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Oct 16. 2023

6. 불편한 사람들 ③ : 나, 나, 나

나, 나, 나


배달 주문 취소한 게 그렇게 잘못한 거야?

내가 배달을 시켰는데 동생이 치킨을 사 왔길래 10분 만에 취소했거든.
근데 취소하려고 전화했더니 아줌마가 한숨을 푹 쉬는 거야.
그거 그냥 다른 집에 배달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 이 집 단골인데 이게 한숨 쉴 만큼 그렇게 잘못한 거야?


최근 이런 종류글을 많이 보았다.

이런 장면은 많은 경우 자영업자, 혹은 공무원에게 많이 연출되곤 한다.

손님이나 민원인이 위의 글같이 자신의 불편함에 공감해 달라는 형식으로 글을 올리던, 공무원이나 자영업자가 먹고살기 힘들다는 형식으로 글을 올리던, 핵심은 비슷하다.

'나 같으면 해 주겠는데? 너 왜 안 해줘?'

라고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위의 사례만 보아도 글을 올린 사람이 적반하장 할 상황이 아니다.

치킨을 주문했고, 취소하는 과정에서 이미 자영업자는 실질적 손해를 봤다.

심지어 음식이 이미 조리에 들어간 상태임에도 손해를 감수하고 취소해 주었으면 죄송하고 감사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글쓴이는 도리어 자영업자의 한숨을 꼬투리 잡는다.

손님이 손해를 본 건 한숨 소리 한 번 들은 것 외엔 없지만 이 한숨이 불편하다.

사장님의 손해 : 비용, 시간, 인력 손해 <<< 나의 손해 : 한숨 한 번 듣기


이런 적반하장이 아니더라도 '나 같으면 해 주겠다'는 논리는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나라면 한 번쯤은 이렇게 해줄 텐데 너는 왜 이렇게 깐깐하게 구냐?'며 불편함을 표현하는 사람들.

흔히 말하는 '진상 손님'들이다.

카페나 식당에서 아이가 먹을 것을 따로(비용 지불 없이) 요구하는 부모들, 신분증 같은 확인 서류를 안 가져와 놓고 서류를 떼 달라고 하는 민원인들, 단골이라며 터무니없는 서비스를 요구하는 배달 진상들까지, 진상 손님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논리는 거의 비슷하다.

오로지 나의 편의를 위해 타인의 손해와 불편은 가벼운 일로 치부해 버린다.


상대방의 손해를 낮추고 자신의 편의를 마치 권리인 양 높인다.

상대방을 소인배로 만들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도대체  이 망가진 저울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망가진 저울


불편한 감정의 근원지가 비대한 자아라는 이야기를 앞서 했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일임이 분명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자아는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

때로는 우리 사회의 흐름이 이런 자기 중심성과 자아비대를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서점에 수많은 책들 중 베스트셀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나'이다.

'나를 사랑하자', '나는 소중해', '하고 싶은 대로 해', '받은 만큼만 해', '나를 위해 살자' 등 '나'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들을 보며 가끔은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 집중되어 있는 메시지들이 자칫 지나친 자기 중심성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까 걱정되서이다.


자기 중심성을 부추기는 양육 방식 중 하나는 잘못된 마음 읽기이다.

유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초청받은 조선미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들은 참 마음에 와닿았다.

잘못된 마음 읽기가 아이들을 망친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잘못했을 때 아이들의 마음만 읽어주고 그치게 되면 아무런 훈육 효과가 없을뿐더러 '내 마음이 이러니깐 이렇게 행동해도 돼'라는 당위성만 키워준다는 것이었다.

요즘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잘못된 마음 읽기의 파급력을 너무나 절실히 느낀다.


(수업 중 친구의 말이 기분 나쁘다며 갑자기 친구를 때림)
선생님 : 왜 친구를 때렸니?
아이 : 기분이 나쁘니까요. 쟤가 내 기분 나쁘게 했어요.
선생님 : 기분이 나쁘다고 친구를 때리면 안 되는 거야.
아이 : 아니요. 기분이 나쁘면 때려도 돼요.
        선생님은 쟤가 내 기분 나쁘게 했는데 선생님은 왜 나한테만 뭐라 해요?
        내 기분을 나쁘게 한 쟤가 잘못한 거잖아요!
        짜증 나요. 짜증 나서 수업 안 할 거예요. 짜증 나면 수업 안 해도 돼요.


위 대화 내용은 내가 경험한 실제 사례이다.

대상은 유치원생이 아닌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잘못된 마음 읽기는 아이가 자신의 마음에 따라 어떻게든 행동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고, 불편한 마음을 그 즉시 파괴적으로 표현하고도 반성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아이는 정말로 친구와 자신의 행동 사이 무게를 제대로 저울질하지 못했다.

이 아이가 자기 중심성이 발달하는 중학생 단계를 거쳐 사회에 나오게 되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참 막막해졌다.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좋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일 때 저울은 망가진다.

나와 타인, 나와 사회, 나와 도덕 사이에 망가진 저울은 항상 한쪽으로만 기울어진다.


이기주의


저울이 망가졌다.

많은 이들이 망가진 저울로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개인주의는 변질되어 이기주의가 되어버렸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독립된 권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나'의 자유와 '나'의 권리만 소중하게 여기며 이기주의를 심화시킨 것이다.


이기주의 : 어떤 대상의 이익이 최대화되는 행동을 올바름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사상


얼마 전 응급실에서 1시간여 동안 폭언을 하며 응급의료를 마비시킨 난동사태가 발생했다.

응급실에 실려 온 사람은 중년남성으로 사우나를 하다가 쓰러져 응급실에 온 뒤, 초진을 받은 후 검사를 권유받고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응급실에 심정지 환자가 나타났고, 응급실의 규정상 중증도 환자가 우선 대상이기에 우선순위에 따라 조치가 이어졌다.

그때 중년남성의 보호자가 이 상황에 불만을 품고 조치 중인 의사들에게 다가가 왜 먼저 온 환자를 방치해 두고 심정지 환자를 보냐고 따지기 시작했고, 1시간여를 폭언하며 난동을 부렸다. 

이 과정에서 다른 환자들의 진료는 계속해서 미뤄졌으며, 의사들의 설명에도, 경찰이 출동했음에도 보호자는 막말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어쩜 의사가 보호자한테 저렇게 말을 한 번도 안 지니?"


끝까지 이기고 싶었던 보호자에게는 생명의 기로에 있는 심정지 환자도, 자신과 동일하게 간절한 마음으로 응급실을 찾은 다른 환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온 자기 가족도 자신 때문에 치료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게의치 않았다.

단지, 초진을 받기까지 15분간 대기했던 불편한 나의 마음, 먼저 온 사람이 우선이라는 나의 신념, 내 기준의 억울함, 나의 입장밖에 없었다.

타인의 손해, 생명이 오가는 상황보다도 나의 기다림과 불편한 감정이 더 무거운 것, 이게 우리 사회 이기주의의 현주소이다.


진짜 공감


공감 :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


'나'에 매몰되어 버린 우리 사회는 이제 고개를 돌려야 한다.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진짜 필요한 것은 공감이 아닐까 싶다.


공감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의 입장에서 그의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 공감이다.

우리는 나의 불편함과 나의 입장뿐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 상대방의 입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공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가끔 그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풀 방법으로 사회문제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요즘같은 시대에 '공감 부족'은 마치 장점처럼 여겨지고 있다.

타인에게 마음 쓰지 않고, 눈 돌리지 않고, 나에게만 집중하며 살아가는 삶.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을 마치 세상을 영리하고 살아가기 위한 태도쯤으로 생각한다.


"나는 핵 T라서 공감 잘 못해"


사실 이 말에 나 스스로가 많이 찔렸다.

나 역시 저런 의 말을 많이 했던 터였다.

MBTI라는 성격유형 검사에서 T 와 F 는 각각 사고와 감정을 나타낸다.

T 유형의 사람들은 감정보다 이성적 사고를 더 많이 사용하고,  F 유형의 사람들은 사고보다 감정을 더 많이 사용한다.

때문에 T 유형은 F 유형의 사람들보다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T 유형이라서 공감을 못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공감은 감정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감에는 사고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상대의 기분을 유추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같이 울어줄 수 없더라도 상대방이 슬프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감을 못한다고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에 성격을 핑계로 댈 수는 없는 것이다.


'나'에 매몰되지 말자.

'나의 입장'을 강요하지 말자.

'나의 기준'에 맞춰주길 바라지 말자.

'나의 마음'만 들여다보지 말자.

내가 타인에 맞춰주지 못하면서 타인이 나에게 모든 걸 맞춰줘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기대도 버리자.

이전 06화 5. 불편한 사람들 ② : 내 돈이고 내 권리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