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육아시간을 쓸 수 있는 내가 하원을 담당하고 있다. 4시 ~ 4시 30분쯤이 되면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를 데려오는데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어김없이 놀이터를 들렸다가 집에 오는 코스다. 집으로 오는 길에 놀이터가 있어서기도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넘치는 에너지를 놀이터에서 소진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불과 한 두 달 전만 해도 하원할 때는 꼭 유모차를 끌고 다녔다. 어린이집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안고 오거나 손 잡고 다니기는 길도 위험할뿐더러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때는 하원 코스가 정말 단순했다. 유모차에 태우고 놀이터까지 가서 놀다가 다시 유모차에 태워 집으로 오면 끝. 병원 진료를 제외하고는 중간에 다른 곳을 들를 일이 좀처럼 없었다. 그러던 하원길이 최근에는 큰 변화를 맞았다. 아이가 유모차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겨울 추위를 대비해 방풍커버를 씌운 게 화근이었다. 시야가 답답해지니 본능적으로 탑승을 거부했다. 어린이집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끌고 왔다. 놀이터에 도착하니 땀이 뻘뻘 나고 팔이며 허리며 뿌드득거렸다. 그 이후로는 하원할 때 아예 유모차를 가져가지 않는다.
유모차가 없는 하원길은 생각보다 험난하다. 아이는 어른처럼 정해진 방향으로 걷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놀이터까지 10분 남짓이면 가던 거리를 이제는 30분이 넘게 걸려 도착한다. 어린이집 계단을 다시 올라 하원하는 다른 친구들과 인사하는 것은 기본. 가는 길에 고양이나 비둘기라도 나타나는 날에는 한참이나 구경하고 가야 한다. 비가 온 다음 날의 물 웅덩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발로 한 두 번 찰방거려보고는 손으로도 옷소매가 다 젖을 때까지 휘젓고 나서야 앞으로 간다. 문이 열려있는 가게는 모두 들어가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온다. 위험한 곳은 어떻게 그리 잘 찾는지 공터며 가파른 계단이며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어른이 보기엔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는 곳에 가있다.
처음에는 아이를 다그치기 일쑤였다. 뿌리치는 손을 계속 끌어 앞으로 밀기도 하고 들쳐 안고 뛰어가기도 했다. 간식으로 유인하면서 어떻게든 놀이터 쪽을 향하게 하려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놀이터에 빨리 가야 하지?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의 모든 것이 아이한테는 놀이터 일 텐데 말이다.' 사실 놀이터에 가도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그네 타기 정도지 다른 놀이기구는 좋아하지도 않았다. 놀이터에 가서도 아이가 주로 하는 것은 주변 탐색하기와 뛰어다니기다. 생각할수록 정말 그랬다. 결국 놀이터에 빨리 가야 한다는 근거 없는 집착에 사로잡혀 즐거워야 할 아이와의 시간을 재촉과 걱정과 한숨으로 허비한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세상이 얼마나 신기할 것인데 하원의 주인공인 아이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내 목적만 생각했다.
생각을 바꾸니 하원길이 즐거워졌다.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아이가 가고 싶은 길로 간다. 조금 늦게 도착하면 어떻고 놀이터에 못 가면 또 어때하는 생각으로 아이를 바라보니 겁 없는 모험심이 귀엽게도 느껴진다. 모르는 사람과 눈 마주치며 인사하는 천진함도 고양이를 보겠다고 한 참을 차 밑에 엎드려 있는 모습도 풀 숲에서 넘어져 옷에 흙이며 이름 모를 풀이며 잔뜩 묻혀온 모습도 모두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을 소중한 모습으로 보였다. 누구보다 하원길을 즐기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내 삶과 오버랩되었다. 나는 인생을 충분히 즐기면서 걸어가고 있나? 앞으로만 빨리 가는 게 뭐가 의미가 있을까. 좀 돌아가면 어때. 좀 늦으면 어때. 세상은 이렇게 다양하고 볼거리도 즐길거리도 많은데 말이다. 소매가 새까매진 아이의 옷을 보면서 오늘도 신나게 놀았구나 생각이 든다. 다음 주 하원길에는 또 어떤 모험이 펼쳐질까? 모험왕 아들의 발길 닿는 대로 함께 모험을 떠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