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선한 가을날, 오랜 친구와 함께 캠핑을 가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친구가 약속된 시간에서 1시간이나 늦게 모습을 나타냈다.
늦게 도착한 친구는 미안하다면서도 오늘따라 화장도 마음에 안들고 신발도 불편하다며 기분 안좋은 티를 내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은 다가오는데 잘 풀리지 않으니 기분이 안좋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넘어간다.
친구가 늦은 덕분에 셔틀버스 타는 시간이 늦어졌다.
우리가 늦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울긋불긋하게 변한 가을 풍경을 둘러본다.
바람도 시원하니 캠핑하기 딱 좋은 날씨이다.
친구는 셔틀버스 간격이 어떻게 30분이나 되냐며 짜증이 나있다.
슬슬 내 마음도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나 역시 장비가 그렇게 마음에 들진 않는다.
하지만 장비 셋팅이 우선이다. 어서 셋팅을 마치고 저녁에 있을 바베큐 파티를 준비해야한다.
캠핑장에서 바베큐라니 생각만해도 너무 좋다.
우여곡절 끝에 장비 셋팅을 마치고 저녁바베큐를 준비한다.
앗, 그런데 내가 사오기로 했던 쌈장이 빠져있다.
친구는 어떻게 쌈장없이 고기를 먹냐며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다.
후...더이상은 나도 참을 수가 없다.
불편함의 역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위 이야기에서 약속장소에 늦은 친구는 불편함의 역치가 낮은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다.
안되는 화장, 불편한 신발, 지각, 셔틀버스의 간격, 캠핑장비 등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면 바로바로 감정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
그 빈도는 매우 잦다. 그리고 표현의 방향은 항상 외부를 향한다.
나의 감정 깊이가 낮다보니 타인의 기분이나 감정까지는 고려하지 못한다.
반면, 위 이야기의 화자는 불편함의 역치가 높은 사람이다.
친구의 지각도, 셔틀버스에 늦게 타게 된 것도, 장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분명 불편한 마음이 드는 일들이지만 때로는 이해로, 때로는 환기로, 때로는 의무로 불편한 감정을 잘 다뤄낸다.
심지어 친구의 불평, 짜증에도 얼마간은 이해하고 참아준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 흔히 선을 넘었다하는 순간에는 불편한 감정을 표현한다.
사실 내가 지어낸 이야기 속 인물들이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 지각한 친구 유형의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즘은 이렇게 불편함의 역치가 낮은 사람들이 흔하기 때문이다.
쉽게 불평하고, 쉽게 짜증내고, 쉽게 화를 낸다.
왜 이렇게 금세 부정적인 반응을 해버리고 마는 것일까?
불편함을 견디는 힘과 담아낼 수 있는 총량은 사람마다 다르다.
역치가 낮은 사람들은 감정이 바로 태도 혹은 행동으로 연결된다.
감정에 대한 반응을 지연시키지 않고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반면 역치가 높은 사람들은 감정을 바로 반응으로 연결시키지 않는다.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적절한 방법으로 불편함을 환기시킨다.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경우, 역시 적절한 방법(사회적으로도 용인될 만한)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렇다면 역치의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처음부터 불편함을 잘 다루는 사람은 없다.
신생아에게는 쾌와 불쾌 두가지의 감정만 있다.
인지가 발달하지 않은 신생아들은 이 감정들을 다뤄낼 힘도 능력도 없기에, 불쾌를 느끼면 즉시 울음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영원히 신생아인 사람은 없다.
아이들은 발달 과정에서 다양한 과제들을 경험하게 되며, 그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불편함을 견디는 힘에 차이가 나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아이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어 어떤 아이는 조금 더 예민하고, 어떤 아이는 조금 더 둔감하다고는 하나, 불편함을 견디는 힘은 선천적이거나 기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마', '기다려', '아니예요' 등도 마찬가지로 금기어였다.
지시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늘 웃으며, 집에서든 어린이집에서든, 어디서든 아이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사회가 꽃밭이 아니라면, 불편한 감정이 회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잠깐씩 아이의 마음이 불편해지더라도 어린시절부터 불편한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불편함을 소거해버린 것이 과연 진정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될지는 불보듯 뻔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또 우리 자신에게 불편함을 견디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불편함을 견디는 힘을 기를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지연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자기 통제의 하위 영역 중 하나로 '만족지연능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만족지연능력 : 더 큰 결과를 위해 즉각적인 즐거움, 보상, 욕구를 자발적으로 억제하고 통제하면서 욕구충족의 지연에 따른 좌절감을 인내하는 능력
흔히 말하는 '할머니식 육아'에서 할머니들은 아이들의 요구를 다 받아준다.
아이가 울고 떼를 쓰면 아이의 성격이 나빠진다며 울리지 말고 바로 받아줘야 한다라고 말한다.
비단 할머니만 그렇게 육아하는 것이 아니다.
불편함을 소거시킨 양육현장에서 부모든 교사든 누구든 이렇게 허용적인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즉각적으로 욕구를 채우는 방식이 습관이 되면 아이는 두 가지를 학습하게 된다.
첫째, 욕구는 바로 채워야 한다.
둘째, 내가 감정을 폭발시켰을 때 가장 빠르게 욕구를 채울 수 있다.
이런 식의 양육 방식으로 아이들은 욕구를 지연시킬 이유를 찾지 못하며, 불편함을 견디는 힘을 전혀 기를 수 없다.
오히려 불편함은 바로 해결되어야 하며, 그 수단은 감정을 터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내재화해버린다.
한번 내재화된 대응 방식은 쉽게 교정되지 않는다.
이는 요즘 금쪽이들의 모습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불편함을 견디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오히려 욕구충족을 지연시키는 방식의 연습이 필요하다.
대상이 아이라면 보상과 기다림 두 가지만으로도 만족지연훈련이 가능하다.
특정한 보상(간식 등)을 약속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채운 후에 보상을 주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단, 보상이 지나치게 커서는 안되며, 기다리는 시간은 처음에는 짧게 이후에는 크게 늘려가야 한다.
이런훈련은 만족지연능력이 발달하기 쉬운 만2~3세에 시작하여 11~12세까지 점진적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좋다.
불편함을 견디는 힘을 기르기 위한 두번째 연습은 감정의 환기이다.
어떤 감정들은 기다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럴 땐 우리의 인지능력을 사용하여 감정을 환기시켜야 한다.
이 방법은 인지능력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보다 청소년, 성인들에게 더 적합한 방법이다.
캠핑 이야기에서 화자는 다양한 환기 방법을 사용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며 지각한 친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처리하려고 했고, 셔틀버스가 늦게오는 상황에서 눈을 돌려 주의를 환기함으로써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다스렸다.
또 텐트를 쳐야하는 상황에 갈등이 생겼을 때에도 우선순위에 집중함으로써 불편한 감정을 지연시켰다.
감정을 환기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인센스스틱을 통해서도 감정을 환기할 수 있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은 최애의 사진을 보며 감정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방법은 다양하나 원리는 동일하다 감정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이다.
나의 감정에서 잠시 눈을 돌렸다가 그 감정을 다시 마주했을 때, 그 때 우리는 조금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다.
불편함을 견디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은 불편함을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감정에 휘둘려 나, 그리고 타인, 사회와의 관계를 망치지 말자는 것이다.
불편함의 역치를 기르자.
분명 조금 더 성숙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 우리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