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이 자신의 방침에 강제로 따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갑질공화국 :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갑질하는 행태가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를 이르는 말
대한민국은 갑질공화국이다.
지어낸 말이 아니라 '갑질'이라는 말에 대해 궁금해 인터넷 사전을 찾다가 사전에서 발견한 단어이다.
우리나라에 갑질이 만연한 것은 사전도 인정한 사실인 것 같다.
갑질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외국에서 갑질을 번역하지 않고 'Gapjil' 그대로 표기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갑질은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이 횡포를 부리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갑질은 주로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 즉, 권위나 권력이 중심이 되어 직장 등 위계관계가 있는 곳에서 자주 나타나곤 했다.
그런데 요즘 이 갑질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다. 갑질의 중심이 사회적 관계에서 돈으로 옮겨가며, 일상 곳곳에서 갑질이 벌어지고 있다.
"내 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
"아니 월급 받고 일 안 하세요?"
"내 세금으로 돈 받으면서!"
한 아파트 경비원이 규정을 어기는 한 입주자에게 규정을 안내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입주자는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야! 내 돈으로 월급 받으면서 별걸 다 참견하네!"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갑질을 했다.
지나가던 다른 입주자는 그 광경을 보고서 "월급 받고 일 안 하세요? 얼른 정리하세요. 시끄러우니까"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면 더 이상 상대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다.
마치 채권자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달라고 요구하고, 자신의 기분을 맞추지 않을 시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협박하기도 한다.
조금의 불편이라도 겪으면 마치 돈을 떼어먹기라도 한 듯, 당당하게 자신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기준에서의 서비스를 요구한다.
응하지 않으면 환불, 영업방해, 별점 테러, 공개 비난, 악의적인 소문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의 손해를 보복한다.
정말 악질 채권자다.
편의점, 카페, 식당과 같은 자영업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인터넷 카페가 생길 정도라고 하니 이들의 고충을 알만하다.
꼭 직접 돈을 주고받는 현장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뜨거웠던 학교 문제에도 이런 유의 갑질이 많이 나타났다.
'내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논리이다.
학교, 동주민센터, 구청, 세무서 할 것 없이 갑질로 인해 몸살이다.
유튜브를 운영하는 한 공무원이 도대체 얼마나 큰 비용을 지불하기에 공무원에게 이렇게 갑질을 할까 계산해 봤더니 공무원 1인의 월급에 국민 1인이 지급하는 비용은 연간 약 0.59원이었다고 한다.
액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지만 왠지 모를 허무함은 어쩔 수 없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죄다 불편한 감정에 대한 것이지 결코 돈과 상품 혹은 서비스의 교환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다.
카페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커피를 시켰는데 시킨 음료를 주지 않아서 혹은 음료에 문제가 있어서 갑질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경우는 갑질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커피는 정상적으로 받았는데 직원의 말투, 태도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다던지, 규정을 지키지 않아 규정에 대해 안내한 건데 기분이 나빴다든지, 추가로 요구한 무언가를 들어주지 않아 불편하다든지, 항상 이런 지점들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돈을 지불했으니 그 정도 서비스를 받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말하는 이들.
정말 타인의 말투, 태도에 참견할 권리,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권리,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까지 구매했다고 믿는 걸까?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돈 / 명예 / 권력 / 사랑 중 당신이 선택한 것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대부분이 돈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물질만능의 시대이다.
돈만 있으면 명예도, 권력도, 사랑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이 시대에 돈은 큰 파워를 가진다.
물질만능주의 : 경제적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여, 인간이 가져야 할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고, 인간을 경시하는 풍조를 일컫는 말
모든 가치 위에 돈이 있는 사회.
갑질이 가능한 것은 이 사회에서 그 어떤 권위보다 돈이 차지하는 권위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 권위는 심지어 인권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듯하다.
'내 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라는 말만 봐도 그러하다.
갑질에서 대표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이 말 안에는 '내가 주는 돈의 가치가 너의 가치이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상대의 가치를 돈이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것으로 절하시켜 버리는 말이다.
어떻게 하다가 사람의 가치마저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돈을 지불하는 순간 평범한 시민에서 '고객님' 혹은 '고용주'가 된다.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지위가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돈을 지불한 사람을 모시는 문화는 서비스산업의 발달로 인해 심화되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은 사회의 모습을 크게 변화시켰다.
1, 2차 산업혁명이 모두 공업과 연관된 것이었다면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조금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공업 위주의 산업에서 기술 위주, 서비스 위주의 산업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모습은 변하기 시작했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90년대 백화점의 풍경을 담은 영상이었다.
백화점 입구에 들어서면 인사를 전담으로 하는 직원들이 유니폼을 갖춰 입고 기분 좋은 톤으로 인사하며 고객님들을 반겨준다.
각 층 에스컬레이터 앞에도 안내원이 배정되어 있어 손짓과 미소로 반기며 인사해 준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각층의 버튼을 눌러주며 안내해 주는 안내원이 있어, 이들 역시 밝은 미소와 솔 톤으로 고객님들을 반겨준다.
백화점에 입장할 때부터 나갈 때까지, 최고의 대접으로 고객님들을 모시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돈을 지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진 문화이지만 그 시절을 경험했던 이들이 '고객이 왕이다'라는 사고방식을 고착시킨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하지만 극강으로 치닫던 서비스업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개인주의, 합리주의와 같은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 비대면 등의 산업 구조 변화까지 불어닥치며 과열되어 있었던 서비스업은 적정 수준에서 적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안정화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사람들에게 여전히 '손님이 왕이다', '돈을 썼으면 완벽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와 같은 사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세상 살기 참 편하다.
큰 비용을 지불할수록 불편함은 줄어든다.
하지만 불편함이란 감정 자체는 절대 사라질 수 없다.
유선 청소기를 사용하다가 선이 따라다니는 게 불편해 무선 청소기를 구매했다.
그리고 얼마 뒤 무선 청소기를 들고 다니며 청소하는 게 팔도 아프고 불편해 로봇청소기 구매했다.
시간 예약도 되고 신경 쓸 게 없어서 좋다.
하지만 편하게 청소하다 보니 걸레질을 따로 하는 게 또 불편하게 느껴진다.
걸레질까지 되는 로봇청소기로 바꿨다.
그런데 가끔씩 빨아줘야 하는 걸레가 불편하고 냄새도 나는 것 같다.
아예 걸레를 빠는 기능까지 있는 로봇청소기로 바꿨다.
이렇게 청소기를 네 번이나 바꿨는데 문 뒤의 먼지가 그대로 남아있는 게 보인다.
내가 청소기에 쓴 돈이 얼만데…. 마음이 심히 불편하다.
돈이 행복을 주지 않는다면 그저 돈이 부족한 것뿐이라는 말이 있다.
만약 청소기를 4대나 바꾸고서도 마음에 들지 않아, 돈을 더 많이 주고 청소부를 고용한다면 불편함이 없어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가사 노동자를 고용한 후기, 혹은 가사 노동자의 후기 글을 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청소기가 아닌 사람이 청소해도 분명 불편한 부분이 생긴다.
돈을 더 많이 써서 청소 전문 업체를 고용한다고 치자, 얼마 동안 만족할 수 있을까?
불편함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불편함을 찾는다.
돈을 얼마를 썼던, 얼마나 좋은 것을 누리고 있건, 불편한 마음에 쉽게 사로잡히는 사람은 어디서든 불편함을 찾을 수 있다.
애초에 불편함이란 감정은 돈과 관련이 없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 가운데는 감정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행복하고 싶다고 행복한 감정을 살 수 있는가? 완벽한 만족을 파는 가게가 있는가?
돈을 지불했다고 해서 타인에게 당신의 완벽한 만족을 보장해 달라고 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돈이 많아도 불편한 사람과 반대로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도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써도 불편한 감정이 든다면, 오히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비법을 배우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닐까?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하지만 모든 것을 얻을 순 없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권리는 많다.
하지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권리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돈을 써서 행복해질 수 있지만, 돈을 아무리 써도 완벽한 만족을 얻을 순 없다.
돈을 휘두르지 말자.
당신이 돈의 가치로 대한 그 사람 역시 당신을 딱 그만큼의 가치로 대할 것이다.
그곳이 카페라면 6,000원, 식당이라면 11,000원, 편의점이었다면 2,000원.
갑질은 당신을 딱 그만큼의 가치로 절하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