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때로 지나가는 것을 잡지 않았다. 애끓는 마음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가 들어앉는다. 품어 있는 것은 팔다리가 없고 썩지도 않는다. 한참을 머물렀다가 때때가 되었을 때 밖으로 나간다.
편의점 앞에 자리 잡은 건 아내 때문이다. 말 주변도 없고 어울리는 것도 못하기에 주변만 맴돌면서 살아왔다. 자랑할 것도 특별히 없지만 남에게 잘못한 것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팔 것들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는데 편의점 주인이 나와서 연유를 물었다. 이렇다 저렇다 하니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서 팔란다. 살면서 이런 호의를 받은 적이 없어서 그의 의도가 뭘까하며 망설였다. 욕심을 가진 적이 없어서 성공하지도 못했지만 사기도 당하지 않았다. 내 아는 사람들 중 사기당한 사람은 수두룩하다. 사기당하면 얼마나 당하겠냐 하고 그러자고 하고 고맙다고 했다. 그래도 한 번씩 거울을 보는 사람이다. 내가 나를 아는데 저니가 나를 엮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엮어봤자 이 하루치 풀떼기뿐이니 고마움을 받기로 했다.
몇 개월 지내보니 집에 있는 것보다 나았다. 빈둥거리는 게 체질이라서 직장도 한 곳에 있지 못했고 재밌게 하던 일도 좀 지나면 그저 그랬다. 오십 좀 넘고 아이들 크니 돈이 그리 많이 들지 않길래 얼렁뚱땅 그렇게 되었다며 아내의 눈치 보는 빈둥거림을 선택하게 되었다. 남자가 일 안 하면 폐인 된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나 맞았다. 가만히 있어도 좋았고 가만히 있지 않아도 좋았다. 꽃이 피고 잎들이 짙어 가고 소나기가 오고 시원한 바람이 불는 것도 좋고 따뜻한 이불에 들어가면 더 좋았다. 부르는 것과 듣는 것은 고만고만한데 보는 게 특히 좋았다. 집 주변 작은 산에 자주 올라가는데 이것저것 보러 가보면 좋았다. 편의점 앞에 있으니 산에 없는 것을 보는 맛이 있었다. 사람을 보는 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을 몰랐다. 감정에서 나오는 표정, 각기 다른 얼굴과 체형, 걷는 모습, 뛰는 모습, 서있는 모습, 기다리는 모습, 술에 취한 모습, 화내는 모습, 멍한 모습, 어쩌다 우는 모습도 다 좋았다. 여기도 들리는 것은 별로였다.
다들 그렇겠지만 사는 이유를 모르고 살았고 말의 의미를 모르며 써왔다. 직장 다닐 때 술자리에서 상사 하나가 내게 건실하다고 하며 등을 두드렸다. 그의 표정에서 칭찬임을 알고 고맙다는 몸짓을 했지만 그 말이 어떤 말인지 몰라 궁금했다. 그 뒤로도 몇 번 다른 이들에게 그 말을 들었는데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서 다들 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사전에서 찾아보지는 않았다.
3시 30분에 일어나는 건 군대 때부터 습관이었다. 포항에 있는 특수부대에 원치 않게 입대하고 새벽 근무를 늦은 내게 선임이 내린 벌이 3시 30분 기상이었는데 내가 선임이 된 후에도 전역을 한 후에도 일흔이 넘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다들 일어나면 씻던데 난 자기 전에 씻는다. 대신 일어나면 바로 변기로 향한다. 일을 보고 집 앞에 나와 맨손체조를 하고 산으로 간다. 산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뉴스를 본다. 밭에 나가서 대파 가지 오이 고추를 뽑고 끊고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 아내의 차를 타고 편의점에 온다. 아내는 일관된 말과 표정으로 나를 대한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점심 잘 챙겨 먹으라고 하고 6시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여름 중의 하나였다. 평소처럼 편의점에 있는 도시락과 막걸리를 샀더니 자주 보는 알바 아가씨가 종이컵을 서비스로 줬다. 여름이어도 나이가 들어 좋은 게 그리 덥지 않다. 이번에 군대 갔다 온 손주랑 밥을 먹으며 막걸리를 한 잔 하다가 건실하다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휴대전화로 찾더니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했다. 그중 건전하고 착실하다. 건전은 알겠는데 착실은 착하다는 것으로 알고 넘어갔다. 아마도 이거였나 보다. 내가 착실했구나. 그랬구나. 내가 건전했나?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아내에게 미안한 일도 있었고 친구에게 미안한 일도 있었고 부모에게 형제에게 미안한 일도 있었다. 내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일도 있었다. 나 정도면 건전한 것이구나. 그들은 내 미안함의 온상들이었는데 왜 나를 건전하다고 했을까 하고 있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아, 네.”
그는 웃고 있었다.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당연히 난 천진의 뜻을 모른다.
“막걸리 한 잔 하세요? “
“네. 더워서요.”
“여름에 막걸리 좋죠.”
“아. 네.”
밥을 절반쯤 먹을 때였다. 막걸리를 한 잔 달라는 건가? 채소를 산다는 건가? 막걸리를 마시려다가 멈추고
“한 잔 하시겠어요?”
“좋죠.”
편의점에 들어가서 머리를 숙이고 종이컵과 젓가락을 부탁하니 방긋 웃으며 건네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인가요?”
“집이 근첩니다. 지나면서 몇 번 봤어요. 혼자 계시길래 저도 말벗이 될까 봐 왔습니다. 실례라면 사과드리지요. “
”아이고, 아이고. 아닙니다. 한 잔 하시고 안주 드십시다. 다 못 먹어요. “
”일단 한 잔 주십시오. 다음 잔은 제가 사겠습니다. “
그는 말이 많았다. 많았으나 경계하는 말이면서 떠보는 말이며 가까워지려는 말이었다. 그가 편의점에 가서 한 병을 사 오고 두 병을 사 오는 동안 풀떼기는 계속 팔렸고 그럴 때마다 말이 끊기는 게 싫은 그는 소리를 키웠다. 그게 불편해서 그가 가기를 바랐는데 어느새 형님으로 호칭을 바꾸며 막걸리 한 병을 더 사러 갔다.
“형님, 육포 좋아하시죠? 막걸리엔 육폽니다.”
“그래, 그래.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냐?”
“날이 더우니까 더 취하네요. 근데 나이 들어 안 취하면 뭐 합니까?”
그는 빨갰다. 말이 없이 저 쪽을 봤다. 나도 오랜만에 더위가 느껴져 잠바를 벗고 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했다. 술을 그리 좋아하진 않은데 오늘은 또렷하게 취해서 좋았다.
“형님, 제가 살다 보니까요. 다 모르겠는데요. 하나 알 것 같은 게 있습디다. “
뻘건 그의 눈이 반짝였다. 저런 눈빛은 대부분은 싸움으로 끝났었다. 내가 또 후회할 짓을 하는구나. 이제는 많이 없는 팔의 솜털들이 삐쭉 올라왔다.
”질문을 하면 형님이 힘드니까 제가 쭉 이야기할게요. “
그는 이제껏 본인만 말했었다.
“음악 하는 사람들 빼고 예술하는 애들은 다들 자기가 신이 되고 싶은 겁디다. 시 쓰는 놈 소설 쓰는 놈 그림 그리는 놈 다들 자기가 세상을 만들려는 욕망에 들끓는 놈들이에요. 근데 여기서 음악 하는 놈들은 달라요. 음악 하는 놈들은 순종적이에요. 봐보세요 이미자 동백아가씨 몇 년을 불어요. 같은 것의 반복입니다. 조용필 단벌머리 몇 년이에요. 미술 하는 놈들이 같은 거 그린 가요? 시 쓰는 놈들이 소설 쓰는 놈들이 같은 거 쓰나요? 영화 연극하는 놈들은 딱 중간입니다. 일단 광대나 서커스가 기원 아니겠어요? 장사를 해야죠. 근데 또 지 잘난 맛에 확 간 놈들도 있어요. 그래서 왔다 갔다 하죠. 요즘 교보 가보니 시는 그대로인데 소설 쓰는 놈들이 영화하는 놈들처럼 돼버렸어요. 예술한다는 놈들이 사람들하고 공감하려고 해요. 지들이 치고 나가야 하는데.”
막걸리가 더워졌다. 막걸리가 오래 머물던 종이컵은 내 몸처럼 늘어져 있었다. 반은 알겠고 반은 모르겠다. 잘 모르는데 익숙한 단어가 나오면 대략 그렇게 이해했다.
“빠앙. “
내 구원자여. 내 아내. 시간은 어두워졌는데 날이 어두워지지 않는 날 얼굴과 몸이 붉어져서 대파 고추 가지 또 뭐였더라 아무튼 그것들을 챙긴다. 아내의 차에 넣고 있는데 형님 하던 그는 도와주지도 않고 앉아있다. 다 싣고 보채는 아내에게 잠 깐 만이라고 하고 그에게 다가간다.
“몇 년 생이요? “
”형님 53년생 뱀띱니다. “
”55년생 양띠요. 당신 내게 실례한 거요.”
아내 차는 포근했다. 일관적인 내 아내는 오늘도 한결같이 운전 중엔 운전만 했고 나는 남은 대파와 고추와 가지와 또 뭐였더라를 내일 파는 게 맞나 아니 그냥 가다가 처남집에 줘야 하냐를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