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어라운드 4. 자리를 지킨다는 것 1

1부. 1년만 버텨보겠습니다

by Coo Lee

그는

글로벌 진단사업을 리딩하는

미국 회사의 한국 지사를 맡게 되었다.


입사하기도 전,

여러 지인들로부터 같은 말을 들었다.


그 회사는

사장이 오래 버티지 못하는 곳이라는 이야기였다.


고생은 많지만 인정은 받지 못하고,

몇 달도 채우지 못한 채 떠나는 자리.


“괜히 소모되지 마십시오.”


그 말은 충고였지만,

어쩌면 예언에 가까웠다.


지난 3년 동안 이미 세 명의 사장이 바뀌었고,

바로 앞의 두 사장은 각각 반년 남짓 버티다 퇴임했다.


공석이 반복되던 자리를

그가 네 번째 사장으로 채우게 되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성과’보다 먼저

‘버티는 힘’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그를 물러서게 하지는 않았다.


부임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숫자를 보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을 보는 일이었다.


실적은 결과이고,

사람은 원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인허가와 품질관리 이슈가 누적되어 있었고,

국가기관의 조사까지 진행 중이었다.


영업과 마케팅 조직은

1년 넘게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었고,

글로벌 지사 성적표에서는 최하위 그룹에 속해 있었다.


성과가 나지 않자

본사는 채용을 보류했다.


사람이 줄었고,

남은 직원들은 지쳐 있었다.


실적이 부진하면 사람이 줄고,

사람이 줄면 성과는 더 떨어진다.


악순환은 소리 없이 조직을 잠식한다.


무너지는 조직은

대개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조직의 표면이 아니라 뿌리를 보았다.


제품 품질을 지키는 팀은

여전히 원칙을 유지하고 있었고,


콜드체인을 관리하는 공급 조직도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환자의 진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장비를

24시간 유지하는 서비스 팀 역시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전국 20여 개의 대리점도

힘들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핵심은 남아 있었다.


다만

숨이 가빴을 뿐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 조직은

쓰러진 것이 아니라

지쳐 있는 것이다.


그는 시선을 고객에게로 돌렸다.


주요 고객은

병원의 중앙 검사실을 총괄하는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들이었다.


그는 KOL로 인정받는

대도시 대형 병원의 과장들을 먼저 찾아갔다.


고객들의 질문은 하나로 모였다.


“이번에도 1년도 못 버티는 것 아닙니까?”


제품의 성능보다

회사의 지속성이,


전략의 정교함보다

리더의 일관성이 더 중요했다.


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 회사가 잃은 것은

매출이 아니라

신뢰였다는 것을.


그는 과장된 약속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1년은 지켜봐 주십시오.

1년 뒤에도 제가 이 자리에 있다면

그때 다시 평가해 주셔도 됩니다.”


선임 사장들이 1년을 채우지 못했기에

1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었다.


신뢰를 증명하는 최소 단위였다.


그는 화려한 전략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관되게 움직였다.


고객을 만나고,

대리점과 소통하고,

내부 인력을 독려했다.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는 하지 않았다.


대신 반복했다.

그리고 또 반복했다.


신뢰는

한 번의 설득으로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년이 지나자

현장의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번 사장은 다르다.”


그 말이 조용히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세상이 멈췄다.


코비드가

전 세계를 덮쳤다.


병원은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했고,

환자 수는 급감했다.


진단 검사 건수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매출 그래프는 가파르게 떨어졌다.


그의 약속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이제 질문은 하나였다.


버틸 수 있는가가 아니라,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는가.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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