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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티너디 Oct 24. 2021

자기검열을 벗어던진 우정편지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리뷰


남궁인과 이슬아, 두 작가가 함께 글을 냈다는 소식에 읽지도 않고 책을 고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이슬아 작가를 처음 만났던 곳은 대전 독립서점의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었습니다.

매일 새로운 글을, 게다가 에세이를, 세상에 공개했다는 말에 저는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구매했습니다.

글을 한 번이라도 써봤으면 이 시도 자체가 '미쳤다'라는 제 의견에 공감할 것입니다.  

이 책 안에 'ㄱㄴㄷㄹ...'만 가득 차 있어도, 저는 후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품 안에 책을 감싸 이틀에 걸쳐 읽은 후, 저는 책을 덮고 한 마디를 나지막이 내뱉었습니다.


'이 작가는 육각형의 작가다.'


능력치가 육각형이 아니라 글의 모난 정도가 육각형이었습니다.

글을 쓸 땐 항상 저는 왼손엔 키보드에 올리고 오른손엔 자기검열이라는 잭나이프를 쥡니다.

이 글이 세상에 나왔을 때 더 대중적이고, 남들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마음에, 모서리가 튀어나오면 실시간으로 베어냅니다.

Delete 키로 베어낸 것들은 글과 관련된 실제 인물일 때도 있고, 표현 방법일 때도 있으며, 글 전체의 주제일 때도 있습니다.  

손끝에서 모서리가 있는 글이 나올 땐 자존심, 허영심, 두려움 등 제 자아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혈관들에 무자비하게 상처를 내며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숨김없이 각이 살아있는, 아니면 그런 척을 했더라고 그렇게 느껴지는, 글을 쓰는 능력을 동경했습니다.

재능과 능력을 탐닉하며 추적하고 맹렬히 뒤쫓던, 몇 년째 하릴없이 늘어져있던, 똥개가 오랜만에 기뻐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편지'와 '공개'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편지에는 글의 서두에서 독자를 한 사람으로, 즉 '받는이'로 지정합니다.

결국 편지는 시작부터 '유일한 독자'를 위한 글이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렇기에 주제가 이리저리 벗어나도, 깊은 슬픔을 꺼내도, 비속어나 신조어를 써도, 무례한 표현이 들어가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유일한 독자'는 그 정도는 이해할 것이라는 상호 간의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공개되면...'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자기검열의 편집을 거치고 불특정 다수를 위한 에세이로 교정됩니다.

마치 청소년을 벗어나 사회를 마주하는 성인이 되는 것처럼 소년미를 잃어버리고 격식을 갖춥니다.


아마도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두 작가 모두 편지의 내밀함과 출판의 공공성에 대해 생각의 줄타기를 여러 번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두 작가와 편집자 모두 그런 면에서 능숙하기 때문에 다행히 편지의 맛, 즉 소년미를 잃지 않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풍부하게 질문하는 글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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