단을 어떠한 특성으로 정의하게 되었고, 그것은 불편함이 되어 이들을 일괄적으로 사전 차단하는 방식을 사용하게끔 한 것이다. 일례로,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이미지와 그러한 아이들로 인해 피해를 본 경험치가 쌓여 '아이들은 시끄럽고 통제되지 않는 집단'으로 정의하게 되며, 그것은 '키즈'들은 누구든 들어올 수 없다는 벽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부모들의 갑질과 비정상적인 행동이 촉발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 것은 해결 되어야 할 다른 문제일 뿐, '노키즈존'의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2. '노-존'의 합리적인 이유
물론, 사적인 영역에서의 영업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내가 아이를 안받고 덜 벌겠다는데? 내가 노인들에게는 음식을 제공하지 않겠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반을 틀리고 반은 맞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술을 주로 하여 술과 어울리는 음식을 파는 음식점에서는 영업의 자유로서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노키즈존'을 운영할 수 있다. 이는 통상적인 시선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우리 음식점은 아주 고급스러운 파인다이닝 음식점으로, 비싼 돈을 주고 한 끼를 즐기러 오는 손님들이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출입을 금지합니다.' 라고 주장하는 음식점은 어떠한가?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누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가?
'노-존'을 금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이 벽을 만든 이유가 합리적인지 혹은 비합리적인지를 하나하나 따지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존'이 가져오는 사회의 분위기가 매우 걱정스럽기에, 쉽게 '노-존'을 영업의 자유로만 치부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진정으로 공존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공존'이라는 것은 그대로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진정으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다른 우리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연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있는 이 곳에는 아이들도 존재한다. 노인들도 존재한다. 장애인도 존재한다. 외국인도 존재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당연하다는 것은, 함께 있기에 서로가 감수하여야 할 것들 또한 당연히 여긴다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우리는 그들의 천방지축함을 일부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노인들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우리는 그들의 느림을 일부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장애인들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우리는 그들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당연함 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교하게 계획된 교육과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사회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노-존'은 너무나 쉽게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낙인찍고 차별하는 문화를 만든다. 너무도 쉽게 말이다.
'NO'라는 말 한 마디, '노-존'이라는 간판 하나면, 당연히 존재하는 그들을 내 시야에서 치울 수 있다.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이 발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발상이라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보통 '노-존'의 주체는 약자가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노재벌존과 같은 단어를 들어본 적 없지 않는가?)
너무 쉽다. 누군가를 배제하는게 너무 쉬워져버렸다.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그냥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는게 더 효율적인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가, 다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고 참아주는 방법을 완전히 잊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