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리 너머 안개 속 희망을 향해 2

2부. 기약 없는 히치하이킹

by Coo Lee

시험에 합격한 뒤, 어머니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학비도 부담되지만, 대전에서 하숙이나 자취를 마련해 줄 여유가 전혀 없었다.
가부장제의 그림자 아래, 어머니는 결정권조차 없었기에 더 고민이 많으셨다.

아버지를 설득하길 수십 번.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고민만이 깊어 가던 어느 날, 아버지는 마지못해 허락을 하시면서,
일단은 집에서 통학하면서 시작해 보라고 하셨다.


산골에서 대전까지 통학을 하려면
먼저 한 시간을 걸어 읍내로 나가야 했고,
거기서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한 시간을 달려야 했다.
30분에 한 번 오는 버스는 늘 콩나물 시루처럼 가득 차 있었고,
겨우 올라타더라도 내릴 때쯤엔 차멀미로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하루 두 차례, 왕복 다섯 시간의 통학은 고작 일주일 만에 탈진에 이르게 했다.


그는 불현듯 하나의 방법을 떠올렸다. 히치하이킹이었다.
마침 마을 앞에는 고속도로가 있었다.
새벽밥을 챙겨 먹고, 고속도로 갓길로 올라섰다.
굽이진 산길의 오르막과 내리막 사이,
화물차가 잠시 멈출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손을 들어 올렸다.

놀랍게도, 좋은 사람들은 매일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누군가가 태워주었다.
서대전 톨게이트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면 학교까지는 30~40분 거리.
하교 후엔 다시 톨게이트로 가서 손을 들었다.
그 시절, 학교보다 더 큰 숙제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운 좋은 날엔 저녁 7시쯤 도착했고,
운이 나쁘면 자정을 넘기기도 했다.
장마철엔 비를 맞고, 겨울이면 눈바람을 헤치며 그렇게 1년을 버텼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동안, 집안 살림은 점점 더 빠듯해졌다.
학비와 교통비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느닷없이 양자로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양자로 보내면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분명히 약속했다고 했다.


그날 이후, 집안은 말 없는 전쟁 속으로 빠져들었고, 아무도 그의 앞날을 가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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