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Oct 19. 2023

10. 덜 불편한 사회를 향하여

덜 불편한 사회를 향하여


우리 사회를 잠식해 버린 불편함이란 정서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어떤 사회변화는 도미노와 같은 형태로 찾아오는 것 같다.

도미노 하나가 넘어지며 한두 개의 도미노를 넘어뜨리고, 그 도미노가 다시 한두 개의 도미노를 넘어뜨린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범위도 점점 넓어진다. 

모든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불편함이란 정서 역시 그런 식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간 게 아닌가 싶다.

한 명이 누군가를 넘어뜨리면, 마치 이동에너지와 같은 불편한 감정이 전이되어 두 명에게 전파되고, 그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난 불편함이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우리 사회를 점령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도미노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아는 도미노를 멈추는 방법은 하나다.

길목에 있는 도미노를 한두 개만 빼면, 연쇄작용이 중단되어 도미노는 멈추게 되어 있다.

이 불편한 감정에 잠식되지 않기로 결단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생긴다면, 불편한 감정에 안전벨트를 잘 채워둔다면, 우리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불편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나만 불편한 게 아니란 것이다.

나 또한 타인에게 불편한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타인이 쏟아내는 불편함을 받아내야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나와 타인의 삶의 무게는 동일하다.


나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삶 역시 중요하다.

망가진 저울 위에서 내가 더 무겁다 소리치지 말고 내려와 서로 마주 서보자.

우린 물건도 돈도 아닌 인간이다.

우리 삶의 무게는 저울에서 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수용해 주고, 조금 더 친절히 표현해 보자.

우리 사회가 서로를 넘어뜨리는 도미노가 아닌 서로를 세워주는, 선순환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을 마치며


불편함에 대한 글을 마친다.

이 글을 쓰며 나에게는 개인적인 의문이 두 가지 생겼다.


첫째는, 내가 누구이기에 불편함이란 감정에 대해, 그리고 불편한 사람들에 대해 논할 수 있는가였다.


불편함이란 결국 개인의 감정이고, 타인이 침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데, 내가 누구기에 다른 이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잘 다스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소중한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할 것 없는 한 명의 시민이다.

타인의 감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도 자격도 없다.

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나는 그저 우리 사회가 조금 덜 불편했으면 좋겠다.

서로를 향해 세우고 있는 날을 조금 다듬고, 나에게서 시선을 조금 돌려 주변을 바라보고, 망가진 저울에서 내려와 나와 상대를 동일한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바라보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불편함이란 감정에 대해, 그리고 불편한 사람들에 대해 나의 이야기를 펼쳐보았다.


두 번째 의문은, 나는 왜 불편함이란 감정에 꽂혔는가였다.


언젠가부터 불편함을 호소하는 글, 불편함 때문에 생긴 사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편하다고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불편한 사건들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에게, 학부모가 교사에게, 아파트 주민이 택배기사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이 사회가 나의 불편함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그러다가 신혼이던 우리 부부의 첫 부부싸움에서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불편함의 역치가 사람마다 다르구나'

만약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사람마다 달라서 그런 것이라면, 불편함을 견디는 힘을 키우는 방법이 있다면, 불편함을 조금 더 정제해서 표현할 수 있다면….

생각에 생각이 더해졌다.

그날 밤, 나는 잠에 들지 못하고 첫 번째 글을 써 내려갔다.

돌아보면 이 글은 이 사회에 대한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써 내려간 글이었다.


우리는 평생을 이 불편한 감정과 동행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人間)들이다.

이 생득적인 감정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를 따라다닌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느낀 불편함을 온전히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해탈이 아닐까 싶다.

어쩔 수 없이 동행하는 이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에서, 인상 찌푸릴 일들이 조금 더 줄어들고, 웃어넘길 수 있는 일들이 조금은 더 많아지는 그런 일상이 우리에게 펼쳐지면 좋겠다.


끝으로 이 글에 담긴 이야기들로 인해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끝.



이전 10화 9. 불편함의 표현 : 사이다와 고구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