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더 사랑

엇갈린 소통과 불통의 타이밍

by 닥터 로

2003년 영화 Love Actually 중 “사랑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Love actually is all around)”는 문구가 생각나는 하루다. 내 인생을 스쳐 간 사랑들, 그리고 바람결에라도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들… 정말 사랑은 어디에나 있었다.


젊은 날의 나는 매사에 확실하고 분명했다고 자부한다. 타인에는 공감하고 이해하며 실수나 불찰에도 관대했지만, 나에게는 엄격했고 그 어떤 경우도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그래도 나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항상 가득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서슴지 않고 “나”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연인과 부모를 제일로 꼽지 않는다고 매정한 사람이라며 서운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런 당신은 솔직하지 못한 거 아니냐고 약 올리기도 했었다. 사실 확실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스타일이라 왕재수에 매력 없는 캐릭터일 텐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인기는 늘 따라다녔고, 그런 상황들이 소모적이긴 해도 싫지는 않았고,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나, 마음이 없는 것에는 확실하고 분명하게 처신했고, 넘지 않아야 할 선은 넘지 않았으며, 그러다 보니 선 긋기나 교통정리, 관계의 역학에 대해서도 도가 텄었다. 입장 정리가 확실한 만큼 이어진 사랑에는 항상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이 연애했고, 환승 이별을 해 본 적도, 양다리를 걸쳐 본 적도, 바람을 피워 본적도 없이 그렇게 많은 이들이 연인으로 있었다. 지금 와서 얘기지만 딱 한 사람을 빼고는 나는 늘 외로웠다. 내 안에는 상쇄될 수 없는 존재의 외로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탈리아어로 된 악보 연주 용어 식으로 말하자면 내 사랑의 태도는 오랫동안 “콘 아모레(con amore), 사랑스럽게 애정을 가지고”였다. 그러나 4,747일, 13년 하고도 이틀 밤을 함께한 이와의 이별 후,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않겠다며 나는 관계의 문을 잠그고 열쇠를 사막의 모래알 속에 숨겨 “콘 페르메차(con, fermezza), 확실하게, 분명히…”를 심장에 새겨 넣었다. 열쇠를 숨길 때는 미처 몰랐다. 그로부터 729일의 밤이 지나고 혼자인지 2년째 되는 날, 이제 내 슬픔을 애도할 시간이 끝났다고 생각할 줄은, 그리고 오십의 나이에 남편도, 아이도 없는 내가 스스로 열쇠를 찾을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걸. 이럴 줄 알았다면 쉬운 곳에 숨길 걸 그랬다.


원치 않았지만 혼자된 인생은 나름, 관계에 질척였을지도 모를 나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 선물 포장을 느긋하게 뜯고, 그 어느 때보다 나태하게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나에겐 골든 슬럼버같은 친구들이 넷 있다. 이 중 살면서 마지막 보루를 하기로 한 가장 가까운 친구가 소개팅을 해보지 않겠냐며 꽤 괜찮은 사람이라 그렇다며 평온한 나의 호수에 연꽃 씨앗 하나 던져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토요일 오후 5시, 실내에 벛꽃 나무가 진짜처럼 심겨 있는 이자까야. 태어나 처음으로 소개팅 약속을 잡아버렸다. 처음 하는 소개팅이라 조금의 긴장은 있었지만, 사랑이 무언지도 잊어 버린지 오래인 것 같은 나에게 생기와 동력이 될 것 같은 막연하고도 커다란 기대도 했었다. 웬걸, 오십 먹고 속물이 다 되었는지 그를 보자마자 설렘은 0에 수렴하고 있었고, 외모도 목소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매우 긴장한 듯 보였고, 나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듯 온 촉각을 세우고 잘 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외모와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먼저였을까, 아니면 소심하면서도 강박이 있어 보이는 제스츄어와 유쾌하기보다는 지루한 쪽에 가까운 이야기 내용과 화법이 문제였을까? 직업병인가? 나는 나의 감흥 없는 감정의 이유를 찾으려 그를 내 취향과 기대치의 렌즈로 분석하고 있었다. 하기 싫은 연구를 의무감으로 하는 것 마냥, 연구대상이 매력적이지 않아도 보고서를 완성해야 하는 것 같은…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에게 그의 첫인상은 읽기에 너무 두꺼워 선뜻 집히지 않는 책, 관심을 살짝 비껴간 양장 제본 학술서적 같았다. 아무리 호불호가 분명해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을 빠른 속도로 분간해 내더라도 그 싫은 사람도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고 싶고, 궁금함도 자연스레 생기는데, 나는 이 사람에게 어쨌든 설레지도, 호기심도 생기지 않았다. 과거와 지금의 내가 달라져 있는 것일까? 변수라면 나이 말고는 없는데…. 나는 오랜 연애 공백 때문일 수도 있으니 이번만큼은 상대를 알기에 필요한 절대 시간을 가져보기로 마음먹고선 한눈을 감았다. 나도, 그도, 지금은 혼자나 그간 많은 연애를 해 봤고, 인생도 살 만큼 살았으니 삶의 지혜와 연륜도 쌓였을 테고, 스스로와 인간을 이해하는 혜안도 가졌으니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나의 메마른 오십의 연애에도 파릇파릇 싹이 돋고, 불협화음도 잘 조율할 것 같고, 무턱대고 순탄할 것만 같은 안도와 안일함이 있었다.


나는 꽤 둔한 모양이다. 구십 칠일 째 장문의 카톡으로 헤어짐을 통보받고서 그제야 내 오만함이 불러온 착각이었음을 알아차렸으니 말이다. 그는 헤어지자고 쓰고서 리셑이라 읽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잠재적 연인으로 다시 만나자 한다. 뭐지? 내가 기계도 아니고 컴퓨터처럼 포맷하고 새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관계 역시도 혼자 그러는 건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난 정말 이상한 사람을 만났던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짧든 길든 내가 보낸 시간 속에서, 내 삶의 역사 속에서 그 무엇도 nothing이 되면 안되니까. 지금 와서 든 생각이지만 그는 불안정한 슈퍼에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자기 검열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솔직할 수 있는 사람들만 쓸 수 있는 투명할 수 있는 자신감인 유리 가면을 쓴 마냥 연기했었다. 친구들도 그가 나에게 잘 보이고는 싶은데, 연애 초짜라 서툴러 그럴 수 있다며 나의 투덜거림을 무색하게 하곤 했지만, 마침내 카톡 이별에는 모두가 침묵으로 대답했다. 내 삶에 작동하는 마음의 근육들이 틀린 건 아니었다.


탈무드는 인간이 감출 수 없는 세 가지가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가난이라고 했다. 달리 생각해보면 사랑하지 않는 것, 가짜 재채기, 경제적인 것에 절박하지 않은 것도 감출 수 없을뿐더러 들통나기 십상이다. 나도 사랑하지 않는 것을 들킨 모양이다. 사랑은 상대적이라 그가 생각하기에 그러할 뿐이었을 테고, 나는 사랑이었다 생각했지만 이미 늦어버려 이별 통보에 이르렀고, 그 이후 대꾸도, 통화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셈이다.


그가 시간 날 때 해 보라며 전했던 자수 키트가 액자 속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도 들여다본다. 불리언 노트(Bullion Knot) 스티치로 꽃잎을 만들고, 피쉬본(fishbone)으로 이파리를 채워 다섯 줄기 라벤더를 완성했었다. 그 날은 사실 수를 놓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고, 분주한 일정을 잠시 내려놓을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무언지 모르게 답답한 것이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에 걸려 출구를 잃고 오도 가도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의 이름과 나의 이름 사이, 무엇을 넣어야 할까. 그리고와 그러나 사이에는 마침표가 있다고 한다. 그와 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마침내 하트를 수놓는다. 식물처럼 무럭무럭 자라라고 초록색으로. 복잡한 심경의 미로를 한 땀 한 땀 통과해 드디어 완성된 라벤더 다섯 줄기. 자수는 완성됐지만 전해 줄 사람은 이제 없다. 내가 멘도롱 또똣이 아니라 뜨뜨 미지근하다 여긴 그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마음을 전한 것이었을까. 물안개 핀 호숫가에 멀뚱히 서 덩그러니 놓인 라벤더 액자를 바라본다. 문득 꽃말이 궁금해졌다. 이런저런 검색엔진의 도움을 받아 내식대로 독해해 보니, “말을 할 수 없는 왕자와 기다리다 죽음을 맞이한 공주의 침묵과 기대가 엇갈린 불협화음 속에서 끝나버린 슬픈 이야기다. 당신의 우아함과 향기로움에 빠져있는 나는 당신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당신이 보여준 나에 대한 마음에는 사랑의 확신이 없고, 당신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당신은 침묵뿐 이네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답해 주세요”다. 공교로운 것일까, 의도된 것일까. 아직도 내가 선 호숫가엔 물안개가 자욱하다.


모든 관계에는 온도와 거리의 차가 존재한다. 연애 관계는 서로 다른 시공을 살아온 사람인데다, 연인이기까지 하기에 나의 사랑이 조급함, 섣부름이 되어 상처받을까 염려하는 마음까지 곁들여 더욱 섬세하게 차이를 좁혀야 한다. 사실 그와 만남을 지속하는 동안 내내 나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와 나는 관계 진행 속도와 감정의 밀도가 매우 달랐다. 그는 독주(solo)에 유능한 사람이었고 듀엣이나 합주에는 이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함께인 공간에서도 자기의 속도로 독주하고 있는 그를 보았을 때, 나와의 관계도 그러할까 잠시 걱정도 했었다. 반면에 나는 홀로 연주하는 독주도 관객의 반응과 호흡하며 해야 하기에 그런 점에서 독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차이를 이해하더라도 적절한 만남의 지점을 혼자 정하진 못한다.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최고로 먼 각자의 로망 여행을 했나 보다. 그러니 관계의 프로토콜도 소용없는 협상결렬은 예고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인내의 시간을 며칠 남기고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처럼 100일도 채우지 못한 그의 얕은 인내심 덕분이라 해 두자. 고맙게도 먼저 차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을 주었고, 먼저 차고 내내 모질었다 자책하고 있을 시간을 증발시켜 주었으니 되었다. 혹시나 어느 한구석 상처받지는 않았는지,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간 건 아닌지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상하게도 타격이 없는 듯했다. 반백 살의 나이에다 높은 자존감에 애써 괜찮은 척하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이 관계의 이름은 사랑이 아닌게 아니라 시공(時空)과 목소리가 엇갈린 사랑, 라벤더 사랑일 뿐이다.


모든 사물이 선명 해 보이는 어느 가을날, 길가에 나뒹구는 플라타너스 낙엽들을 화풀이하듯 걷어차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커피 한 잔의 여유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 먼 산과 해 떨어져 석양 든 하늘을 살핀다. 날마다 다른 하늘이지만 그 안에 질서가 있는 것처럼 나의 날들도 같은 날 하나 없지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먹은 나이에 비례 해 잔뜩이다. 사람들은 이런 걸 고집이나 성격이라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신경질적이고 성깔 있다는 평판은 들어본 적 없기에 이만하면 잘 나이 들고 있다고 위로해 본다.


사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고 우유부단하다. 사막에서 열쇠를 건져 올리지 못한 채, 고뇌에 차 시작했던 나아갈 결심을 이제, 단호하진 못할지라도 헤어질 결심으로 바꿔보려 한다. 간절하지 못했던 오십의 연애였지만, 최선은 다했지만 나를 바꾸진 않았던 97일간의 만남이었지만, 이 고비를 넘겼더라면 어땠을지 궁금함의 잔재가 있긴 하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채로 내 마음이 들으라고 읊조려본다. 난 상처받지 않았다. 라벤더 들판에 잠시 머물었을 뿐이다. 고민하던 숙제가 없어졌으니 홀가분해 해도 된단다! 헤어지자! 두려움 없이! 그리고 뒤끝 없이 쿨하게, 안녕! 바이 짜이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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