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의 글로벌 히치하이킹, 꿈을 좇아 4

4부. 삼중 전장, 들리지 않는 어둠 속에서

by Coo Lee

미국 MBA는 매일같이 세 개의 전장을 누빈다.

성적, 네트워킹, 구직—하루의 시작과 끝이 모두 전투였다.

그는 이미 첫 번째 전장인 ‘성적’에서 밀리고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를 돌볼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유학 빚을 갚으려면

무엇보다 구직만큼은 물러설 수 없었다.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직 전장의 첫 라운드가 막 펼쳐지고 있었다.

미국과 세계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일주일에도 수십 개씩 캠퍼스를 찾아왔다.

캠퍼스 안팎—빈 강의실에서, 학교 주변 카페·식당·호텔 라운지까지—

어디서든 기업 설명회가 열렸다.


커리어 방향이 뚜렷한 학생들은 수업 외 시간마다

기업 설명회로 달려갔다.

경쟁하듯 명함을 주고받느라 늘 북적였고,

손에는 레주메, 입에는 준비된 피치,

미소 하나, 질문 셋—

모든 게 계산된 전투였다.


그러나 그는

수업을 따라가기조차 버거웠다.

친구 따라 몇 번 설명회에 가 보았지만,

몇몇 세션은 회사도 포지션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발표 자료의 그래프는 보였지만,

말과 농담의 맥락은 빠르게 미끄러졌다.

Q&A가 시작되면 손들이 번개처럼 올라갔다.

그는 손을 들 질문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말 한마디를 꺼내는 일조차

답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10월 말, 첫 번째 쿼터가 끝나자

곧바로 여름 인턴십 채용 시즌이 시작됐다.

MBA에서 인턴십은 다음 해 정규직의 핵심 관문이었다.

모두가 달려드는 그 무대에서

또다시 장벽과 마주했다.


엔지니어로 6년 넘게 일한 그가

희망하는 포지션은 마케팅이었다.

외국 학생에게 열린 문은 거의 없었다.

간신히 얻은 한두 번의 인터뷰마저

짧은 영어와 경험 부족으로 모두 탈락했다.

‘썸머 인턴십을 놓치면 졸업 후 커리어 전환이 힘들어지는데…’

앞이 깜깜했다.

하루하루가 불안했고,

머릿속은 무거운 돌덩이 아래 깔린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한 명이 귀띔했다.

학교·주정부·중소기업청이 함께 운영하는

지역 중소기업 컨설팅 기관이 있는데,

매년 외국인 학생 한두 명을 뽑는다는 것이다.

대신 학업과 병행하며 3월부터 10월까지

장기간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주저했다고 했다.


그는 ‘하늘이 내린 실낱 같은 기회’라 여겼다.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도 없었다.

남들이 꺼리는 일은 그에게는 기회였다.


즉시 지원했고,

선배의 추천과 절실한 태도 덕분에 최종 합격했다.

기간은 길었지만 오히려 장점도 있었다.

짧은 여름 인턴십보다 경험은 더 풍부했고,

영어를 쓸 기회도 많았다.

무엇보다, 가족 곁을 지킬 수 있었다.

조금이나마 생활의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가혹했다.

학업조차 벅찬 상황에서,

이제는 미국 기업을 상대로

영어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다.

회의 자리에서 클라이언트의 말은

멀리서 들려오는 웅성거림 같았다.

핵심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메모 속 빈칸이 눈에 들어왔다.


“Could you clarify your pain point?”

입 밖으로 나온 문장은

의도보다 한 박자 늦었고, 억양은 굳어 있었다.

상대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읽지 못한 채

다음 질문으로 밀고 나가면,

대화는 조금씩 비껴갔다.

‘문제를 이해해야 해결이 가능한데…’

정작 문제 정의가 안개 속이었다.


프로젝트 마감이 다가오면,

먼저 고객 니즈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해결책을 정리하며 자료로 보완했다.

한국어로 논리를 먼저 세우고,

영어로 다듬어 옮겼다.

문법보다 메시지, 완벽보다 전달.


그래도 자주 많이 모자랐다.


질문이 덧붙고,

설명이 길어지고,

시간은 모래처럼 흘렀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뒤늦게 미국으로 건너와 재회한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면

작은 발소리가 거실로 달려왔다.

그는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뒤편에서,

미안함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못난 아빠라서 미안하다.

못난 남편이라서… 정말 미안하다.’


자신감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자존심마저 포기하는 순간순간이

그를 벼랑 끝으로 밀어냈다.

그것은 학문적 도전이 아니었다.

존재 자체를 시험하는

생존의 경쟁이었다.


발밑 살얼음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발을 내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멈춰 설 수도 없었다.


다음날, 전투는 다시 시작됐다.

수업, 네트워킹, 구직.

언어와 실전,

가정과 자존심.


그는 짓눌린 숨을 삼키며 노트북을 열었다.


Problem — simply stated:

첫 줄에 그렇게 적고,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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