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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바르섬의 추억

어제까지만해도 세상 어디인지도 몰랐던 곳에서 행복을 찾다

by 메모리정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 도착했다.

유럽스러우면서 도시 자체가 고대 유적 같기도 하고

바다와 산이 같이 어우러져 있는 느낌이 썩 좋았고 날씨도 완벽했다.

스플리트에서의 1박이 끝나가고

다음 날은 흐바르 섬을 가기로 한 일정이었지만

비수기라 페리 시간대가 썩 좋지 않았을 뿐더러

스플리트가 너무 좋아 바닷가에 앉아 석양이 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까지

흐바르섬 행 페리 티켓을 끊지 않았다.

그러다 어둠이 깔리기 전, 페리 사무소가 문 닫기 직전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티켓을 끊었고

그 선택으로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일 행복한 기억을 얻었다.


흐바르섬 선착장에 정착한 뒤 버스를 타고 섬 중심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백발의 키 크신 어르신 한 분이

나의 눈을 맞추고 밝게 웃으며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먼저 인사를 건네주었다.

시작부터 흐바르섬엔 좋은 사람들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수기라 섬 자체에 사람이 거의 안 보였고, 관광객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느낌이었다.

바다에 햇살이 비춰 윤슬이 너무 예뻐 그냥 목적지 없이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동네 아이들이 카약을 타고,

마을 사람 두 분이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바다로 풍덩 빠진다.

스킨스쿠버인지 스쿠버 다이빙인지, 물고기를 잡으러 들어가신 건진 모르겠지만

그저 나도 같이 풍덩하고 빠지고 싶은 마음이다.

같이 풍덩할 순 없으니 가만히 앉아서 같은 바다라도 바라봐야겠다.



바다 색깔은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본 에메랄드빛이었고,

핸드폰 플레이리스트에는 김동률의 ‘출발’이 나오고 있었다.

살면서 많이 웃었고, 수없이 즐거운 순간들이 있었겠지만

이렇게 많이 행복하고, 수없이 행복한 순간은 처음이다.

세상은 넓고, 이 작은 섬에도 나를 이리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있는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 나는 얼마나 더 행복한 순간들을 보고 느낄 것인가.

여태까지 ‘행복’이라는 단어를 겉면으로 느끼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한 시간여의 행복의 시간을 끝내고 슬슬 배가 고파 미리 알아보고 온 식당으로 향했다.

문은 열려있는데 불은 안 켜져 있고.. 영업을 하는건가?

가게 앞을 두리번 거리자 주인 할아버지께서 나와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며

근처에 열려있는 다른 식당을 추천해 주신다며 구글 맵을 켜 보라고 하신다.

마침 지나가던 다른 할아버지도 와서 식당을 알아보는 거냐며

두 분이서 열심히 식당가는 길을 설명 해 주신다.

구글 맵에 가는 길이 나와있는데도 골목골목 똑같이 생긴 곳이 많고

미로 같아 보여서 혹여 길을 헤멜까 온 몸짓을 표현해 가시며 설명해 주신다.

“땡큐베리머취”

라는 짧은 영어와 몇 번의 고개 숙임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가르쳐주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현지인 몇 분들만 계셨고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스테이크 하나를 주문했고 맛있게 먹고 나가려는데 뒤 쪽 테이블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 바이, 코리안!”

하시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처음엔 엇 뭐야 나 한국인인거 어떻게 알았지?

하고 어색하게 인사해주며 식당을 나왔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줬었던 그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죄송해요 못 알아봐서 ㅠㅠ


석양이 지는 것까지 보고 항구로 향하는 버스 안에 올랐다.

어두워질 때 쯤 항구에 도착해 배 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중년의 어르신 한 분이 흐바르 섬은 마음에 들었냐며 말을 건네 주셨다.

마음 같아선 여기 진짜 너무 마음에 들고 바닷가에 가만히 앉아서 노래를 듣는데 너무 행복했고

사람들도 너무 좋고 다음에 또 오고 싶고,

현재까지 내 유럽여행지 중에서 제일 좋다고.

말하고 싶은건 엄청 많았지만 역시 문제는 내 짧은 영어였다.

이 많은 말들을 삼키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 뷰티풀, 아이 라이크 히얼 ”

과 같은 절대 내 마음이 다 표현이 안 되는 짧은 영어들뿐이었다.

그 구린 영어를 들으시고도 어느 나라에서 왔냐, 어디어디를 여행 중인지,

제일 좋았던 여행지는 어디였는지 계속 말을 건네주셨다.

이렇게 흐바르 섬은 떠나는 순간까지 나에게 여행지와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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