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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리정 Jul 09. 2022

캐리어 대신 배낭을 선택한 자에게 도움의 손길은 없다

친구랑 같이 갈 때는 가방을 맞춰주세요

캐리어? 배낭?

내 선택은 배낭이었다.

유럽은 길이 대부분 돌바닥으로 되어있고, 엘리베이터 설치된 곳은 별로 없으며

계단이 무지하게 많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유 캐리어 끌고 가면 못 해도 28인치 꽉 채워서 갈 텐데 그걸 두 달 동안 어떻게 끌고 다닌담


배낭으로 결정을 내리자 다른 문제가 다가왔다.

40L짜리 배낭에 내 두 달치 짐을 쑤셔 넣어야 하는 것이었다.

내 삶의 무게가 곧 짐의 무게이고, 그 짐의 무게가 곧 내 어깨의 안녕이니라...

예쁜 옷들, 신발은 고사하고 경량 패딩, 후드 집업, 맨투맨, 내복 등등 겨울 유럽여행에 꼭 필요하고 효율적인 옷 들로만 챙겼다.

신발은 신고가는 것 하나와 슬리퍼 하나.

수건이랑 속옷도 그날그날 빨아서 쓰려고 3장씩만 챙겼다.

그래도 2달치의 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생활 라이프도 줄이고 욕심도 줄여서 싼 가방인데도

내가 맥시멀 라이프 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위로, 옆으로 뚱뚱해진 내 배낭이다.


그렇게 내 머리보다 높이 올라온 빨간 배낭을 메고 내 삶의 무게를 짊어진 여행이 시작되었다.




친구랑 같이 갈 때는 가방을 맞춰주세요


인천공항


같이 휴학 신청서를 내고

서로의 첫 유럽여행에 서로의 여행 동반자가 되어 줄 친구와 공항에서 만났다.


빨간색 배낭과 무지개색 벨트가 둘러진 큰 캐리어 하나.

나는 유럽 내 이동의 편리함을 택했지만

친구는 옷들과 더 많은 짐을 택했다.


그래서 승자는 누구냐고?

혼자 여행에서는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에선 캐리어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돌길이 많아 캐리어 바퀴를 돌 한 칸 한 칸마다 들어서 움직여야 하는 느릴 수밖에 없는 거북이와

어깨가 무거워 몇 걸음이라도, 몇 초라도 빨리 가야 하는, 안 그러면 땅 속으로 파고들 것 같은

두더지의 만남이랄까.

나는 빨리 가야 하는데 친구는 빨리 갈 수 없고, 또 나는 그 친구를 버리고 갈 수 없어서

내 어깨만 죽어나는 것이다.


그래도 엘리베이터 없는 숙소나 계단이 많은 곳은 배낭 멘 네가 승리자 아니야?


응 아니야.. 사람들은 캐리어를 들고 낑낑거리는 사람은 도와주지만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사람이 낑낑거린다고

“가방 내가 대신 메줄게!” 라고 하진 않지 않는가.

캐리어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신 들고 계단을 올라가 주거나

숙소 주인 분이 픽업을 나와 만나도,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건

배낭끈이 아니라 캐리어 손잡이였다.



캐리어를 들고 낑낑거리는 여자를 보면 정정한 남성 분들이 "두유 니드 썸 헾?"

를 외치며 캐리어 손잡이를 기꺼이 잡아 올려주지만,

내 머리보다 높이 솟아있는 배낭을 보고선 엄지손가락만 치켜 올려주신다.

저도.. 도움이 필요한데... 유럽 너네들이 파 놓은 지하철 깊이만큼 내 어깨가 내려갈 거 같은데..


헝가리

나라 이동이 있는 날이다.

짐을 챙겨, 걸어서 역으로 가는 길.

계속 직진해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없고 지하를 통해서 내려가서 건너편으로 올라가야 했다.

캐리어를 끄는 친구는 저~ 옆에 있는 횡단보도를 이용해서 건너가자고 한다.

...

차마 너 혼자 그렇게 돌아서 와!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는

응.. 그래...

내 어깨가 아작 나는 쪽을 선택했다.


스위스

마테호른이 가까이 보이는 숙소로 예약을 했다.

숙소 예약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생각으로 신나게 가는데 웬걸..

눈앞에 오르막길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

순간 친구의 눈치가 보인 나는 일단 내가 먼저 올라가서 숙소 위치를 확인할 테니

천천히 올라오라고 하고 나는 온 힘을 다해 18킬로를 등에 메고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무거운 짐을 끌고 올라오는 친구는 더 힘들겠지..? 하며 뒤를 돌아보니

...

아이고 네 걱정이나 해라.

스위스 아저씨 두 분과 그 아저씨들의 손에 들려있는 친구의 무지개 벨트 캐리어.

대화를 하며 편하게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 이번에도 승자는 캐리어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성벽 입구 앞, 버스에서 내렸다.

구글 지도에 숙소 주소를 검색하고 방향을 보니...

진짜 이 방향이라고..? 제발 아니라고 해줘.

순간 내가 예약한 숙소가 천국인가?  천국의 계단처럼 보이는 건 나뿐인가.

이 배낭을 메고 저 계단을 다 올라갔다간

두브로브니크 풍경을 보기도 전에 진짜 천국을 갈 거 같은데.

그리고 이 계단 끝엔 숙소 뿐 만이 아니라 친구와 내 우정의 끝도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도 눈치를 보기 시작한 나는

내가 빨리 올라가서 숙소에 배낭을 놔두고 다시 내려와서 너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숙소에 도착해 가방을 놔둔 뒤, 주인 분이 설명을 해주려고 하길래

"아냐! 나 친구 데리러 가야 해!"

하고 헐레벌떡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나는 유럽 내 이동의 편리함을 택했지만

유럽 내 '나 혼자' 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고,

고생을 두배로 한 것이다.

괜히 나 혼자 빨리 가는 건 아닌가

각자 선택한 가방이었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미안함이 드는 것은 보너스.


물론 그 친구도 자신의 캐리어 때문에 무거운 배낭을 오래 메고있는 나를 보고 미안해 하지 않았을까.

몇 년이 지나서야 그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둘 다 배낭을 메고 가서 같이 빨리 이동을 하거나,

둘 다 캐리어를 끌고 가서 같이 도움을 받고 자기 짐 하나만 챙기면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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