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재질', '고구마 재질'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이다와 고구마는 참 맛있는 간식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사이다 재질'이라는 말은 시원하고 톡 쏘는 사이다의 맛처럼 막힘없고 통쾌한 전개를 의미한다.
반대로 '고구마 재질'이라는 말은 한 번에 많이 먹으면 목이 막히는 고구마처럼 답답한 전개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당연히 사이다 재질을 좋아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통쾌하고 막힘없이 마무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편한 감정을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불편함이 그렇게 내면적으로만 해결되진 않는다.
어떤 불편함은 반드시 표현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편함을 느끼지만 말하지 못하고 쌓아두거나 손해를 봐도 그저 감수해 버리고 말아 버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고구마 재질, 심하게는 호구라고도 부른다.
불편함을 표현하지 않고 내적으로만 다루는 것은 감정을 과도하게 억압하여 개인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뿐더러, 당사자 간 함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기회를 놓치게도 한다.
게다가 억압된 감정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흘러 폭발하거나, 혹은 비대면적 표현 방법(신문고, 민원 등)으로 일을 더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감정을 다스리지 않은 채 표현하는 것도 위험하다.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은 채 표현하는 것은 사이다 재질이 아니라 핵 재질이다.
당사자들뿐 아니라 주변까지 초토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의 목적은 문제 해결이지 감정풀이가 되어선 안 된다.
표현의 빈도도 중요하다.
너무 참는 것도 안 되지만 너무 자주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도 좋지 않다.
어떤 이들은 '나는 솔직해서 이런 거 보이면 잘 못 참아'라며 여기저기서 불편함을 제기한다.
그러고선 자신의 솔직하고 당당한 표현에 자부심을 느낀다.
밥을 먹다가 아르바이트생의 마스크가 지저분해서, 식당에 들어온 손님의 신발이 더러워서, 심지어 조카 어린이집 선생님의 가슴이 커서 불편함을 표현한다.
그런 걸 불편하다고 표현하는 게 솔직한 것일까? 무례한 것일까?
감정은 잘 다스려야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사이다 재질로 불편함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솔직함 :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
무례함 : 태도나 말에 예의가 없다.
솔직함은 좋은 것이다.
사람들은 거짓이나 꾸밈없이 말하는 솔직한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솔직함이 타인을 향할 때 솔직함은 종종 무례함으로 변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타인에게 하는 무례한 언행에 솔직함이라는 필터를 씌워 정당화하기도 한다.
"나는 솔직해서 이런 거 그냥 못 넘어가겠더라."
"솔직히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이런 거 솔직하게 말해줘야 발전이 있는 거잖아?"
요즘은 솔직함과 무례함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필터를 거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솔직하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성도 보인다.
미디어에서는 그렇게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타인에 대해 쉽게 평가하고 솔직한 감상이라며 타인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모습에 가끔 눈살이 찌푸러지는 건 나뿐일까?
이런 모습이 미디어를 넘어 일상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감정을 필터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유머러스한 모습을 위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 그게 편하니까, 내 생각과 감정이니까, 거리낌 없이 툭툭 내뱉는다.
종종 그런 언행에 불편해하는 사람도 생기지만 '뭐 어때? 내 생각인데?'
하지만 솔직함과 무례함은 분명 다른 것이다.
솔직함은 '나'에 대한 것을 거짓이나 숨김없이, 바르고 곧게 말하는 것이고
무례함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말에 예의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두 단어는 분명 다른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솔직함은 나에 대한 것이다.
나에 대한 의견과, 내 감정, 내 생각에 거짓을 더하지 않고, 숨김이 없이 말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다.
이 솔직함은 올곧다.
에둘러 말하지 않으며, 부풀리지도, 은근히 돌려 까지도 않는다.
감정을 싣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기 때문에 관계를 해치지 않는다.
솔직한 말의 목적은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반면 무례함은 타인에 대한 것이다.
타인에 대한 평가, 타인에 대한 의견, 타인의 감정에 대한 것까지 내 기준에서 느낀 것을 거짓 없이, 숨김없이 말한다.
무례함은 공격적이다.
솔직함을 빙자하여 타인을 공격하거나, 은근히 돌려 까며 자신은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무례함에는 감정이 실려있기 때문에 관계를 해친다.
무례함은 상대방에게도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쉽게 갈등을 일으킨다.
무례함의 목적은 타인을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데 있다.
그리고 무례함의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는 상대를 봐가며 행동한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솔직해서 그래"라며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은 언제나 사람을 봐가며 행동한다.
타인의 감정, 사회적 상황, 분위기를 따지지 않고 무례하게 행동하지만, 단 하나 권위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철저히 사람의 무게를 잰 후 상대에 따라 무례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선임 앞에서 "제가 이 일을 왜 해요? 솔직히 이런 거 해본 적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이런 건 대리님이 계속하시면 되잖아요."라던 어린 사원이 사장의 업무지시에는 "네. 알겠습니다." 바로 순응한다.
A 친구의 결혼 때는 "브라이덜 샤워? 그런 거 왜 하는 거야? 너 이거 상술에 속는 거야. 너도 참 너다."라던 친구가 B 친구의 결혼식 때는 "우리 B 브라이덜 샤워 해줘야지?"라고 먼저 말한다.
상대를 봐가며 하는 언행은 성격이 될 수 없다.
그건 그저 강약약강의 비겁한 태도일 뿐이다.
불편함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정답은 없겠지만 몇 가지 원칙을 세워보면 좋을 것 같다.
첫 번째 원칙은 일차적인 문제 해결은 당사자 간의 대화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는 '나만 불편한가요?' 유의 글들이 많이 보인다.
상대방에게 직접 표현하기에는 정당성이 부족하거나 자신이 없는 불편함을 인터넷상에 올려 동의를 구하고, 그 동의를 근거로 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불편함을 해소하려 하는 것은 대개 문제의 규모를 더 키울 뿐이다.
배우자의 식사 습관에 대한 불편함이 정말 생면부지 타인들에게 재판받을 일인가? 강아지 입양에 대한 견해 차이가 배우자가 인간쓰레기라는 소리를 듣게 할 만한 일인가? 그렇게 당사자 간의 불편함을 꺼내 타인에 의해 철저히 재판받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어느 누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인터넷상에서 생면부지 타인들에 의해 재판이 일어나는 것을 반기겠는가?
그리고 생면부지 타인에 의한 재판 결과는 대개는 관계의 단절이다.
관객들이 원하는 사이다 결말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칙은 감정 해소가 아닌 문제해결을 중심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느꼈을 때 문제 해결이 아닌 감정 해소에 중점을 두고 표현한다.
그래서 감정이 풀릴 때까지 불편함을 호소만 한다.
하지만 그런 식의 소통은 불편함을 점점 더 키울 수밖에 없다.
감정을 쏟아내는 걸 듣고 있는 반대편에서도 불편한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편한 감정은 당사자들 사이에 눈덩이 굴리기처럼 커지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불편함을 표현하기 전에 감정을 먼저 다스려야 하는 이유이다.
감정을 느낀 즉시 표현하지 않고, 잠시간 다스린 후에 표현하면 이런 감정 해소식 소통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불편을 느낀 문제가 무엇인지,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점을 명확히 하고 문제 중심으로 표현하는 것이 불편함을 현명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세 번째 원칙은 합의점을 찾아 수용하는 것이다.
대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사과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A :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B : 그러니까요! 왜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난리야! 어떻게 책임질 거야?!
A : 불편하신 마음이 풀리진 않겠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보상하겠습니다.
저희가 환불을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B : 환불해 주면 다야?!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사과도 문제의 해결책도 수용하지 못하고 불편한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것은 본인을 포함한 모두에게 좋은 방향이 아니다.
불편함을 표현했고, 그에 합당한 사과와 해결책을 약속받았다면 수용하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사이다 재질의 결말을 좋아한다.
막힘없는 논리와 톡 쏘는 말솜씨로 통쾌한 복수를 하는 전개를 늘 기대한다.
하지만 마음이 시원해지는 그런 결말은 현실 세계에서 흔하지 않다.
드라마나 웹툰에서는 모든 사건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현실 세계에선 모두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주인공인 이 세계에서 한쪽만 시원해지는 결말을 얻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고구마도 사이다도 아닌 인간이다.
계속해서 관계 맺고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불편한 감정에 좋은 결말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불편한 감정을 정제하여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감정의 주인은 '나'이다.
불편한 감정의 주인 또한 '나'이다.
우리는 감정의 주인으로서 불편한 감정을 충분히 다스릴 수 있다.
불편한 감정에 지배되어 나, 타인, 사회를 파괴하는 결과를 내지 않도록 고삐를 잘 쥐고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