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것 그 이상이었다.
처음 구한 일은 와이너리였다. 어디에선가 봤던 글에서 '와이너리 보틀링은 개꿀이에요'라는 문구를 보고 홀린 듯이 시작했던 일은 개꿀은커녕 개였다. 아마 그 글을 작성한 사람은 대부분이 자동화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일을 시작한 이후에 분노에 차 그 글을 다시 찾아봤을 때, 내가 일하던 곳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공장이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이 자동화된 곳에서 사람의 손이 꼭 닿아야 하는 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일한 곳은 직원 수가 10명도 채 되지 않는 매우 작은 와이너리였고 대부분의 공정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했다. 나는 따듯한 마음과 동정심, 측은함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냉철하기만 하고 튼튼하기까지 한 컨베이어 벨트와의 싸움에서 이길 도리가 없었다.
컨베이어벨트는 쉴 새 없이 돌아갔고 컨베이어벨트만큼 빡빡했던 매니저는 혹여 컨베이어 벨트가 잠시 파업을 선언할 때도 우리를 멈추게 만들지는 않았다. 너는 하루에 수 천병이 넘는 와인병, 그것도 와인병 중에서도 가장 무겁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샴페인, 스파클링 와인을 옮겨야 했다.
숙성된 스파클링 와인은 뚜껑을 따고 코르크 마개를 씌우는 것, 코르크 마개를 고정하는 뮤즈렛을 씌우는 것, 라벨을 붙이는 것은 모두 기계의 몫이었지만 그 외는 나의 몫이었다. 숙성되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샴페인을 나무 상자에서 캐비닛으로 옮긴다.
이때 샴페인을 흔들면 안 된다. 뚜껑끼리 부딪히게 해서도 안된다. 샴페인을 흔들면 부유물이 섞이기 때문이고, 뚜껑끼리 부딪히거나 병끼리 강한 충격을 받으면 숙성된 샴페인이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샴페인이 터지며 조각이 나를 강타라도 하는 탓에 멍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한 손으로 병의 바닥 부분을 잡고 눕혀진 상태에서 그대로 캐비닛에 옮기는 작업을 하루 종일, 또는 반나절을 한다. 한 캐비닛에 담기는 샴페인의 수는 200개 정도였다. 하루에 12-15개 정도는 캐비닛을 가득 채워야 했으니 손목이 남아날리는 없었다.
이것만 했느냐? 그럴 리가 없다. 나는 모든 일을 다 하는 멀티태스커였다. 그러니까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아빠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1개월 정도 이후에는 도맡아서 하는 일이 생겼다. 다행히 손이 빠르고 꼼꼼한 성격이었던지라 급속 냉동 파트로 들어가서 그만두기 전까지는 서브로 하는 다른 일을 제외하고는 그 일을 도맡아 했다.
샴페인의 부유물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샴페인이 든 캐비닛을 기계로 돌려서 뚜껑 부분이 바닥으로 가게 한동안 둔다. 그렇게 되면 부유물은 뚜껑 쪽으로 전부 쏠리게 되는데 그 뚜껑 부분을 급속 냉동하는 기계에 두면 빠르게 냉동이 되고 그 기계를 돌려가며 머리 부분이 냉동이 되면 그것을 컨베이어벨트에 올리면 기계가 뚜껑을 딴다. 그곳에 코르크와 뮤즈렛을 채우고 라벨링을 한다.
라벨링을 아직 할 필요가 없다면 일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는데 바로 코르크를 씌운 샴페인을 다시 나무상자로 옮겨 담는 것이다. 나중에 라벨링을 해야 될 상황에 다시 나무 상자에서 샴페인을 꺼내 컨베이어 벨트에 올린다. 라벨링이 완료된 샴페인은 박스로 포장된다. 포장된 박스는 팔레트에 차곡차곡 쌓고 랩핑을 한다. 여기에서 내가 한 일은 전부 다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메인으로 한 일은 있지만 그래도 대체로 모든 일을 다했다.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남자들이 주로 하는 파트로 넘어간 날은 진심으로 나의 나약함을 깨달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