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정착기) 10. 시련은 늘 예고를 하지 않고

나에게는 시련이라는 오랜 벗이 있다.

by 김깜깜

낮에 맥주를 한 잔 했다. 날이 좋아서이기도 했고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야외 테이블에서 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 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이후 집에 돌아온 나는 같이 사는 플랫메이트의 제안으로 술을 한 잔 더 하러 늦은 밤 발길을 바깥으로 돌렸다.


이때는 전에 없이 즐거웠다.

사실 3일 정도 전부터 발등이 아팠다. 금요일에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아마 신발이 낡아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 푹신한 깔창을 새로 샀더랬다. 발등의 통증은 거슬릴 정도였지 심각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피로골절이겠거니 하고 잊고 있다가 밤 외출을 마치고 테이블에 일어서는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갑작스럽게 몰려드는 강렬한 통증은 걷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친구와 함께였기 때문에 내색하지 않고 괜찮은데 좀 아프다며 절뚝거리며 10분쯤 걸었으려나. 이제는 식은땀까지 나기 시작했다.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 보니 발이 발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손을 대어보니 후끈했고 염증이 생긴 것 같았다. 다시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고 걸어보려 했지만 통증이 심해 발을 땅에 댈 수조차 없었다.


아드리안의 등은 불편했다. 미안

친구는 거리낌 없이 나를 업었고 그렇게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발이 괜찮아졌다면 너무 아름다운 해피엔딩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인생에 해피엔딩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내 삶의 전체는 아직 오픈엔딩이지만 하나하나 끄집어 보면 새드엔딩이 더 많았고 이 일 또한 새드엔딩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니 그날 새벽 나는 비명을 지르며 깼다. 통증 때문이었다.


발은 어제보다 크게 더 부풀어있다던가 더 발갛게 변했다던가 그런 건 없었다. 단지 통증의 강도는 5에서 9로 변했다. 눈물이 절로 나왔다. 잠도 들지 못한 채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고 뒤졌다. 인터넷에 증상을 검색해 보고 병원에 안 가는 사람들을 '무지하다'라고 욕했던 나는 해외에 나와 돈 없는 이방인이 되면서 그렇게 '무지하다'라고 욕했던 사람처럼 살게 되었다.

심각해보이지 않지만 심각했다.


인터넷에서는 무슨 증상이든 크게 부풀려 말하기 마련이다.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가 만약 그걸 맹신한 사람이 '괜찮다면서요!'하고 시비를 걸 일을 만들면 안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심각하다고 말하는 건 무시하고 가장 가벼운 질병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항상 최악의 생각을 하는 성미를 지녔지만 그 어딘가에는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절대 '통풍'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리 없었다.

병원을 왔다. 오른쪽 발이 부은 게 보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