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남자 중 가장 능력이 좋던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실패작. 입술 뒤 보이지 않는 껍질을 깨물면서 실패작이라는 단어를 씹었습니다. 수성펜으로 눌러 적었다는 동생의 일기는 글씨를 알아 보기 힘들었습니다. 쓰는 중에 화장실도 갔는지 번진 물얼룩이 보였습니다. 껍질을 씹어 잡아 당기자 벗겨진 살갗에서 쓰린 맛이 났습니다.
동생은 플라스틱 상자를 어디서 얻어 와 일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굳이 불씨를 던지지 않아도 불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문체였습니다. ‘쓰레기 같은 병원. 교도소 같은 병원. 영양가 하나 없는 음식. 지루하기 짝이 없는 프로그램들. 환자들 똥 냄새. 거미줄이 엉길 틈새 조차 없는 창문.’넝마가 된 종이를 끝까지 읽지 않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습니다. 처음부터 정해진 페이지가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생판 모를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도 동생은 제 두 손이 일기를 과격하게 헤집는 걸 막지 않았습니다.
실패작. 오래 전 동생이 대학을 예술이란 전공으로 입학했을 땐, 감히 전공자의 작품을 바깥의 일반인이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동생이 백수가 되었지만 저는 그녀의 전공이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직업이라면 적은 돈일지라도 돈을 벌어야 했지만 동생은 점점 가난해졌습니다. 제가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보며 올라가는 동안 동생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신분이 다르기 때문인지 동생의 글을 읽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우선 읽으려면,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할 것 아닙니까. 줄 공책에 수성펜으로 적은 글에는 마침표도 있었고 들여 쓰기도 있었지만, 평범한 직장인인 제 눈은 인쇄된 글만 취급했습니다. 일단 출판된 상품까지 올라야 한다는 질적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동생이 말했습니다.
“잘 보관해 뒀다가 퇴원하는 날 돌려줘. 컴퓨터로 받아 적어 공모전에 낼 거야.”
읽어 보았자 실패작 아닐까. 사랑하는 동생이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상처가 너무 많아서, 결핍이 있으니까, 아픈 사람이니까 병원까지 왔을 테니까요.
아직 감사할 것은 동생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인데. 이 동생이 잘못하다가 돌아갈 수 없는 강 마저 건너지 않도록 따끔하게 독설을 퍼부어줄 차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생이 정신차리도록 누군가는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해주어야 하는데, 이 동생에겐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우리 이거 쓰지 말고 새로운 시작을 하면 안 될까?" 어린 아이를 피아노나 태권도처럼 이런저런 사교육을 모두 보내본 엄마들이 다 커버린 아이한테 절대 하지 않는 말을 계속 곱씹었습니다. 너는 나의 실패작. 너에게뿐 아니라 나에게도 실패라는 건 이 경험에서 배워야할 것이 나 또한 있음을.
저는 동생의 일기로 가득찬 플라스틱 통에 뚜껑을 덮으며 짠 하고 손바닥을 보여주었습니다.
“과거를 이렇게 덮어야 새로 출발할 수 있는 거야.”
그러자 동생이 샐러드가 들어 있던 플라스틱 통을 던졌습니다. 머스캣과 방울토마토와 양상추가 제 얼굴과 치마 위를 덮었습니다. 동생이 상담실을 쩡쩡 울릴 만큼 커다란 목소리로 말하자. 바깥에 있던 남자, 여자 한 팀의 간호사들이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다치지 않았으니 괜찮다며, 남자 간호사가 동생의 팔을 끌고 가려는 걸 막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완고했습니다. 동생도 더 과격한 단어들을 뱉었습니다.
“나는 여러 번 죽었어. 그런데 또 죽으라고? 언니는 똥 멍청이야! 과거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담말야 !”
더 많은 간호사들이 모였습니다. 동생 한 명을 옮기려고 다섯 명이 모였습니다. 강한 구석을 찾기 힘든 동생이었지만, 죽기 살기로 저항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장면을 별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멍들 것처럼 얼얼한 얼굴 반쪽을 손에 쥐고 플라스틱 뚜껑에 박았습니다. 동생이 간지 얼마나 되었다고 여자 간호사가 상담실로 들어와 저를 쫓아내려 했습니다. 그녀는 다른 가족이 상담을 하려고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동생의 일기가 든 상자를 들고 그 방을 나왔습니다. 낑낑 대면서 버스를 탔고 지하철을 타고 우리 집 현관 앞에서 나란히 누울 때까지 상자를 옮겼습니다.
신발장 앞에 대자로 누워 있다가 손만 뻗어 일기 한 조각을 꺼냈습니다.
‘D군이 테슬라 자동차를 샀다. 그가 소셜 미디어에서 한 자랑이 사실이라면.’ 테슬라라는 단어도 그랬지만 D군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연관성이 있는 모든 일기를 꺼냈습니다. 호수 그림, 돌 그림처럼 상징을 사용하는 부분도 있었고 ‘그’라는 대명사를 쓰거나 D군 D씨, D오빠, 그 XX 등 사용역을 여러 번 바꾸기도 했습니다. 돌려 말하지 않고 돌 호수라고 본명을 냅다 말해 버리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 부분을 읽는 편이 차라리 더 속시원했습니다. 말하고 싶던 이야기는 한 사람에 관한 묘사였을테지만 자유의 자의식은 그러면 안 된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자유가 그 사람 이름을 감추려고 이런저런 수를 썼음에도, 저와 같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 수법이 너무나 유치해 보였습니다.
호수가 테슬라 자동차를 샀다. 그가 소셜 미디어에서 한 자랑이 사실이라면.
나는 남자가 아니라서 ‘남자들이 자동차에 집착하는 지’ 궁금했다. 여자들은 믿지 않았지만 남자들은 그랬다. 여자들은 자동차보다는 결혼 반지에서 그 남자의 진정성을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스물 두 살 때 나도 그런 여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 중의 한 명인 호수를 만났다. 그 해에도 호수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외제 명품차는 아니엇고 SUV 자동차였다.
중산층 남자들은 삼십 대에 SUV 자동차를 소유한다. 그들은 삼십 대에 기어이 소유를 해내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차를 꼭 가져야겠다는 열망을 품는다. 그 열망은 드림카 조수석에 여자 친구를 앉히겠다는 꿈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그런 꿈을 꾸지만 모두가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이 점에서 돌호수는 꿈을 현실로 이루는 남자였다.
마흔에 테슬라를 산 그는 SUV를 서른 넷에 사서 빌딩과 빌딩 사이 더러운 골목에 주차했다. 그가 ‘입 터질 때 떠나자’라고 적힌 이층 카페 간판을 올려다 본다. 이곳까지 이끈 핸드폰 네비게이션을 한 번 체크한 후 어렵게 문을 찾아 계단으로 카페까지 올라간다. 그 카페는 언어를 배우려는 사람들과 여행자들의 성지였다. 호수에게는 영어 공부를 새로운 취미로 해야겠다는 맑은 방문 목적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고급 외제차 테슬라를 탈 남자라면 세계적인 수준으로 사고방식을 넓힐 필요가 있었고 영어는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십분에서 이십분 내로 그곳에 내가 도착했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죄는 호수의 SUV 여자친구 좌석에 궁둥이를 밀어 넣었을 때 시작했다. 호수는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SUV 조수석에 자꾸만 와 앉으려던 나를 특유의 방식으로 놀아주었다. 그 또한 심심했으니까. 처음에는 내가 다른 남자의 여자친구라는 사실을 몰랐다. 호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입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강아지가 꼬리 흔들며 차에 타는 걸 저지하지 않았다.
스물 둘이었던, 나는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내 친구들은 전부 가난했다. 서른 넷이던 호수는 SUV를 가지고 있었고 1억 이상의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하던 중이었다. 은행 대출 없이 돈을 모아 집을 사겠단 마인드셋만으로도 호수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누가 나한테 이런 사실들을 알려줄 수 있었을까. 엄마와 여자 친구들이 호수를 만나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그들은 내가 그 오빠에게 조종당하고 있으며, 그 오빠는 마음도 없으면서 있는 척 장난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호수는 나쁜 남자였다. 내가 직감으로 느끼는 것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호수는 위험한 남자였다.
그러나 엄마와 여자 친구들이 호수를 만나면 안 된다고 했던 그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었다. 호수는 6년이 지나 스물 여덟이 된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 중 ‘가장 능력이 좋은 남자’였다. 남자들이 가장 예쁜 여자를 이상형으로 말하는 것처럼, 나는 가장 많은 것을 가졌던 그를 이상형으로 보았다. SUV 조수석을 자유 의지로 앉았던 것은 그런 그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최악의 길로 접어 들었다. 그 남자를 사랑해버린 것이다. 좋아는 해도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해버렸다.'
어느 덧 출근하기 위해 잠들기로 저 자신과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자유가 쓴 일기를 노트북으로 받아 적으면서, 내일은 D군이자 D오빠이자 그 XX인 돌호수 씨를 전부 본명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 실패작이 생기도록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직까진 그럴 수 있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이 일기의 원작자인 자유가 죽지 않았으니까요. 자유와 잘 소통해서 이 글이 대중들에게 소개될 수 있다면, 자유에게 헌신한 제 인생도 제것처럼 아꼈던 자유의 재능도 그 의미를 찾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