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다면 꼭 읽어보길 바라며
'특수목적고등학교'. 특수한 목적을 가진 고등학교.
특별히 특정 분야의 공부에 성취도가 높은 아이들을 키우는 고등학교.
나는 이름을 대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는 특목고를 졸업했다.
그곳에서 내가 가장 먼저 경험한 것은, 아마도 '좌절감'이었던 것 같다.
중학생 때까지 나는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유난히 똑똑한 머리를 타고 났다고 생각했고,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거라고 생각했다.
1등으로 주목 받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던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진짜 천재'들이 대거 내 삶에 들어왔다.
그들 중에는 어려서부터 해외연수를 다니며 5개국어를 구사하는 아이, 수학문제집을 눈으로 푸는 아이, 암기력이 뛰어나 하루밤이면 시험범위를 몽땅 다 외워버리는 아이 등 다양했다.
그런 아이들을 모아둔 곳에 가니, 나는 내가 전혀 특별하지 않은 학생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면했다.
그 당시 17살의 나에게, 그것은 좌절감을 넘어서 나의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뒤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결국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지 못했다.
노력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운 재능의 영역은 하늘이 불공평하게도 존재했으며, 안타깝게도 우리 학교의 그 천재들은 노력까지하는 천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노력하는 천재를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숨쉴 때마다 자격지심을 느끼며 살기도 했던 것 같다.
그곳에서 내가 배운 것이 그것 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 위축됨과 특별하지 않음에 대한 자각이 그것에 그친다면 나는 실패자가 되었겠지.
하지만, 내가 특별하지 않지만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열정은, 곧 '죽을만큼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귀결되었다.
세상에 훨씬 많을 저들같은 천재들과 경쟁하여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들보다 10배 100배 노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끝까지 내 자신의 노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조금 더, 조금만 더 노력하고자 하는 습관은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조금 위축될 지언정 '남들보다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을 참 고통스럽다. 그 전까지 나에 대한 자신감이 컸던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위축되어 자신감을 잃은 채 웅크려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나를 찾아간다면, 어른이 되어서 깨달으면 조금 늦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미리 깨우칠 수 있다.
아직까지도 나는 내가 이 고등학교를 선택한 것이 내 인생에 득인지 실인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위축되고 자신감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만큼 나는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남들보다 열심히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