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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이 Jan 31. 2024

영화 이상(以上), 영화로 연결된 인간의 삶

원 세컨드(2020) - 주관적인 영화 리뷰

※ 본 리뷰는 '원 세컨드'(2020)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왓챠피디아


문화대혁명 시대, 단 한 편의 영화

포스터가 굉장히 잘 나왔다.

 문화 대혁명 말기, 장주성(장역)은 딸이 등장한다는 영화를 보기 위해 한 마을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 필름을 류가녀(류호존)가 훔쳐가 버리고, 장주성은 필름을 되찾기 위해 류가녀가 사는 마을까지 쫓아가게 됩니다.

가까스로 류가녀를 붙잡고 필름을 영사관 기사 범영화(범위)에게 반납하지만 여전히 영화 상영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결국 장주성은 영화 상영을 위해 범영화에게 협력하고, 동시에 필름을 훔치려는 류가녀를 경계하며 영화 상영을 위해 동분서주하게 됩니다.


본작품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국의 흑역사를 다소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 정치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국 비판을 막는, 문화 검열이 심한 중국 영화라는 특성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이례적인 작품인 만큼 작품을 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중국 비판과 영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연출에 치중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본 작품은 영화를 통해 공유되는 인물 간의 드라마가 굉장히 중요한 작품인 만큼 사회적 배경에만 몰두하지 말고 차분히 인물들의 행적과 심리를 따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메마른 사막의 아름다운 미장센

메마른 사막 속에서 부질없는 노력이 부각된다.

 본 작품은 문화대혁명 말기를 배경으로 단 한 편의 영화를 찾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습니다. 메마른 시대를 배경으로 사막을 가로지르는 그의 모습은 흡사 아포칼립스 장르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아포칼립스 맞습니다. 사람과 문화가 파괴된 문화 아포칼립스. 척박하고 메마른 배경은 잘못된 정치로 비롯된 주민들의 빈곤한 삶과 문화적 종말의 흔적입니다.


장예모 감독이 의도적으로 척박한 사막의 이미지는 사용한 만큼 작중 영화라는 아이템은 오아시스처럼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중요한 아이템으로 나옵니다. 즐길거리가 마땅치 않은 마을에서 영화는 모두가 즐길 있는 대형 잔치와 마찬가지입니다.

한편으로 영화의 가치가 커진만큼 영사관 기사의 권력도 커졌습니다. 메마른 사막에서 필름 한통으로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권력을 휘두르는 영사관 기사 범영화의 모습은 아포칼립스 시대의 뻔뻔한 권력자가 연상될 정도입니다.




영화가 위로가 되는 아름다운 순간

단 1초 남짓, 이 1초에 위로받는다.

 장주성은 딸이 출연한 영화를 찾기 위해 여정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여정 끝에 필름을 수복하여 보게 된 딸의 출연은 고작 1초 남짓이었습니다. 범영화는 너무나 짧은 출연 시간에 안타까움을 표하지만 정작  1초에 본 장주성의 얼굴은 눈물범벅입니다.

영화가 인간의 꿈을 보여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 걸맞게 영화는 인간이 가장 염원하던 소망을 품고 이야기가 되어 관객들에게 위로와 감동, 기쁨과 즐거움, 분노와 역겨움을 느끼게 해 줍니다.


본작품에서는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영화의 아름다움에 묶인 장주성을 보여줍니다. 장주성은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노동교화소로 끌려갔다, 딸을 보겠단 일념으로 탈옥했습니다. 부조리한 현실로 가족과 이별하게 된 그는 1초 만을 돌려 보며 딸과의 만남을 영원으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이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에게 '시네마 천국'(1988)과 '바빌론'(2022)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면 배우들이 그 시간,  그 장소에 되살아납니다. 특히 앞서 리뷰했던 적 있는 '바빌론'(2022)은 영화라는 문화가 가진 불명성과 생명력을 감동적으로 묘사했습니다.

https://brunch.co.kr/@ec37be56039749c/5




사람을 구원하는 아빠와 딸의 삶

결국 그들을 구원하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사람'이다.

 영화를 통해 마을 주민들은 즐거움을, 범영화는 권력을 얻어왔습니다. 반면 장수성과 류가녀는 영화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장주성은 딸을 보고 싶을 뿐이고, 류가녀는 필름 전등갓을 만드는 게 목적일 뿐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 둘의 마음은 연결됩니다.


두 사람은 문화대혁명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게 된 가족을 그리워합니다. 대상의 이름만 다를 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연결되어 육체를 넘고 눈물로 튀어나옵니다. 아빠가 보고 싶다는 류가녀의 맺힌 울먹임에 딸의 모습을 본 건지 장주성 역시 말없이 고개만 끄덕입니다.


영화를 통해 연결된 둘의 마음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두 인물은 영화에 위로를 받았을 뿐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구원하는 건 아버지와 딸의 삶입니다.

장주성은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범영화와 공유했습니다. 범영화는 구타당하고 묶여있는 장주성을 동정하며 남들 몰래 딸의 모습이 담긴 필름 한조각을 건네줍니다. 장주성 역시 그 마음에 답하듯 범영화를 통해 류가녀가 그토록 바라던 필름 전등갓을 전달합니다.

내면의 깊은 감정과 구원을 교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 이상의 의미가 사람 사이의 삶 속에 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중국의 문화, 그럼에도..

정부에 의한 문화와 인간의 억압이 표현된, 본 작품에서 가장 상징적인 미장센이다.

 다시 노동교화소로 끌려가던 와중 장주성은 딸의 모습이 담긴 필름을 보안과 사람들에게 빼앗겨 잃어버리게 됩니다. 멀리서 뒤따라오던 류가녀가 필름을 감싸고 있던 신문 조각을 줍습니다. 그녀는 신문 조각을 장주성이 잃어버린 물건으로 오해한 채 장주성을 안심시키는 환한 인사로 떠나보냅니다.


분명 두 인물들 모두 안심하고 구원받았지만 전지적 시점에서 모든 것을 본 관객들은 알고 있습니다. 필름(문화)은 이제 없다는 것을 말이죠. 류가녀는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린 건지 조차 모르는 해맑음만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도 이를 자각하지 못한, 문화대혁명의 시대상을 단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한 명장면입니다.


시간이 흘러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장주성은 류가녀와 재회해 필름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하지만 장주성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필름이 사라진 사막을 바라봅니다. 미련이 남겠지만 장주성은 웃을 수 있습니다.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필름(문화)이 없어진 것은 안타까워도 그의 곁에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 남았습니다.




문화대홍수 시대, 단 한 편의 영화

공산당에 협력하면서도 장주성을 도와준 범영화는 장예모 감독의 분신이란 해석도 있다.

 한국에선 장예모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미장센을 좋아하면서도 친정부적인 작품세계를 불편해하는 관객들이 존재합니다. 필자도 이에 공감하고 다소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게 중국은 문화 검열이 굉장히 심한 국가입니다. 아무리 명성 있는 인물이더라도 작품을 내놓을 때 공산당의 심사를 받기 때문에 잘 못하면 업계에 발 붙일 수 없게 됩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주도한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매장된 업계인들이 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벼운 마음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습니다.

본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문화대혁명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친정부적인 문화를 권장하면서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모습은 분명 작금의 문화 검열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와중 장예모 감독은 본 작품을 통해 문화대혁명 시대 속에 고통받은 아버지와 딸이 유사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리며 문화 검열과 국민 억압에 비판의식이 남아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중국에 대한 비판으로 협소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본 작품에서 장주성에게 진정 의미있는 필름 한조각을 찾지 못한 류가녀의 행보와 다를 바 없습니다.


본 작품은 영화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문화를 통해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삶 역시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검열에서 자유로운 중국외 국가들에게도 통용됩니다. 아무리 대체품이 넘치는 OTT시대 일지라도 영화 하나하나가 각각의 사람들에게 남모를 소중한 가치가 담겨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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