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리
사람들과 말을 해야 하나 줄곧 생각했다. 줄곧을 곧줄로 바꾸면 어떨까 하고도 생각했다. 거침없이라는 단어가 맴돈다. 맴돌아서 어지럽고 다시 일어나기를 포기한다. 에어컨 소리와 선풍기 소리와 tv 소리, 이불 바스락 소리로 방은 가득 차 있다. 에어컨을 오래 켜면 머리가 아파서 창문을 한 번씩은 여는데 문을 열 때마다 사람들의 목소리, 차 소리, 기계음 소리, 주차장 차단기 올라가는 소리, 알 수 없는 소리에 다시 닫는다. 매미 소리가 그립다. 매미 소리는 잠을 자게 해 준다.
어둠이다. 조금 전에도 어둠이고 그전에도 그 전전에도 어둠이다. 불을 켜면 모든 게 선명해져 버린다. 불빛은 tv와 휴대전화로 족하다. 빛과 소리에 집중해 본다. 웃기도 하고, 웃음소리도 내어 본다. 웃음소리에 어색해하다가 다시 집중한다.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눈이 아프고, 아프면 눈을 감는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오늘의 첫 말소리다. 잠을 자려 노력한다. 머리가 아파서 더 볼 수가 없다. 잠이 오지 않아도 눈을 뜨는 것을 참는다. 그러다가 궁금해서 눈을 떠봐도 어둠은 감을 때와 차이가 없다. 간혹 눈을 떴을 때 주변 소리가 작아지기도 한다. 눈을 감고 눕지만, 바로 눕기는 힘들다. 그건 일하고 온 사람의 특권이다. 난 옆으로 눕는다. 눈만 피곤하기에 옆으로만 눕는다. 오른쪽으로 누웠다가 잠이 들지 않으면 왼쪽으로 눕고 왼쪽으로 누웠는데 심장 소리에 떨려서 다시 오른쪽으로 눕는다. 오른쪽으로 오래 눕다 보면 베개에 눌린 귀가 아파서 다시 왼쪽으로 눕는다. 이 행동을 하다 보면 왼쪽으로 누었을 때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비로소 잠이 든다.
소리에 깨기도 하고, 목이 타서 깨기도 하고, 꿈에서 벗어나기 위해 깨기도 한다. 세 시간이나 네 시간쯤 잤을 것이다. 사실 일부러 시계를 보지 않는다. 잠을 덜 자면 눈이 뜨겁다. 그것으로 그 정도 잤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을 마시고 다신 잠을 이루려 하지만, 지금부터 고난의 시작이다. 피곤한데 몸은 무거운데 더 이상 잠들지 못한다. 그때부터 부탁을 한다. 자게 해 주시오. 자게 해 주시오. 부탁은 소리가 필요해서 방안에 있는 내 목소리는 번번이 막힌다. tv를 켠다. 하나하나 채널을 돌리다가 유튜브로 넘어간다. 새벽에는 영화 리뷰가 많다. 두세 시간 정도 지나면 다시 잠이 든다.
일어나 보니 오전 11시가 지났다. 다시 눈을 감는다. 출근을 할 때면 일어나는 동시에 후다닥 이었지만, 지금은 일어난 후 느긋함을 즐기려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느긋함은 사라지고 지겨움만 남았지만 그럼에도 이때 시간이 잠시 멈춰 있음을 느낀다. 그러다가 몸이 그만하라고 할 때 다시 tv를 켠다. 휴대전화도 열어보고 페이스북을 확인하면서 tv로 유튜브를 본다. 빛은 또 두 개뿐이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을 마시고 다시 침대에 누워 두 불빛을 응시한다.
뉴스에는 죽음을 자주 보도한다. 일반적인 죽음의 보도는 유명인 정도이고 대부분 안타깝고 어렵고 참혹하고 처참한 죽음이다. 자꾸 마음이 가는 건 혼자 지내다가 집에서 죽은 후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그 죽음이 발견되는 보도다. 보도의 태도는 안타까움인데 나로서는 갸우뚱한다. 단절은 살아가겠다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선택으로 본다. 알고 그럴 수도 모르고 그럴 수도 있지만 대게 그러하다. 선택은 슬픔을 낳지는 않는다. 이런 뉴스를 보게 되면 배가 빨리 고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견딘다. 아직 점심때가 되지 않았기에 버틴다. 어느 날부터 배고픔이 내 몸을 살릴 거라는 믿음에 빠졌다. 구워 놓은 달걀과 삶아 둔 감자에 눈이 가지만 참는다. 없는 종교지만 성호를 긋고 진심을 다해 죽음을 위로한다. 고생하셨습니다.
바스락거리는 과거가 살아와 옆에 앉을 때가 많아진다. 회사에 다닐 때는 열어볼 필요 없는 보관함에 오래 있거나 이미 재활용을 버린 것들이 떠오른다. 담담하게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쓰다듬기도 하고 다시 화를 내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한다. 그렇게 과거를 분리수거하면 또 잠이 온다.
잠을 자는 게 일하는 게 되었다. 잠을 깬 시간은 노는 시간이다. 회사를 다닐 때도 그랬다. 내가 아닌 사람으로 일하고 내 의지를 품고도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퇴근하면 회사에서의 일을 복기하고 정리하고 상처받은 나를 달랬다. 휴가 때도 회사에 있는 애처로운 나를 다시 출근해야 하는 서글픈 나를 생각하며 지냈다. 잠에서 깨면 그때와 같아진다. 꿈을 기억하고 해석하고 그다음 꿈을 궁금해하며 쉰다. 잘 때가 되면 어떤 꿈을 만날까 조금은 무섭기도 설레기도 한다. 깨면 오롯이 원하는 대로 논다.
창밖의 목소리. 젊은 여자의 깔깔대는 소리. 새소리. 큰 자동차가 지나가며 쿵쿵하는 소리. 친구를 부르는 아이의 소리. 오토바이 소리. 아파트 차단기 올라가는 소리. 자동차의 엔진 소리. 매미 소리. 매미 소리. 매미 소리. 매미 소리가 들리니 잠을 잔다.
사람의 소리와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의 소리와 이야기하려고 사람을 떠올린다. 떠오른 사람은 있는데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살고 있는 건물의 바로 길 건너 편의점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인사는 하고 고맙다고 하고 고생한다고 하고 오늘 술 한 잔 했어요 저번에 많이 취했죠는 해도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아저씨는 웃고만 있거나 흐흐, 예, 뿐이다. 다시 생각을 해본다. 이야기할 사람을 찾아보다가 없음을 만나니 마음이 편해져서 다시 잠이 든다.
2. 기억
지루함은 반복에서 나온다. 지루함은 반복에서 나온다. 지루함은 반복에서 나온다. 이렇게 소리를 내어 말해도 지루해지면 밥을 먹지 않는다. 발이 먼저인지 손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는데 밥을 먹지 않으면 배고픔보다 저려 오는 게 먼저다. 한 번씩 거울을 보면 눈빛은 맑아지고 볼은 홀쭉해져 있다. 죽음에 이를까 봐 몸의 세포들이 잔뜩 겁을 먹게 되면 이렇게 온통 난리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지루함이 녹는다.
아픈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알 수 없음은 사랑을 나누는 감정과 같다. 아픈 적이 별로 없어서 병은 내게 미지의 대상이며 에로스이다. 사랑마다 아팠으니 병은 에로스가 맞을 것이다. 머리가 욱신거리고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먹는 게 힘들어지고 성욕이 생기지 않는 건 삶의 이질성이다. 같은 것의 반복으로 살아온 염증은 이제야 제거된다.
밖을 나가는 것을 떠올려 보다 그만둔다. 빛이 불편하다. 빛이 나를 드러내게 하기에 불편하다. 어둠이 잔뜩일 때라도 빛은 어느 정도 머물러 있기에 나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드러냄은 관찰에서 비교로 이어지기에 힘들다.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기억들을 꺼내 본다. 오십여 년을 밖을 오가며 살았었다. 기억은 원치 않게 많다. 기억은 지워지기도 하고 변색되기도 하지만 선명하게 그대로 고정된 것도 있다. 선명한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은 지금의 나를 고정시킨다.
십여 년 전 서교동이었다. 겨울이었고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인문학 수업을 하는 공간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저녁에 그곳에서 수업을 받았다. 그날은 수업을 받은 지 한 달쯤 된 날이었고 수강생은 삼십 대에서 육십 대까지 있었고 여덟에서 열 명 정도였다. k강사는 80년대 초반 학번으로 유럽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온 남자였다. 특정 철학자에 대해 우리나라 권위자라고 했다. 그는 쫓긴 듯 보였다. 그의 모습이 현대 철학과 같이 불안정했다. 감정적이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한국어 발음에도 프랑스어의 뉘앙스가 묻었고 가끔씩 프랑스어를 곁들였다. 텍스트를 준비해서 읽는 수업이라서 진부했지만 내용이 새로웠다. 그 철학자의 의견이 매력적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밤 10시쯤이었는데 대부분 뒤풀이를 했다. k가 참여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뒤풀이는 항상 이뤄졌다. 뒤풀이 때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항상 화기애애했다.
그날은 뒤풀이를 진하게 하자며 9시쯤 수업이 끝났고 1차 뒤풀이를 맥줏집에서 하였다. 열 명 가까운 사람이었고 나는 이야기에 속하지 못하고 빙빙 돌았다. 정치 이야기를 하고픈데 사는 이야기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앞에 있는 사람과 간신히 말을 하며 개인적 평등주의와 사회적 평등주의를 구별하고 있는데 k가 흠칫 놀라며 내게 관심을 보였다. 소주가 당겼지만 하와이 인테리어의 술집이라서 맥주만 팔았기에 더 소주가 간절했다. 1차 끝나면 집에 가는 정류장 근처에서 순댓국에 소주 마셔야겠다고 다짐하고 모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주변에 맞추는 삶이었다.
다들 밖으로 나왔다. 눈이 오기 시작했고 눈으로 낭만이 일었다. 아이가 있는 여자분들이 집에 가기 싫다며 한탄을 해댔다. k를 추종하는 서넛의 사람들은 오늘은 이 집으로 가자 아니다 저 집이다 유쾌했고 나는 조용히 뒷걸음쳤다. 오른쪽으로 도는데 k가 나를 크게 불렀다. 우리 이야기가 남았잖아요 하며 나를 이끌었다. 소주 마시나요라고 물었더니 당연하죠 해서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추종세력의 새 멤버라며 다들 환영했고 술이 깔렸다. 술자리이기보다는 k의 수업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에 하지 못한 철학에 대한 일반적 궁금함을 짧게 질문하면 k가 길게 답했다. 술이 달았다. 스무 살 꿈꾸던 술자리였다. 문학예술 철학 정치 시사가 흐른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게 꿈이었다. 십여 년이 한참 더 지나서 어릴 적 꿈이 눈앞에 놓였다. 말에 힘이 차오르면 이기지 못해 몇 번이나 일어나는 k는 연극을 하는 배우처럼 보였고 그를 추종하는 이들의 행복한 모습은 기쁨으로 안착되었다.
시간이 오늘에서 내일로 되자 하나 둘 빠졌고 정년 은퇴했다는 기자 출신의 아저씨와 k와 나만 남았다. 술집을 옮겼다. 그 자리에서 둘은 프랑스어와 영어와 한국어를 써 가면서 대화를 나눴고 나는 반칙이라고 눈을 부라렸지만 무시당하고 태도를 바꿔서 감미로운 프랑스 말이나 들으면서 소주를 마셨다. 오징어 횟집은 그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았고 우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지기 않기 위해서 더 마시고 크게 떠들었다. 발악이었다. 온몸에 있는 피에 술이 스며들어서 세상이 밝아졌다.
새벽 2시가 되었을 때 오징어 횟집에 손님들도 떠나고 식당은 한가했다. 끝이 없이 이야기를 하던 기자 출신의 아저씨는 배우자의 연락을 받고 떠났다. 이제 우리도 나가자고 해서 k와 같이 나와서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길에 눈은 이미 많이 와서 쌓였고 쌓인 눈 위로 또 눈이 왔다. 차로 와서 대리 운전을 불렀으나 당연히 잡히지 않았다. 불이 켜진 식당이 있기에 그곳으로 들어갔다. 24시간 하는 김치찌개 집이었고 손님이 한 팀이 있었다. 소주를 시키고 다시 말이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비판을 하려면 공격당할 요소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 년을 넘게 담배를 끊었었다. 꿈속에서 담배를 핀 나를 의지가 약하다며 자책하던 때였다. 프랑스 유학 시절을 물었고 유학 전 80년대 초반의 학교생활을 물었다. 건조한 그의 대답이 있었고 소주를 계속 마셨다. 그는 말을 하다가 흥이 오르면 자리에서 일어섰고 가게 사장은 그럴 때마다 크게 뭐라고 하면서도 나가라고는 안 했다. 그의 말은 계속되었고 자신의 말에 의해 과거에 몰입하고 있었다.
새벽 4시가 되었다. 술은 한참 전에 취했고 졸리기까지 해서 언제인지 불명확한 그의 말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말이 잠시 끊기고 얼굴이 구겨지는 것을 보고 잠이 깼다. 흐느끼며 말했다.
“내가 군대에서 고참에게 강간을 당하고 있었을 때 내 여자 친구는 백골단에게 얻어맞고 죽었어.”
그가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 같이 나갔다. 한 대 달라고 했다. 어이 동생 그러지 마. 5년 끊었다며. 형님 끊을 이유를 잃어버렸어요. 한 대 주십시오. 눈이 온 새벽은 환했다.
식당으로 들어와서 소주를 한 잔 하고 이번에는 내가 일어섰다.
“기나긴 밤이었거늘 압제에 밤이었거늘 우금치 마루에 흐르던 소리 없는 통곡이어든.”
남자 사장이 또 제지했다.
“마지막만 할게요.”
“그만하시라고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폭정에 폭정에 세월 참혹한 세월에 살아 이 한 몸 썩어져 이 붉은 산하에.”
“그만 좀 하라고요. 그만 나가요.”
“살아 해방에 횃불 아래 벌거숭이 산하에.”
“뭐 하는 거예요!!!”
“사장님 한 번만 봐주세요. 이 분 여자 친구가 백골단에 얻어맞아 죽었다잖아요. 한 번만 봐주세요.”
해가 떴다. 술이 아직 부족했다. 7시쯤이었을까 8시쯤이었을까. 형님이 된 k가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다시 홍대 쪽으로 향했다. 덜덜덜 가는 자동차와 자꾸 미끄러지는 자동차와 이미 미끄러진 차 둘이 있었다. 아침부터 문을 연 고깃집이 있었다. 갈매기살 2인분을 시키고 소주를 시켰다. 둘은 이제 웃고 있었다. 출판사를 하자고 했다. 출판사를 하며 훌륭한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과 술을 마시자고 했다.
“형님, 저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박근혜 정부가 끝나면 이제 제 삶을 살고 싶어요.”
“동생, 아니야. 이 정부가 끝나도 세상은 암흑이야. 다들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고 있어. 자신의 삶을 가두고 살고 있어.”
“알죠, 형님. 저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혁명을 하고 싶어요.”
“그게 되나? 하하하. 그래 일단 한 잔 하세, 동생.”
오전 11시가 되어서 고깃집에서 나오니 눈이 녹고 있었고 사람들이 눈을 쓸고 있었다. 우리도 집에 가야 하는데. 축제가 끝났는데.
“동생 정말 할 말이 있어. 한 잔만 더 하고 가자.”
근처 2층 중국집에 갔다.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술 취한 우리를 보며 사장님이 받지 않으려고 하다가 한 잔만 마시고 갈게요 하니 앉으세요 했다.
“형님 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
“일단 한 잔 줘 봐.”
짬뽕에 소주를 마시며 k는 행복을 몸에 달았다. 하늘 위로 떠오르듯 다시 자리에 일어서서 박근혜 개 같은 년 그 씨발년을 계속 반복했다. 다급히 내가 일어서서 그를 앉히고 몸을 돌려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그는 그럼에도 행복해 보였다. 이제는 담배를 물었다.
“형님 여기서 담배 피우면 안 돼요.”
“그게 동생 있잖아. 프랑스에서는...”
종업원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하며 화를 냈다. k는 갑자기 일어서서 외투도 없이 밖으로 나가 버렸고, 얼른 계산을 하고 전체를 보고 크게 사과를 하고 그의 옷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으나 그가 보이지 않았다. 술이 취해서 몸은 가난했고 날이 추워서 정신은 반짝였는데 그는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토요일 오후의 열기로 눈을 녹이고 있었다. 세상에는 우연의 운명을 믿을 때가 온다. 저 골목에 있을 것 같아서 가보니 그가 있었다. 그는 서서 울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니 나를 꼭 안더니 일그러진 말을 하며 울었다. 나는 진부한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형님 택시 탑시다. 여기 옷 입고 목도리 하고 이제 갑시다.”
택시를 태우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3. 외출
시계는 근대의 상징이라고 했다. 이사를 했을 때 시계를 없애려고 했는데 필요 없는 생각이었다. 회사를 나가지 않아도 시계는 필요했다. 안방 침대에서 몸을 돌려서 거실에 있는 시계를 본다. 해가 떠 있을 때는 시계가 보여서 시계를 보는 놀이를 한다. 상대성이론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시간의 흐름은 제각각이다. 5분과 10분이 같을 때도 있고, 20분 보다 40분이 긴 적도 있었다. 이 시계 놀이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때 자주 했다. 길거리에서 일상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시계 놀이는 완성된다.
비가 오면 집에 머무르기 좋다. 어두워도 집에 머무르기 좋다. 흐린 날은 집에서 음악을 듣기 좋다. 아침에는 주로 잠을 잔다. 날이 좋은 오후였다. 분리수거를 할 때가 되었다. 보통은 모두가 잠든 후에 나가서 분리수거를 하고, 달을 보고, 별을 보고, 동네를 걷다가 들어왔다. 오늘은 지금 나가고 싶었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밖을 나갔다. 빛이 두려웠다. 빛이 내게 와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게 두려웠다. 사람들이 없어도 벽이 현관문이 계단이 엘리베이터가 나를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럼에도 지루함이 두려움을 이길 때가 있다. 그날은 볕을 맞으며 분리수거를 하기로 했다. 어둠에서 보이지 않는 더러움들이 가득 보였다. 그때였다.
“몇 동 몇 호?”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아저씨였다. 뒤통수에 내리꽂는 질문이었다.
“네?”
“몇 동 몇 호냐고.”
눈에 힘이 들어가니 몇 호냐고요로 바뀌었다.
“701동 삽니다.”
이 정도 하고 동네를 걷고 싶었다.
“그니까 몇 호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여기 산다고 말씀드렸죠.”
“몇 호 사는지 말하는 게 어렵습니까?”
“저기 사장님. 여기 살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대뜸 물어보는 게 인권 침해인 거 몰라요? 저 알아요? 첨부터 반말하고. 본인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아니 경찰도 신분부터 밝히고 무슨 이유인지 협조면 협조, 강제성이 있으면 강제성이 있다고 말하는데 사장님이 무슨 권리로 보자마자 본인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몇 호냐고 대뜸 묻는 거죠?”
“그게 아니라 여기 자치회 회장이고 여기 살지 않는 사람들이 여기에 분리수거를 하기에 그런 거죠.”
“그니까 알겠어요. 저 여기 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발을 돌려서 저 쪽으로 나가려는데
“아니 몇 호 사냐고?”
온몸에 불이 붙었다.
“사장님 몇 살이에요?”
“용띠요.”
“이름이 뭐예요?”
“권명호요.”
“어디 권 씨예요?”
“안동 권 씨요.”
“무슨 일 해요?”
“집에서 놀고 있소.”
“내가 이렇게 질문하니까 기분 어때요?”
답이 없었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요. 사과하세요. 당신에게는 내가 어디 사는지를 확인할 권리가 없다니까요. 여기 분리수거장 관리하느라 힘들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제가 여기 사는 사람이 맞는지 증명하라는 것은 인권침해라고요.”
“제가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미안하게 됐습니다. 다른 단지 사람들이 와서 분리수거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습니다.”
“아무튼 사과하셨으니 됐어요. 서로 갈 길 갑시다.”
내려오는 길 옆에 있는 편의점 파라솔에 할아버지 둘이 막걸리를 마시며 감정 없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나의 응시에 그들은 고개를 돌리며 못 본 체하고 아무 일 없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보며 지갑을 가져왔는지 확인했다. 지갑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돌아서 산책을 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직진하여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중, 고등학교 때 시간이 남으면 하던 놀이가 있다. 세 번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는 것이었다. 오늘 그 놀이를 다시 하기로 했다.
몸의 뜨거움이 그대로였다. 몸의 진동은 여전했다. 걷고 있는데 바닥에 닿는 느낌이 없었다. 두 걸음 세 걸음 더 몇 걸음을 걷다 보니 웃음이 나왔다. 빛은 셌고 하늘은 맑았다. 사람들이 거니는 길에서 혼자 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