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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이 Jan 25. 2024

일개 시민, 범죄도시를 만나다

시민덕희(2024) - 주관적인 영화 리뷰

※ 본 리뷰는 '시민덕희'(2024)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어처구니없는 실화의 영화화

키보드 한영키를 누루고 '춘화루'라고 치면 'CNSFHKFN'이 나온다.

 화재로 재산과 집을 잃고 힘들게 두 아이를 키워나가는 덕희(라미란)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3,2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빼앗기고 맙니다. 덕희의 생활이 점점 궁핍해져만 가는 어느 날 자신을 속인 보이스피싱범 재민(공명)에게 범죄 조직을 탈출하고 싶다는 제보를 받게 됩니다.

춘화루 간판이 있는 건물 근처에 갇혀있다는 재민의 간절한 제보에 덕희는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경찰에게 신고합니다. 하지만 형사(박병은)를 비롯한 경찰들은 덕희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누구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자 덕희는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해 보이스피싱 제보 현상금 1억을 타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런 덕희를 돕기 위해 친구 봉림(염혜란), 숙자(장윤주), 그리고 중국에 있는 봉림의 동생 애림(안은진)까지 합류하게 되고, 그들은 범죄조직의 총책(이무생)을 잡기 위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추적을 시작합니다.


'시민덕희'(2024)는 2016년 일개 시민이 조직원의 제보를 받고 중국에 가서 경찰도 잡지 못하던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을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믿기 힘든 실화인 만큼 영화 제작 소식이 들리기 전부터 나름 영화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다만 실화라는 매력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치는 그리 높다고 말하기 어려운 편입니다. 주연 배우 라미란의 티켓 파워가 부족한 감도 있지만 근래 개봉작들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치가 떨어져 있고 곧 있으면 시작될 설날 개봉작들에 대한 기대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작품이 흥행을 노린다면 설날 이전에 입소문을 타 최대한 관객을 끌어모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 제작진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배우들과 무대인사를 돌며 입소문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적극적인 입소문 홍보에 걸맞게 좋은 작품이 나온 걸까요?




깔끔한 구성과 캐릭터들

코미디와 수사의 만남이 생각보다 잘 구성 되어있다.

 작품을 보면서 마음에 든 부분은 깔끔한 구성과 캐릭터들이었습니다. 특히 주요 인물이 6명이나 됨에도 각자의 역할과 매력을 적절히 뽐내어 잊히는 캐릭터가 없다는 부분에서 작품이 단순히 실화라는 소재에 기댄 허술한 영화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구성 또한 고민한 흔적이 잘 보입니다. 코믹수사를 내세우는 일반적인 작품의 경우 코믹하고 허당스러운 주인공들에 맞춰 범죄조직을 우습게 그려냅니다. 쉽게 말해 '코미디'와 '수사'의 톤을 맞춰 한 작품 내에서 진행되는 서사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것이 실패하게 되면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을 넘어 불호의 감정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본 작품은 코미디와 수사의 분위기 간극이 제법 커다람에도 불구하고 15세 이용가에 맞춰 코미디와 수사가 한 작품 내에 자연스럽게 묘사됩니다. 적당한 선에서 묘사될 수 있게 덕희와 재민의 공조 과정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덕분에 기본적으로 특별한 연출 없이도 과하지 않은 적당한 긴장과 웃음을 주며, 편안히 관람을 할 수 있는 구성을 보여줍니다.




라미란이 연기한 '시민'덕희

라미란의 연기력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고된 삶 속에서도 생활감 있는 모습을 표현한 라미란의 연기는 '시민'덕희라는 캐릭터를 부각해 줍니다. 그 연기가 캐릭터성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제와 메시지를 살려주고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에 작품의 매력 포인트를 짚고 넘어갈 때 배우 라미란을 빼고 이야기하긴 어렵습니다.


라미란이 열연은 서사에도 영향을 줍니다. 다소 황당해 보이기까지 하는 실화를 소재로 삼은 만큼 작품 초반은 주인공 덕희의 캐릭터를 조성하는데 공을 들입니다. 그리고 라미란의 열연에 힘입어 캐릭터의 거침없는 행동에 자연스러운 공감과 당위성이 생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와 별개로 초반부터 덕희의 감정적 폭발이 잦은 편이기에 작품의 서사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작품의 주인공 덕희는 시민입니다. 그냥 시민이 아니라 개중에서도 최약층에 속하는 일개 시민입니다. 그렇지만 덕희는 마냥 당하기만 하는 약자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근성과 끈기로 무모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추진해 나가는 저돌성을 지녔습니다. 그렇지만 일개 시민에 불과한 그녀가 무시무시한 범죄조직을 상대로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범죄도시'와의 비교

범죄조직 묘사가 범죄도시 시리즈 뺨치게 살벌하다.

 작품을 관람하기 전 필자는 주인공 일행이 나약하고 코믹한 인물 들인 만큼 이에 대적하는 범죄조직이 허당일 걸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덕희 일당이 펼치는 코믹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 조직은 매우 살벌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카메라에 직접적인 장면을 노출하지는 않지만 사운드와 참혹한 현장은 거의 그대로 묘사되기에 범죄조직의 어둡고 참혹한 분위기는 현실적으로 전달됩니다. 특히 잔혹함의 정도만 놓고 봤을 때 마동석이 출연하는 '범죄도시' 시리즈의 빌런들이 연상될 정도이니 가벼운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들에겐 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본 작품은 빌런, 분위기와는 별개로 자잘한 구성면에서 '범죄도시'(2017)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빌런 체포에 제보자가 큰 역할을 함

이후 빌런에 의해 제보자는 큰 부상을 입음

돈을 위해서라면 동포도 살해하는 빌런의 잔인함을 강조하는 장면

주인공이 도망치는 최종 보스를 추격하려다 놓침

최종 대치 장소가 공항 화장실

결정적으로 두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갈등과 매력 또한 '현실에서 어찌할 수 없는 법의 한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마석도(마동석) 형사를 내세워 법과,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유쾌한 해결책을 선사했습니다. 본 작품은 그와 반대로 법과 물리적 한계 속에서 시민'덕희'가 부당함을 이겨내기 위해 버티는 모습으로 위로 섞인 공감과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이런 방식에 우열은 딱히 없습니다. 뭐가 더 좋은 방식인지는 각자의 취향 차이일 뿐입니다.




범죄자들 앞에서 시민은 무력하다

착하게 살아온 시민이 당당하지 못하단 건 너무나 분한 일이다.

이렇게 잔혹한 범죄조직의 총책에게 돈도 힘도 없는 덕희는 어떻게 대항해야 할까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공권력보다 범죄자의 주먹이 더 가까운 법입니다. 총책이 당당하게 덕희를 모욕하고 도망가도 덕희는 분한 마음만 곱씹으며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덕희는 마동석처럼 신나고 화려하게 범죄자들을 혼내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사적재재를 일삼는 범법자도 아니고 그럴 힘도 없습니다. 덕희는 그냥 시민도 아니고 최하층 일개 시민입니다. 덕희가 부당함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는 무모해 보이더라도 실행할 수 있는 추진력뿐입니다.


그렇기에 덕희는 부당함을 부르짖으며 피해자들이 나쁜 것이 아니고, 범죄자인 총책이 나쁜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말을 가해자 앞에서 당당하게 꺼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대사는 단순히 범죄자에 대한 분노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피해자들을 보듬고 이해해주지 않는 사회 인식에 대한 항변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립니다. 한국의 법치제도는 그런 사기꾼들을 막지 못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들의 입니다. 사람들은 피해자들을 도와주지도 않고, 이해하지 못한 채 역으로 따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현실뿐만 아니라 작품 내 사회에 여전히 피해자들을 향한 이해와 공감의 부족함이 보이지만 무력한 시민들을 대변하는 덕희의 외침은 작품 전반에 쌓인 피해자들의 아픔과 현실 속 어처구니없는 법의 한계에 지친 관객들에게 강한 공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우리가 나쁜 거 아니잖아요

결론적으로 훈훈하고 즐겁게 보기 좋은 작품이다.

 최근에 인터넷 기사를 본 적 있습니다. 딥페이크 영상으로 유명인들의 얼굴을 합성해 실제로 유명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처럼 투자를 유도하는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댓글을 읽던 중 필자는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스트 댓글들이 피해자들을 멍청하다며 욕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피해자들의 부주의를 비판하는게 아닌 멍청하다는 논조였습니다. 부주의하면 당한다는 인식 속에 피해자를 우습게 보는 풍조가 있기라도 한 걸까요?


자주 있는 착각이지만 사기에 있어 피해자가 똑똑한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 흔한 보이스피싱은 은행원도 당합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절실한 마음을 포착하면 어떤 사람이더라도 당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가해자 앞에서 피해자는 언제나 무력한 약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좋고 나쁨의 기준은 인물의 행실이지 두뇌를 비롯한 힘의 여부가 절대 아닙니다.


'시민덕희'(2024)는 분명 걸출한 작품은 아니지만 깊이 있는 무언가를 찾을 필요 없이 가볍게 즐기기 좋은 매력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게 됩니다.

법의 한계가 만든 분노는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일 예로 범죄에 대한 강한 처벌 요구와 사적재재와 관련된 콘텐츠들이 급증하는 것만 봐도 망가져 가는 사회의 단면이 보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시민덕희'(2024)는 흥행여부와 상관없이 분명 대중들에게 공감받고 좋은 입소문을 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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