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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민 Jan 08. 2022

막내작가 두 번째 이야기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지, 처음치고는 잘했네

10시 30분 출근을 했다. 오늘도 역시나 다들 안 나오는 건가... 시간이 지나고 서브작가님이 나오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일찍 나왔네요?^^"

"넵"

정적이 흐르고 서브작가님은 나에게 커피 한 잔 하자고 말씀하신 뒤  커피를 사러 나가셨다. 커피를 한잔 주시며 나에게 힘들죠?라고 물었다. 사실 힘든 일은 없었다. 나 자신이 병신 같았을 뿐.. 막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앉아서 자료를 찾고 붙여서 넣고 하면 되는 일인데 힘들게 뭐가 있는가..

"사실.. 힘든 건 없는데... 정말 죄송해요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고맙게도 서브작가님은 자기가 해왔던 자료조사를 보내주셨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보면서 하면 된다고


1. 맨 위 상단에는 주제를 쓰고 날짜를 써줘라.

그냥 기사만 붙여서 내용만 붙여서 하면 이게 어떤 내용에 자료조사인지 모르니까 큰 틀을 써주고 그 밑에 내용을 쓰면 좋다.


2. 글씨체, 글자는 통일

인터넷에서 스크랩해서 복사 붙여 넣기 하는 건 알겠는데 이왕 이면 보기 편하게 글씨체랑 글씨 크기는 통일해 달라고 하셨다. 보기 편하도록


3. 내용이 끝나면 선을 그어줄 것

자료조사 내용이 끝나면 구분선을 지어서 다음 자료조사와 헷갈리지 않게 해 달라


사실 더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저거만 해도 일단은 적어도 보기 편한 상태로 자신이 볼 수 있으니 저것들을 잘 지켜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그리고 처음치고는 잘했어요^^"


처음치고는 잘했다. 어찌 보면 나쁜 말은 아니었다. 서브작가님의 말투나, 표정, 행동을 보면 그것은 진심으로 처음치고는 잘했고 처음 해보는 일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자신도 겪었기에 더군다나 카톡으로만 전달받은 상태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나로선 진짜 최선을 다했던 것을 알아주셨던 걸까? 첫 번째 이야기에서 말한 나 병신인가 봐..라는 말이 조금씩 잊힐 것만 같았다. 첫 번째 자료조사를 넘겼더니 다음엔 이 주제로 자료를 찾아달라고 하셨다. 두 번째 자료조사를 할 때는 선배가 말한 것을 신경 써서 했다. 맨 위 상단 주제 쓰기, 글씨체, 글자크기 통일하기, 내용이 끝나면 선을 그어서 구분하기 쉽게 해 주기... 그렇게 모으는 와중에도 모르는 것이 계속 생겼다. 작가님 이것도 해야 하나요? 이거는요? 이건 어떻게 하나요? 이거는 어떤 식으로..? 질문, 또 질문 계속 계속 질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짜증 날 법도 한데 다 답변해주셨다. 단 한 개 질문도 빠짐없이.... 사실 살아오면서 내가 느낀 거는 모르는데 열심히만 하는 것은 진짜 바보 머저리 같은 짓이다. 물론 열정은 있어 보이지만 일에 별로 도움은 안된다.. 그저 그 모습이 기특해서 알려주고 싶을 뿐.. 내가 딱 그 모습 같았다. 처음치고는 잘했네,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지란 말은 첫 번째 자료조사를 넘길 때 듣고 그만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 두 번째 자료조사를 넘길 때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저번 보단 나아졌네요. 저 말을 계속 듣다 보니까 나 스스로 또

자괴감에 빠졌다. 자존감이 떨어졌다. 자존심이 상했다. 더 잘하고 싶은데 왜 뜻대로 되지 않는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 이주만에 느낀 감정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작가 일을 해본 친구들에게 일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내가 첫 번째로 할 일은 버티는 일이라고 했다. 난 이제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았다. 힘든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닌 것을 저렇게 낑낑거리며 질문할 정도로 멍청한가 나는... 자괴감에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격지심에 빠졌다. 때려치울까 라는 말을 이 주 차 때부터 카톡방에서 일삼았다. 나 병신인가 봐 처음치곤 잘했다는데 이거 맞냐? 때려치울래 그만할래 아 못해먹겠다.. 쉬지 않고 말했다 그러다 문득 면접날이 떠올랐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 잘할 수 있겠어요?"

"한번 해보고 그만두기에는 저도 나이가 있어서 신중히 일을 시작하고 싶어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시작하면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열심히만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열심히 잘하는 게 중요하지만 잘하려면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어요? 열심히 잘해보겠습니다."


내가 내입으로 뱉은 말이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있을 수 있지만) 다시 심기일전했다.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지 라는 말을 다른 사람한테 들었을 때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알고 보면 상대방 의도는 그런 뜻이 전혀 아니었는데 진짜 처음치고는 잘했고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는 자기들도 막내시절에 다 겪어본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귀찮게 물어보고 계속 실수해도 자신들도 다 겪었기 때문에 옛 생각이 나서 나에게 더욱더 포기하지 말라고 저런 말을 해준 거일 수도 있다. (혹시나 내가 못 버티고 도망갈까 봐 그러셨나..?)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지. 다른 사람이 나한테 말하기 전에 나 스스로가 나한테 말했다.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어 이제부터 배우고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다 이 단계를 거쳐갔고 나도 거쳐가는 단계일 뿐이야 할 수 있어'


그렇게 다시 열심히 일을 배워보자 해보자 라는 마음가짐을 가졌다. 그리고 일주일도 안돼서 또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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