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정착기)2. 몇 해를 더 견뎌내는 것

분노는 적응을 적응은 나태를 나태는 포기를

by 김깜깜

그렇게 나는 코로나에 발이 묶인 채 한국에 몇 해를 더 머물렀다. 두 어번의 마른 겨울을 더 겪었고 두어 번의 사랑스럽고 촉촉한 여름을 버텨냈다. 부모님은 여전히 '평범한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서 찬사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 찬사가 어찌나 벅차던지 결국 서울로 피신했다. 여름을 사랑하는 내게 따듯한 남쪽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찬사는 매일을 겨울로 만들었기에 서울로 가야 할 혹은 척척 하고 붙었다.


나는 그곳에서 부모님의 찬사처럼 평범하지만 아름답지 않은 삶을 살았다. 거의 다 망해가는 교육 플랫폼 회사의 기자로 일하며 잡지와 신문을 창간했다. 명함에는 '기자'라고 그럴싸한 호가 붙었지만 나는 주로 회사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는 마케팅 일도 했고 창문을 다 열고 달려도 담배 쩐 내가 사라지지 않는 회사 차를 타고 잡심부름도 했다. 그럴싸한 글을 쓰기도 했고 꽤 유명한 사람들과 인터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부업으로 하는 액세서리 판매페이지를 수정하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남들은 흔히 말하는 '월급 루팡'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겠지만 내가 잡아 온 일이 진전되는 일도, 내가 쓴 글이 실리는 일도, 내가 낸 제안서가 통과되는 일도 그 회사에서는 없었다. 딱히 비전을 바라고 회사에 들어온 것도 아니건만 나는 어쩐지 이곳에서는 비전이 없다는 그럴싸한 변명을 퇴사 사유라고 공표하고 퇴사를 했다.


그 뒤 아주 작은 쇼핑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다행히 이전에 쇼핑몰에서 꽤 긴 시간 MD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관련 회사에 들어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이 끝나면 바이럴 글을 쓰거나 과거 방송작가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프리뷰 일을 하기도 했다. 돈은 되지 않았지만 반지하방 월세를 내고 일주일에 두어 번은 밥을 시켜 먹는 사치도 부릴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내가 일하던 쇼핑몰 사장이 책을 한 권 줬다. 서른이 훌쩍 넘어 여전히 아르바이트만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불쌍했는지 혹은 한심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사장은 아마 내게 행운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건 안 읽었다.


나는 그렇게 겨울을 버텨내고 살아냈다. 그러다 문득 또 궁금해졌다. 여름의 나라가. 그래서 가기로 했다. 태국으로. 나는 충동적임과 동시에 계획적이기 때문에 충동을 빠르게 계획으로 바꿨다. 이 책을 받은 후로부터 얼마 후 나는 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몇 개월 전 알게 된 친구와 함께였다.


태국으로 가는 날 이때도 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들이 배웅을 나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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