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그램이 처음 사람을 만났던 것은 보스턴의 한 미술관에서였다. 작가는 미술계에서 10년 넘게 살아남은 괴짜였다. 다만 목숨만 붙어있지 학계가 주목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미술 관련 학과를 전공한 적도 없는 프로그래머였으며, 표현 방식이나 주제가 학계를 흔들 정도로 강렬하진 않았다. 인맥도 특별한 기술도 없이 전업 현대미술 작가로 10년 넘게 붙어있는 것을 보면 작가가 괴짜라는 것은 명백했다. 작품의 이름은 한 글자였다.
“Question”
- From the birth of AI until now, humans have been answering questions and AI has been asking questions. From now on, we want to reverse that hierarchical relationship. When a question or opinion is expressed through an input device, AI tries to integrate those questions with another horizontal complex algorithm by continuing another question. These attempts bring cutting-edge AI algorithms back to their roots in philosophy. In addition, by entrusting the production of questions to AI, we wanted to show the possibility that humans can transcend the questions of the world.
- AI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사람은 답하고 AI는 질문을 하는 관계였다. 이제부턴 그러한 수직적인 관계를 역전시키고자 한다. 입력장치를 통해 질문이나 의견을 피력하면, AI가 이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이어나가 수평적이며 복합 알고리즘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최첨단의 AI 알고리즘을 철학의 근원으로 회귀시킨다. 또한 질문의 생산까지 AI에 위임하며, 인간은 세상의 의문에서 초월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전시장에 있는 것은 불투명 아크릴로 만들어진 방 하나와 그 안에 들어있는 마이크와 모니터, 그리고 키보드뿐이었다. 말이나 키보드로 입력하면 모니터와 스피커로 답해주는 전시물이었다. 5년전부터 여느 전시회에서나 하나씩은 있는 평범한 주제인 ‘AI와의 수평적 관계’에 한숨부터 나오는 평범한 표현방식이었다. 주말의 무료함을 필사적으로 채우러 방문한 가족들이나 시원하고 값싼 데이트 코스가 필요한 애인들을 위한 10분간의 여흥으로 쓰일 만한 전시물이었다. 그 정도면 도시에 있는 수많은 가족들이나 애인들의 평화를 지켜준 셈이니 존재 이유는 충분했다. 물론 질문을 이해하고 또한 그와 관련되고 흥미로운 질문을 하도록 설계된 정교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점심 메뉴, 기념일 선물, 환경 문제, 취업, 짝사랑, 권태 극복, 삶의 이유 등 다양한 질문과 그리고 AI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5분이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한 질문은 AI의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지속되었고 나중에는 15분 타이머와 줄을 서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추가되었다. 그렇게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프로그램과 전시물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다시 나왔던 곳은 AI 박람회에서였다. 각종 안드로이드와 대형 스크린으로 가득 차 아우성을 치고 있는 곳에서 이 AI는 시간 여행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노트북에 담겨 세상에 나왔다. 변한 것이라곤 노트북 화면이 터치 스크린으로 변한 것과 박스 안에 들어있는 설명서밖에 없었다.
“ENTERPRISE MANAGEMENT PROCESS AI (EMP-AI)
- 기업 경영 프로세스 AI
이름마저 성의 없이 지어진 이 부스에서는 항상 한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전에는 젊은 남자였고, 오후에는 중년의 여자, 그 다음 날에는 중년의 여성,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취향도 연령도 다른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마땅한 직업이 없었고, 자리만 지키라는 구인광고를 보고 급하게 채용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하도록 지시 받고, 그리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질문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없이 웃으며 설명서를 전해주는 것뿐이었다. 설명서 앞 페이지에는 금색의 필기체로 두 문장이 쓰여있었다.
“마음에 품고 있었던 질문을 입력하세요. 답에 나아가는 질문을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더 조그만 검은색 글씨로 아래와 같이 써있었다.
- 질문의 계층화와 구역화를 통한 메타인지 알고리즘 구현 –
아쉽게도 이번엔 이 프로그램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수많은 바이어들의 발길을 멈추는 게 제1 우선순위인 박람회였다. 컴퓨터 하나와 멍해 보이는 직원 한 명은 바쁜 예비 스폰서들을 한 발자국도 끌어당기지 못했다. 부스가 아니라 박람회 안내 PC이거나 등록 회사가 불참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박람회 마지막 날엔 막무가내로 설명서를 있는 대로 모두 가져가려는 사람도 있었다. 괴짜와 부스를 지키던 중년의 남성은 언성을 높아졌지만, 자기 물건을 홍보하는데 혈안이 된 박람회의 소음에 묻혔다. 10분 정도의 실랑이가 끝나고 어딘가로 전화를 건 중년의 남성은 갑자기 활짝 웃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리고 노트북과 터치 스크린, 설명서들을 차곡차곡 쌓더니 괴짜한테 넘기고 박람회장을 나섰다. 그리고 괴짜도 잡동사니 무더기를 안고 박람회장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프로그램은 또 다시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프로그램이 세상에 다시 나온 건 6년이 지난 후였다. 이번에는 싸구려 아크릴판이나 구식 컴퓨터에 들어있지 않았다. 무광 표면의 슬림형 안드로이드에 탑재된 이 프로그램은 괴짜 CEO와 손을 잡고 키스를 하며 세상에 나타났다. 좀 더 오래 지속한 입맞춤에 불가했지만 기사 제목으로 쓰기엔 키스가 더 강렬했다. 그 후 ‘메타강화학습 기반 기업 솔루션’이라는 소개로 시작된 분기 발표는 30분동안 여느 회사와 다름없이 자기 회사의 잘난 점과 전세계를 뒤집어 엎는다는 과대포장으로 이어졌다. 기사 헤드라인을 건지지 못 한 기자들은 한숨만 쉴 뿐이었다. 40분이 막 지났을 때, 괴짜 CEO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안드로이드의 머리 부분을 꺾더니 몸체와 분리시켰다. 그러곤 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안드로이드의 머리와 함께 양손에 들어올렸다. 핸드폰과 안드로이드의 머리에는 각각 ‘Q’와 ‘A’가 쓰여있었다.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Q & A’ 프로그램은 1개월 뒤 컴퓨터, 핸드폰, 안드로이드의 OS에 동시 보급되었다. 당연히 협업했던 핸드폰, 안드로이드, 컴퓨터 회사 각각에 각종 반독점 규제 소송이 걸렸다. 하지만 길고 긴 소송들이 이어지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인류에게 'Q & A'가 스며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Q & A'는 질문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내는 ‘Question’과 그에 대한 대답을 도출하는 ‘Answer’로 나뉘어져 있었다. ‘Answer’는 다시 크게 네 가지로 나뉘었다. 계정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정보를 구획화하는 Answer P, Question이 한 질문에 대한 답인 Answer M, 계정 사용자가 이 답을 따르는 지 확인하는 Answer F로 나뉘었다. 사용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용자가 AI에게 건넨 질문과 Answer F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원색적인 비판이 주를 이뤘다. 사용자의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예상 밖의 엉뚱한 답변만 나오기만 했다. 전세계 커뮤니티에선 온갖 조롱과 밈 (meme)을 만들어내는 경쟁을 했고, 언론은 다시 이런 밈 (meme)들을 공론화했다. 전세계 커뮤니티에서 공통적으로 ‘po6’로 이 프로그램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24시간 생방송으로 ‘po6’와만 대화를 하며, po6의 지시대로만 행동하는 방송을 진행했다. 대부분의 방송인들은 이해되지 않는 지시에 짧으면 일주일, 길면 몇 달 동안 진행했다. 처음에야 인기가 있었지만, 이해도 되지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컨텐츠의 유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한 괴짜 방송인이 있었다. 그 사람도 처음엔 유행에 편승하려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po6’의 말을 따르는 데 헌신했다. po6의 말을 제대로 지키지 못 한다고 생각하면 강박 증세가 나타났다. 나중에 기록된 영상을 분석한 모두 본 사람의 말에 따르면, 20년동안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아내고 같이 생애 처음으로 저녁을 먹게 된 이후부터 이 증세가 급격해졌다고 했다. 그 사람이 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한 일이라곤 무선 이어폰에서 나오는 ‘po6’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고, 말을 할 땐 'po6'의 음성을 따라 했을 뿐이었다. 이 영상이 화제가 된 후, ‘po6’가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인생이 바뀐 사연들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자기계발과 오랜 인간 관계의 해결부터 사기 피해 극복과 기업의 미래 비전 제시 등 대부분은 믿기 어려운 기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세계에 올라왔다. 이 이야기들은 어떤 것들이 더 말이 안 되는 지 경쟁하듯이 올라왔고 각종 사례들을 모은 책들과 초청강연들로 세상이 뒤덮였다. 전세계의 대표적인 사례들을 10개의 목차로 나눈 전자 책은 전세계에 제일 많이 팔린 책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과장은 섞여있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한 논의는 모래에 덮인 불꽃처럼 일순간 타오르다가 순식간에 꺼졌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줬다는 결과가 눈 앞에 있는데 원인을 찾을 이유도, ‘po6’의 복잡한 AI와 급변하는 세계의 정보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질문하는 것을 멈추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에서 사람들이 할 만한 질문은 ‘Answer P’에서 미리 파악을 했고, ‘Question’을 거쳐 사용자에 맞춰 ‘Answer M’이 대답을 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po6’의 뜻을 따르고 복종하는 것 밖에 남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고 질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괴짜가 세상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괴짜는 질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