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의 글로벌 히치하이킹, 꿈을 좇아 8

8부. 워서로 향한 길

by Coo Lee

글로벌 본사가 있는 뉴저지에서

일주일간의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그날,

그는 곧바로 미국 중서부의 작은 타운,

인디애나 주 ‘워서(Warsaw)’로 발령을 받았다.


인구는 고작 만 명 남짓.

하지만 그 조용한 마을 한가운데

세계적인 기업들이 숨어 있었다.

고요하지만 묵직했고, 작은데도 생동했다.

그에게는 묘하게 낯설고, 묘하게 운명 같은 시작이었다.


어른이 되어 또다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건

설렘보다 먼저,

책임이라는 무게를 스스로 등에 얹는 일이었다.


아내와 아들을 먼저 이사시키기 위해

뉴욕에 맡겨 둔 SUV를 찾았다.

기초 살림을 꽉 채워 싣고 시동을 거는 순간,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긴장감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왔다.

낯선 땅으로 들어가는 첫 여정이었다.


반나절 넘게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숲길을 달려 나오자,

이번엔 바람에 흔들리며 평야 위에 물결을 만드는

끝없는 옥수수 밭이 펼쳐졌다.

휴게소에 몇 번을 들렀는데도

평야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풍경들은 마치

“여기부터는 네가 책임져야 할 새로운 세계다”라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주는 듯했다.


한나절을 훌쩍 넘겨 달린 끝에

새로운 집 앞에 아내와 아들을 내려놓았을 때,

고단함보다 먼저 든 감정은

막연한 두려움과 조용한 다짐의 교차였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려움과 결심이 뒤섞인 마음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그는 혼자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싣고 오기위한 길이었다.

학교 근처 빌려주었던 승용차를 돌려받고,

유홀에서 빌린 트레일러를 히치에 연결했다.


초여름 공기 아래

짐을 싣느라, 혼자인 무게만큼 묵직한 땀이 흘러내렸다.

그 땀은 새로운 인생의 첫 페이지를 적셔 나갔다.


“이제 정말… 다시 시작이다.”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점심도 챙기지 못한 채 서둘러 출발했다.

고속도로 차선 폭을 트레일러가 가득 메웠다.

곳곳의 공사구간은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속도를 늦췄다.

그토록 조심하는데도, 길은 계속해서 그를 시험하는 듯했다.

무거운 트레일러가 작은 승용차의 뒤를 잡아당기며

중심을 끝없이 흔들어댔다.


은근히 출렁이던 긴장감은

아팔래치아 산맥을 오르면서

목을 조일 만큼 치솟았다.


그리고 그 순간—

‘팅.’

소리와 함께 엔진 경고등이 번쩍 켜졌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는 등골을 타고 뭔가 차갑게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그는 급히 차를 세웠다.

손을 운전대에 얹은 채

붉은 불빛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안 돼.”

“지금은… 제발 이러면 안 되지.”


시동을 껐다 다시 걸었지만

붉은 불빛은 기어이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


끝없는 산길.

트레일러의 무게.

혼자라는 사실.

그리고 멀리서 기다리는 가족.


경고등이 살아있지만,

그는 밀어부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간다.

서더라도, 망가지더라도…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으니까.”


운전과 정차를 반복하는 동안

걱정이 땀보다 먼저, 더 빠르게 흘러내렸다.

휴게소에 앉아 도너츠를 베어물어도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계기판,

그리고 워서에 있는 가족에게 머물렀다.


그러다—

여러 번의 정지와 재시동 끝에

갑자기, 조용히, 너무도 담담하게

붉은 불빛이 사라졌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한 번, 길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쉽게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 계기판을 살폈다.

조금이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빛이 다시 살아나면

모든 계획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붉은 등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아팔래치아 산맥의 정상 구간을 넘어섰다.


“그래… 고맙다.

지금까지 버텨줘서.”

차를 향한 말이었지만,

실은 자기 자신에게 던진 말이었다.


새벽 4시.

그는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세상 모든 것이 조용해진 시각.

어렴풋이 아내와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온몸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나갔다.


그렇게 그의 ‘워서로의 첫 여정’은

긴장과 책임감, 그리고

새로운 삶의 문 앞에서 느끼는 짜릿한 공포까지

모두 품은 채, 조용히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곳에서 시작될 이야기들은

그의 상상 어디에도 아직 쓰여 있지 않았다.

이제 막 첫 줄이 쓰이려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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