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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티너디 Oct 13. 2021

박경리 문학관의 묘지에서

죽은 사람의 유산이 산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죽은 사람의 유산이 산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산책로를 걸어 올라가니 고요한 휴식이 담긴 인생의 종착역이 나를 맞이했다. 규칙적인 지빠귀 소리에 바스락거리는 건초소리를 얹어 이중주를 연주했다. 박경리 작가님의 묘지는 속세의 감각을 체로 거른 것처럼 투명했다. 나는 건초와 꽃들로 이뤄진 건조한 상념의 호수에 발을 담갔다.

 이 곳, 박경리 기념관은 문하생을 길러내는 세미나실과 학교로 문학의 토지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가지 못 했던 길을 갔고, 빛을 보지 못한 채 이 곳에 묻힌 수많은 문학 작품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의 모든 것을 벗어 던지며 무덤으로 향하게 만든 것은 뭐였는지. 욕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모이기 마련이다. 이성적인 시각에 의존하기보단 동물적인 후각처럼 자취를 따라가 서로를 잇는다. 모인 욕구가 합의를 이루면 서로를 붙잡는 원처럼 원동력을 가진다. 창조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면 길이 남는 유산이 되고, 파괴적이고 자학적인 방향으론 광기가 된다. 둘 다 별의 인력처럼 엮인 사람들의 인생마저 끌어당긴다.


 나는 상상력이 창조한 별의 무덤에 앉아 지구를 바라봤다. 속세의 중력을 거슬러 광년을 날아온 이 곳에 빛은 있었는지 물었다. 저 멀리 툭 하고 무언가 걸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속세의 체에 걸린 내 질문이 볼품없이 추락하는 소리일지 모른다. 아니면 이 곳에 자주 출몰한다는 멧돼지가 지나가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꿀빵을 마저 입안에 쑤셔 넣고 급하게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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