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N번째 퇴사기 : 저 다음 달에 퇴사합니다!

1. 저 다음 달에 퇴사합니다!

by 하루

목차



1. 저 다음 달에 퇴사합니다!

2. 요즘애들은 끈기가 없다고요?!

3. 나의 1번째 퇴사기 : 열정페이인데 경력인정도 안된다고?

4. 나의 2번째 퇴사기 : 계약직, 이건 안되는데 저건 해야 돼?

5. 나의 3번째 퇴사기 : 여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렴

6. 낯선 휴식,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아

7. 나의 4번째 퇴사기 : 관행? 이 정도는 괜찮다는 건 뭔데

8. 나의 5번째 퇴사기 : 가스라이팅 당한 거라고?!

9. 나의 6번째 퇴사기 : 병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10. 나의 N번째 퇴사기 : 끝나지 않은 이야기


1. 저 다음 달에 퇴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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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째 사직서를 제출했다.


6번의 사직 역사상 처음으로 전자결재로 사직서를 올렸다. 그간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언젠가 사직서를 들고 기관장실 앞에서 떨고 있었던 게 생각난다. 이번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쉬웠다. 퇴사 경험이 쌓였다는 것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먼저, 우리 같은 팀 동료와 팀장님께 퇴사 소식을 알려야 했다. 월요일부터 팀장님과 만남을 고대했건만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와 육아까지 소화하느라 바쁜 우리 팀장님을 따로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사실 바쁘기는 나도 만만치 않았다. 이 직장에서의 내 미래는... 그래 딱 팀장님의 모습이겠지.


굳은 다짐을 하고 갔던 월요일에서 어느새 시간이 흘러 금요일이 돼버렸다. 하지만 더 미룰 수는 없었다. 업무도 조정하고 새로운 사람도 채용하려면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듯했다. 무엇보다 내 공백을 채우기 위해 바빠질 팀장님과 동료를 생각하면 미리 말해 조정하는 게 꼭 필요했다.


금요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퇴사 소식을 먼저 알리기로 했다. 오전 회의가 1시 넘어서까지 진행되어 회의를 마치고 점심식사로 팀원과 독대할 시간이 생겼다. 마침 1시가 넘어 점심시간은 모두 끝난 상황이라 회사 근처에서 식사를 해도 우리 대화를 들을 사람이 없었다.


나의 퇴사를 우리 팀이 아닌 다른 동료들에게 먼저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꼭 이런 독대가 필요했다. 마침 동료가 먼저 퇴사 계획과 그 이후의 계획에 대한 화두를 먼저 던져 주었다. 혹시 어떤 눈치를 챈 건가 싶어 나의 퇴사가 곧 다가올 것임을 웃으며 가볍게 알렸다.


“저는 조만간 하차할 것 같아요”


가볍게 내뱉어진 나의 말에 동료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곧 좌절했다. 팀장 1명, 팀원 2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팀에서 나의 퇴사는 남은 이들에게 큰 짐이 될 것이 자명했다. 동료는 다른 팀에서 근무하다가 1년 전 이동해 왔다. 때문에 처음 우리 팀에 왔을 때부터 나를 많이 의지해왔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의 퇴사 이유를 듣곤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일 거라며 나의 결정을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팀장님께 독대를 요청하였다. 동일한 소식을 팀장님께도 전하고, 팀장님 역시 나의 결정을 인정해 주셨지만 눈에 띄게 좌절하셨다. 이후 절차는 결재라인을 타고 부드럽게 이어졌다. 물론 나를 설득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몇 달을 고민하고 내뱉은 퇴사가 회유하는 말과 미래를 약속하는 것으로 돌이켜지진 않았다. 퇴사를 내뱉을 때 나는 이미 다른 미래를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결재란에 박힌 담당, 기관장 두 칸의 결재방이 나의 퇴사까지 남은 유일한 스탭이다. 지금까지 회사생활도 이렇게 쉽게 풀리는 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모든 문제들은 퇴사 직전,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만 해결을 약속받을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이곳에 남아있는다면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정말 일어날 것인가? 하지만 결재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런 생각들은 사라졌다.


하... 오늘 뭐 먹지?!


Dobby is Free?


퇴사, 그 단어가 주는 감정은 참 복잡 미묘하다. 기쁨, 환희, 후련함, 막막함, 두려움, 슬픔, 좌절,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시간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퇴사를 내뱉은 순간 내가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기쁨과 환희가 아닌 미안함이었다. 내가 그 회사의 유일한 직원이 아닌 이상 퇴사에는 늘 남은 자들이 생긴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했던 그 일(work)들도 남는다. 남은 자들이 당분간 나눠가져야 하는 짐이 얼마나 클지, 그리고 남은 자들의 마음에 남기고 갈 파도가 얼마나 크게, 오래 지속될지 모르기에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았던 이번 퇴사에서는 미안함이 첫 감정이었다.


물론 매번의 퇴사에서 미안한 감정이 먼저 들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퇴사에서는 분노가 나의 첫 감정이었다. 도대체가 바뀌지 않는 시스템, 말이 통하지 않는 최고 결정자, 무능력한 상사 앞에서 내가 내뱉은 퇴사는 분노와 원망이 얽혀있기도 했다. 또한 새로운 도전을 위해 퇴사를 결정했을 때의 나는 모험을 떠나는 첫걸음을 뗀 마냥 호기롭기도 했다. 공부를 위해 퇴사를 결정했을 때는 사뭇 비장하면서 동시에 내가 이루지 못할까 두렵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이 감정들이 또 바뀌었다. 퇴사날은 대부분 후련함이 들었지만 일주일 후쯤은 거의 대부분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내 선택이 맞는 선택이었을까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지게 된다. 다음 스탭까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함이 찾아오기도 했다. 하드워커인 나는 그 불안함을 치워버리기 위해 계속해서 무언가 일을 만들어냈던 것 같다.


감정도 감정이지만 돈도 문제다. 퇴사 후 받은 퇴직금을 까먹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 년 일한 퇴직금은 애석하게도 몇 달이면 생활비로 다 소진되고 만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활비가 덜 나가진 않는다. 물론 든든한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 조금씩 용돈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다면야 조금 덜하겠지만 자신의 벌이만큼 넉넉하지도 맘 편한 지도 않다.


경제적 자유가 무너지는 것, 퇴사가 자유롭지만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퇴사에 부정적인 감정과 요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는 사실 얼마를 주고도 바꾸기 힘든 가치가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가고 싶었던 곳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일 때문에 챙기지 못했던 나의 욕구들을 자유롭게 또 여유롭게 실현시킬 수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 나의 다음단계를 보다 넓은 방향으로 탐색해 볼 수 있다는 것도 퇴사의 큰 장점 중 하나인 것 같다. 틀에서 나와 세상을 보면 세상에는 가능성 투성이다. 물론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있어야 보이는 것이겠지만.


불안한 자유.


퇴사 상태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표현은 이 단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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