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정착기) 9. 나이가 많다는 변명으로

하지만 실제로도 나이가 많기는 하다.

by 김깜깜

나는 더는 어리지 않았다. 그것을 깨닫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하면 역시 체력을 쓸 수 있는 만큼 써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체력만큼은 좋았다. 그것은 아마 미래의 체력을 긁어왔기 때문은 아닐까. 딱 한 번 그 업무에 익숙한 사람이나 남자들이 많이 했던 체력을 요하는 직무를 하게 됐을 때,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나는 고개를 가슴팍에 파묻고 그저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벨트를 야속하게 여기며 샴페인이 가득 담긴 병을 수 없이 옮겼을 뿐이다.


멈추지 않는 그것.


내 상태가 심각한 것을 눈치챈 직원 중 한 명이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어쩐지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지만 아마 눈가는 발갛게 달아올랐으리라. 나를 빤히 보던 직원은 '너 아무래도 쉬어야 할 것 같아'라고 했다. 나는 지옥에서 온 원리원칙주의자로서 허용된 시간 외에 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렇게 쉰다면 내 성격상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게 뻔하기에 내가 쉬는 것도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쉬는 시간을 당겨서 쉰다고 생각할게'라고 했더니 직원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야. 원하는 만큼 쉬고 와. 이건 쉬는 시간으로 안칠 거야. 충분히 쉬고 와'라고 했다. 지옥에서도 쫓아낼 원리원칙주의자인 나라면 괜찮다고 하고 계속 일을 했겠지만 정말 너무 힘들었다.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쏟아지는 병들에게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무슨 짓이 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왔다.

꿀맛같은 휴식이었다.

작업장 안은 먼지 냄새가 가득했고 습했으며 약간 춥기까지 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밖은 이제 막 여름이 오려는 듯 작열하는 태양이 몸을 따듯하게 감쌌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었다. 나는 그네의자에 앉아 멀거니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시발 그만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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