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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이 Feb 08. 2024

동심으로 빛나는 초콜릿(행복) 혁명

웡카(2023) - 주관적인 영화 리뷰

※ 본 리뷰는 '웡카'(2023)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왓챠피디아


초콜릿 공장 이전에 그가 있었다

왜 이제야 개봉하니. 얼마나 기다렸다고.

 세상을 떠돌며 7년의 걸친 연구와 공부를 마친 윌리 웡카(티모시 샬라메)는, 초콜릿 가게를 열기 위해 '달콤 백화점' 거리에 도착합니다. 넘치는 재능으로 순식간에 시민들에게 초콜릿 실력을 인정받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3명의 초콜릿 사업가 슬러그워스(패터슨 조셉), 프로드 노즈(맷 루카스), 피켈그루버(매튜 베인턴)에 의해 거리에서 쫓겨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인숙 주인 스크러빗 부인(올리비아 콜맨)과 블리처(톰 데이비스)에게 속아 산더미 같은 빚을 지고 세탁소 직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절망스럽지만 웡카는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스크러빗 부인 밑에서 키워진 고아 누들(칼라 레인)과 또 다른 세탁소 직원들 아바커스 크런치(짐 카터), 파이퍼 벤츠(나타샤 로스웰), 로티 벨(락히 타크라), 래리 처클스워스(리치 풀처)의 도움을 받아 몰래 초콜릿 판매를 시작합니다.

한편 초콜릿 사업가들과 경찰서장(키건 마이클 키), 줄리어스 신부(로왓 앳킨슨)로 구성된 '초콜릿 연합'은 웡카를 눈엣가시로 여기며 새로운 계략을 꾸미기 시작합니다.


북미에서는 12월 연말에 개봉하여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린 훈훈한 가족영화입니다. 막상 한국에서는 연말이 지나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연초에 개봉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시즌이 엇갈렸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가 전 세대를 아우루는 따뜻한 동심을 품고 있기에 한국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 작품에 만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사와 캐릭터, 특히 웡카에 대해서 이질감을 느끼며 기대와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필자는 본 글을 통해 많은 관객들이 느낀 웡카에 대한 이질감과 작품의 주제, 그리고 찰스 디킨스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리뷰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1971)의 프리퀄

웡카와 움파룸파의 디자인이 확연히 다르다.

 일단 많은 분들의 가장 큰 오해를 정정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본 작품은 팀 버튼 감독 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의 프리퀄이 아니라,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1971)의 프리퀄입니다.

로알드 달의 원작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국내에서 유명해진 계기는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의 영향이 큽니다. 팀 버튼 특유의 훌륭한 영상미와 뒤틀린 듯한 분위기, 조니 뎁이 연기한 웡카는 독특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1971년도 작품은 로알드 달 작품에 익숙한 영미권에서 상당히 유명합니다. 시대에 따른 기술력의 한계가 보이고 원작과 다른 일부 변경점이 있긴 하지만 동화같은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은 작품이지만 필자에겐 나름 어린 시절 TV로 보았던 추억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당시 웃음을 주면서도 어딘가 전능한 느낌이 드는 웡카가 좀 섬뜩했던 인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갑론을박이 있지만 팀 버튼도 원작의 스토리를 훌륭하게 재현했습니다. 그렇지만 웡카라는 캐릭터는 원작과 다르게 팀 버튼의 뒤틀린 취향을 듬뿍 넣은 인물로 나왔습니다. 반면 본작품의 웡카는 무려 50년 전에 만들어진 1971년작에 영향이 짙습니다. 이러니 버튼이 만든 웡카에게 익숙한 관객들은 괴리감을 느끼는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1971년작을 본 관객이라 할 지라도 웡카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관객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이유가 있습니다.




초콜릿이 재밌고 티모시 샬라메가 스윗해요

보다 보면 웡카보다 티모시 샬라메로 보인다.

 '웡카'(2023)는 캐릭터의 과거를 다루는 프리퀄 영화입니다. 그만큼 중심이 될 캐릭터 메이킹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웡카의 캐릭터 메이킹은 부족함이 느껴지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대부분 관객들이 웡카에게서 괴리감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티모시 샬라메는 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얼굴마담입니다. 뛰어난 연기력은 기본이요, 비주얼과 작품 선구안 마저 좋은 편이라 작품 활동을 할수록 팬들의 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인물입니다.

본 작품 전반에 녹아있는 로맨틱한 분위기도 분명 티모시의 빛나는 외모를 기반에 둔 치밀한 기획일 겁니다. 그만큼 이번 작품의 웡카는 훈훈한 외모를 내세운 로맨틱함이 특징입니다.


웡카를 표현한 인상 깊은 장면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작품 전반에서 웡카는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어디서 많이 본 적당히 재밌고 착한 캐릭터로 보입니다. 정형화된 서사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지나치게 웡카에 대한 내적 묘사가 작중 등장하는 초콜릿보다도 단순합니다. 오직 대사가 그의 엉뚱함을 드러낼 뿐, 초반의 강렬한 에너지를 잃은 서사와 맞물려 어느새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로맨틱한 모습만 남게 된 겁니다.


아이러니한 건 그나마 등장 캐릭터 중에서 웡카가 가장 나은 편이라는 겁니다. 등장 캐릭터들은 많은데 대부분 비중도 약하고 활약도 서사를 위해 퍼즐 조각처럼 짜 맞춰진 도구적인 모습이 강합니다. 그나마 웡카 다음으로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누들 역시 감동적인 순간과는 별개로 기억할만한 매력은 없고, 고아라는 외견과 정체성이 옷을 걸친 것 마냥 나풀거리기만 합니다.


서사의 구조도 아쉽습니다. 중후반부 웡카의 실패 이후 반격은 활기 넘치던 초반과 다르게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낭만으로 가득 찬 동화 감성으로 자본주의 초콜릿 연합을 허무하게 타파하다 보니 서사가 헐거워졌고, 뒤늦게 움파룸파족이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지만 이마저도 너무 단편적이고 늦은 출연이라는 인상이 짙습니다.

장르의 특성상 서사의 헐겁거나 개연성이 약한 부분을 뮤지컬 파트로 보강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행복과 다채로운 행복

초콜릿 연합부터가 대기업들이 단합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본 작품 내에서 초콜릿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행복을 상징합니다. 웡카의 초콜릿(행복)은 상상력 넘치는 꿈과 다채로움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가들에게 초콜릿(행복)은 돈입니다. 초콜릿은 단순해야 한다며 다채로운 행복을 거부한 그들의 이념은 단적으로 자본주의 시대 속 황금만능주의를 상징합니다.

이런 물질주의 세상에서 행복의 정의를 바꿔 세상을 바꾸려는 웡카의 모습은 기존의 계급 체제에 반기를 들어올린 프랑스 혁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극중 세상을 바꾸겠다는 웡카의 대사가 의미심장한 이유입니다.


로알드 달의 원작들은 성인들을 위한 블랙 코미디를 담은 경우가 많습니다. 본 작품만 하더라도 초콜릿 연합의 모습을 통해 기업들이 단합하여 사법체제를 농락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검은 이면을 유쾌하게 담아내었습니다. 특히 처음엔 뇌물을 거부하다가도 결국 양심을 모두 버린 경찰의 몸은 너무나 직설적인 의도가 담겨있기에 우스꽝스러우면서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반면에 웡카와 그의 친구들을 통해 묘사되는 초콜릿은 화려한 다채로움과 서로에 대한 애정이 부각됩니다. 가족과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친구와 이웃을 향한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이 초콜릿을 통해 낭만적으로 표현됩니다. 이들에게 초콜릿은 단순한 개인을 위한 결과가 아니라 모두와 나눌 때 더 빛나는 유대의 기쁨입니다.


자본주의자들에게 행복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지하금고를 만들어 초콜릿을 쌓아갑니다. 하지만 누들에게 글을 배워 어머니의 메시지를 읽게 된 웡카는 그들이 가진 모든 초콜릿을 합친 것보다 귀한 최고의 초콜릿(행복)의 비밀을 알게됩니다.


비밀은 이거야. 중요한 건 초콜릿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란다. - '웡카'(2023) 중

가게를 내어 산처럼 많은 초콜릿을 사람들과 나누었을 때도 볼 수 없었던 웡카의 어머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머니에게 받은 소중한 초콜릿을 모두와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웡카는 진정으로 꿈꾸던 어머니의 사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을 위해 보관할 때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의미가 있는 겁니다.




찰스 디킨스와 로알드 달의 하모니

누들은 '올리버 트위스트'에 나오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오마주이다.

 본 작품의 또 다른 주연 누들은 행적들과 출생의 비밀부터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오마주입니다. 이는 로알드 달을 위한 존중의 의미로 찰스 디킨스의 캐릭터를 배치시킨 것입니다.

로알드 달은 어린 시절 찰스 디킨스 소설을 자주 읽었다고 회고한 적 있습니다. 로알드 달은 자신의 작품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찰스 디킨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표한 바 있습니다. 제작진들은 웡카와 누들을 통해 로알드 달과 찰스 디킨스와의 연대를 표현한 것 같습니다.


웡카는 처음 초콜릿 가게를 열 때 'A World of Your Own'(너만의 세계)을 부릅니다. 1971년도 영화판을 오마주한 노래를 부루지만 묘하게 원곡과 다릅니다. 이 OST는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1971)의 대표곡 'pure imagination'(순수한 상상)을 개사한 곡으로 1971년도 영화판에선 웡카가 초콜릿 공장을 처음 방문한 아이들에게 꿈처럼 아름다운 세계를 표현한 명곡입니다.


그리고 이 곡은 누들이 어머니와 재회하는 장면에서야 제대로 불러집니다.

앞서 누들이 가르쳐 준 글을 통해 어머니가 가르쳐준 진정한 초콜릿(행복)의 의미를 알게 된 웡카는 이번엔 누들의 순수한 꿈을 이루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꿈처럼 아름다운 세계를 표현한 'pure imagination'의 노래처럼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이 장면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아름다운 선이 있다'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주제와 조화를 일으키며 1971년도 영화판의 팬들과 찰스 디킨스의 팬들 모두에게 더없이 훌륭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영미권 관객들에게 맞춰진 장점들

영미권을 노린 말장난이 많은지라 번역이 아쉽다.

 좋으면서 아쉬운 부분은 웡카의 장점들 대부분이 영미권을 노리고 만들어졌다는 부분입니다. 영어를 이용한 말장난이 많이 등장함에도 자막에서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니 아쉬움이 큽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숙박업으로 손님들을 독박 씌워 세탁소를 운영하는 스크러빗 부인과 블리처는 각각 scrub(문질러 씻다)과 Bleacher(표백하는 사람)를 뜻하는 말장난입니다. 이런 말장난은 웡카의 다른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커스 크런치는 부서진 주판, 파이퍼 밴츠는 파이프, 로티 벨은 전화벨, 래리 처클스워스는 웃음소리를 표현한 말장난으로 각인물들의 캐릭터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OST도 장난기가 넘쳐 호박(pumkin - 영미권에서 애정 있는 상대에게 하는 애칭)을 이용한 말장난을 하기도 합니다.


무려 반세기나 된 1971년도 영화판의 프리퀄이라는 것도, 정보가 부족한 한국관객들이 '웡카'(2023)를 즐기는데 방해받는 요소입니다. 오마주를 통해 감동을 주는 작품인데 정작 어떤게 오마주인지도 알아채기 쉽지않습니다. 1971년도 영화판의 경우 국내에서 판매되는 플랫폼도 없어서 접근성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필자처럼 어린 시절 원작을 읽고, TV를 통해 우연히 본 경우가 아니라면 오마주를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빛을 잃지 않는 것

동심이 빛난다는 말은 이런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러니 저러니 여러말을 했지만 '웡카'(2023)는 한국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즐겁고 잘만든 작품입니다. 아쉬운 부분은 있을 지언정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블랙 코미디와 동화적이고, 훈훈한 폴 킹 감독의 감성을 더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원작이 아동문학이라는 이유를 앞세워 영화의 부족함을 대충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았습니다.


결국 본 작품에서 자본주의자들을 타파하는 초콜릿(행복) 혁명도 동심에 기댄 현실성 없는 낙관에 가깝습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도 너무 많이 사용된 낡은 주제인 것도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초콜릿이라는 요소를 통해 소중한 이들과의 행복과 사랑이 자연스럽게 은유되기에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분명하고 또렷합니다. 일관적으로 모두가 만족할 법한 세계를 훌륭하게 펼쳐내었고 찰스 디킨스의 작품 세계를 내포한 누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현실 속 선의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는 부분은 우리가 잃어버린 동심이 어떤 가치가 있었는지를 되세겨 줍니다. 이것이 아동 문학 작품 원작 영화를 만들면서도 수많은 어른 관객들에게 폴 킹 감독의 동심이 더욱 빛나보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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