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정착기) 5. 이방인의 이방인

자격지심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왔다가 가는 걸까

by 김깜깜

공항을 겨우 빠져나오면서(물론 공항에서도 짐을 잃어버리는 등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갈 길이 멀기에 자주 일어나는 해프닝은 생략한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다. 물론 스스로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호주에서 3년을 살았다. 혼자 음식을 주문할 수 있고, 가끔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웃고 떠들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안일한 2년과 태국에서 태국식 영어에 금세 익숙해져 버린 나는 영어 까막눈이 되어 '핫 초콜릿' 하나 주문하지 못하고 겨울에 식은땀을 절절 흘리는 것이다.


나는 문득 이 세상 그 어느 사람보다 내가 영어를 제일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런 불안은 금세 알고 있는 영어 단어도 알차게 지웠다. 머물렀던 백팩커스에서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친구들이 한데 어울려 놀았다. 그들은 혼자 멍하니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나에게 함께하길 원했고 나는 또 이방인이 되어 그들이 웃을 때 웃었고 그들이 아쉬워할 때 아쉬워했다. 무슨 대화가 오고 가는지는 대충 눈치로 알아야 했다.

IMG_3372.JPEG 나는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본 적도 없는 반지의 제왕 관련 장소를 거금을 들여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에 반지의 제왕을 다 봤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이맘때쯤 일기에는 '이곳에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웰링턴은 춥고 웰링턴은 가혹하다' 뭐 그런 말을 적어두기도 했었다. 우스운 것은 자격지심이 과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결과를 질투할 뿐, 과정은 질투해 본 적 없는 결과중심적인 게으른 인간이었기에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백팩커스에서의 2주는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어쩌면 꼭 필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영어에 대한 무리한 자신감을 빠르게 잃을 수 있었다. 대부분은 이러한 시간을 갖게 되면 '역시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겠어'라는 결론을 내고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무엇이라고 했겠지만은 나는 '영어 공부는 글러 먹었으니 당당하게 행동하기라도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결론을 냈고 그 이후의 노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바람이 치열하게 불고 영어가 부진하게 느는 웰링턴을 떠나 나는 뉴질랜드 남섬으로 향했다. 이때도 나는 여전히 '남쪽은 따듯하고 북쪽은 춥다'는 멍청한 한국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인간인지라 남쪽으로 가면 그저 따듯할 줄 알았다. 뉴질랜드는 남쪽으로 갈수록 남극과 가까워지기 때문에 남섬이 북섬에 비해 더 춥다는 것은 남섬에 정착한 뒤에도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IMG_3352.JPEG 나를 위로하는 것은 오로지 소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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