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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현 May 31. 2021

# 12. 폭력의 수용과 삶의 변화

<장자풀이>와 폭력 전후의 삶

"어허어, 이 길목으로 가야 하는데 배고 고파 못 가겠다."
또 한 사자가 하는 말이,
"이럴 때 밥 한 그릇, 물 한 그릇만 놓아주면 사마 장자 지은 죄를 면해줄 수 있을 텐데."
또 한 사자 하는 말이
"이 놈아, 밤 말은 쥐가 듣고 낮 말은 새가 듣는다. 어서 바삐 쫓아가자.""

 박소녀 구연, 조사, <장자풀이>(1970)



폭력을 몰고 오는 타자를 '환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나의 환대가 받아들여질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으며, 막상 타자가 환대에 응했다고 하더라도 나의 체제 안에 그 타자가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 체제의 안정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손님굿>에서처럼 환대받은 타자라도 폭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손님 신들은 정구질을 치며 천연두를 뿌리고 다니지요. 다만, 정구질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을 폭력에 부여하기 시작합니다. 해롭게만 보이던 폭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로운 방향으로 폭력을 이끄는 전략이 '환대'인 셈입니다.


물론, 환대를 받아들이지 않은 타자도 있습니다. 환대에는 응답이 필요합니다. 타자가 나의 환대에 응답하지 않으면 환대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즉, 환대는 상호 인정 속에서만 가능한 대안인 셈입니다. 그래서 환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조율'의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마누라본풀이>에서 명진국 할머니는 대별상을 처음 조우했을 때 자신을 낮추고 환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결국 자신을 무시하는 대별상을 조율하기로 결심하죠. 그래서 대별상이 구축하고자 한 질병의 체제에 예속되지 않고 자신의 체제인 '잉태-해산'의 체제로 대별상을 끌어들입니다. '잉태-해산'의 체제에서 명진국 할머니는 대별상에게 손쉽게 승리하게 되고, 질병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까지 획득하게 됩니다. 폭력을 몰고 오는 타자를 자신의 체제에 위치시키고 조율에 성공함으로써 체제의 확장을 가능케 했던 것입니다.


환대나 조율은 모두 폭력 또는 폭력을 행사하는 타자를 자신의 체제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폭력과 함께 살아가기'의 서로 다른 두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대와 조율의 시작은 폭력을 피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폭력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최악의 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왔을 때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화 중 <장자풀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장자풀이>는 죽음이라는 폭력이 다가왔을 때 환대와 조율의 방식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폭력 이후의 삶을 새롭게 도모하는 신화입니다. 죽을 위기에서 목숨을 유지했다고 해서 연명형(延命型) 신화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장자풀이>는 주로 호남지방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죽음과 관련된 의례인 전라도의 '씻김굿'에서 연행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넋을 '씻기는' 죽음의 의례에서 삶을 갈구하는 신화가 불린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씻김굿에서는 '서사'의 형태를 갖춘 무가(巫歌)가 많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장자풀이>는 그런 환경 속에서 전라도의 대표적인 신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각편(version)이 현재까지 조사‧발굴되어 남아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박소녀 무당의 <장자풀이>를 대상으로 삼아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장자는 잘살고, 어떤 장자는 못 산다.

우마 장자는 가난해서 한 끼 벌어 한 끼 먹는 신세였다. 하지만 우마 장자는 동냥까지 하면서 선조(先祖)들을 잘 모시며 봉제사(奉祭祀)를 부족함 없이 올렸다. 그리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친구 간에 우애 있고, 친척과 화목하게 지내며, 동네 사람들에게 많은 덕을 쌓았다.

사마 장자는 부모에게 불효하고, 친구 간에 화목하지 못하고, 동네방네 인심이 없었다. 사마 장자의 집에서는 나락이 썩어서 두엄이 되고, 쌀이 썩어서 재가 되고, 돈과 옷이 썩어서 거름이 되었다. 사마 장자는 이자놀이를 하면서 돈을 불려 갔고, 사람들에게 심술을 하도 부려서 죄가 깊었다.

사마 장자의 선조들은 사마 장자가 자신들을 잘 모시지 않자 열시왕을 찾아갔다. 사마 장자는 큰 부자가 되었는데 선조들을 잘 모시지 않아서, 사마 장자의 선조들은 배고프고 목이 마르고 입을 옷이 없었다. 그 사정을 들은 열시왕은 중 한 명과 삼 사자(강림도령, 해원맥, 이덕춘)를 불렀다. 그리고 우선 중을 먼저 사마 장자에게 보냈다.

중은 사마 장자의 집에 가서 시주를 청했다. 사마 장자는 화를 내며 하인을 불러 매타작을 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두엄을 바리때에 담아주고 쫓아 보냈다. 사마 장자의 며느리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떠나는 중을 붙잡고 명주와 쌀을 챙겨주었다. 중은 사마 장자의 집에도 '사람'이 있다며, 원래는 사마 장자에게 죄를 물어, 사흘 후에 집은 소(沼)로 만들어버리고 사마 장자를 잡아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사마 장자의 며느리에게 자기를 따라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사마 장자의 며느리는 그런 말은 당치도 않다고 하며 사마 장자를 위해 축원이나 해달라고 했다.

저승으로 돌아간 중은 열시왕에게 사마 장자의 죄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열시왕은 사마 장자를 저승으로 잡아 오기 전에 현몽(現夢)을 먼저 주라고 했다. 사마 장자는 그날 밤 괴이한 꿈을 꾸었다. 다른 가족들은 벼슬할 꿈이다, 진사 급제할 꿈이다, 이바지를 얻을 꿈이다 등 길몽으로 좋게 해석했지만, 며느리만은 흉몽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가진 재산을 조상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조언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마 장자는 바로 며느리를 친정으로 쫓아냈다.

사마 장자의 며느리는 친정으로 가다가 딱 사흘만 상황을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흘도 되기 전에 사마 장자는 병에 걸렸다. 죽을 듯이 아프자 사마 장자는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라고 했다. 며느리는 사마 장자에게 '소강절'에게 문복(問卜)을 해보자고 말했다. 사마 장자는 쌀을 챙겨서 소강절을 찾아갔다.

소강절이 문복을 하고 난 후, 사마 장자네 집에 큰일이 닥쳤다고 얘기했다. 사마 장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집 창고를 열어 마을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물 좋고 산 좋고 정자 좋은 곳에 가서 제상을 차리고 풍악을 울리라고 했다. 그리고 누가 와서 이게 웬 음식이냐고 묻거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차린 것이라고 답하라고 했다. 그래야만 사마 장자가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마 장자는 바로 창고를 열어 마을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며느리가 직접 나서서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먹을 것을 분배하자 사마 장자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물 좋고 산 좋고 정자 좋은 곳에 가서 푸짐하게 음식상을 차리고 밤낮없이 굿을 올렸다.

한편 저승에서 삼 사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저승사자 해원맥은 쇠 방망이 들쳐 메고 이승 사자 이덕춘은 쇠줄을 들고, 강림도령은 쇠 방망이 메고 사마 장자를 잡으러 이승으로 오고 있었다. 그런데 삼 사자는 배고픔과 갈증으로 지쳐있었다. 그때 어디에선가 굿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가보니 푸짐하게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삼 사자가 이게 웬 음식이냐고 묻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차린 것이라는 답이 왔다. 삼 사자는 그 말을 듣고 차려진 음식을 모두 먹었다.

삼 사자가 음식을 다 먹자 사마 장자가 삼 사자에게 사실 이 음식은 자신이 차린 것이라고 말했다. 삼 사자는 그 말을 듣고 난감해했다. 사마 장자의 음식을 얻어먹었으니 함부로 저승에 잡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마 장자에게 마을에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사람이 없냐고 물었다. 사마 장자는 '우마 장자'라고 답했다. 

삼 사자가 우마 장자의 집에 가서 이름을 세 번 부르고 우마 장자를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우마 장자의 이름을 한 번 부르니 우마 장자의 집 지신(地神)이 나타나 삼 사자를 가로막았고, 두 번 부르니 문간을 지키던 대장 신과 삽살개가 가로막았다. 삼 사자는 우마 장자를 잡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할 수 없이 사마 장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사마 장자의 며느리는 삼 사자를 맞이하며, 우마 장자는 인심이 두터워서 선조들을 잘 받들고, 지신도 잘 받들고, 성주도 잘 받드니 쉽게 우마 장자네 집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새로운 제안을 했다. 바로 대신(代身)을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삼 사자가 대신도 괜찮다고 얘기하자, 며느리는 사마 장자가 타고 다니던 백마를 잡아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백마에게 사마 장자의 갓을 씌우고 옷을 입혀서 삼 사자와 함께 저승으로 보냈다.

저승 어귀에 최 판관이 서 있었다. 최 판관이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묻자 삼 사자는 사마 장자가 죄를 많이 지어 말로 변했길래 끌고 오다가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답했다. 열시왕은 말의 목에 큰 칼을 씌우고, 손에는 고랑을 채우고, 발에는 족쇄를 걸고, 머리에는 철갑을 씌우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사마 장자의 대신으로 온 말은 온갖 고초를 겪게 되었다.

말은 화가 나서 사마 장자의 꿈에 나타나 슬피 울었다. 사마 장자가 계속 꿈자리가 사납고 잠을 잘 못 자게 되자 다시 소강절을 찾아갔다. 소강절은 세상사 은인이 원수가 되고 원수가 은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하며, 말을 위해 씻김굿을 올려주라고 했다. 씻김굿을 올리면 말이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어서 오히려 사마 장자에게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사마 장자는 바로 말을 위해 씻김굿을 올렸다. 첫날에 말의 머리에서 철갑이 벗겨지고, 둘째 날에 말의 목에서 큰 칼이 벗겨지고, 셋째 날에 금사망이 벗겨지고, 넷째 날에 손에 찬 고랑이 풀어지고, 다섯 번째 날에 발에 찬 족쇄가 벗겨졌다.

씻김굿이 끝나자 말은 사람이 되었고, 사마 장자를 원수 같이 여기던 말은 사마 장자를 은인으로 여기게 되었다.


사마 장자는 <흥부전>의 놀부와 비슷한 캐릭터입니다. 많은 부(富)를 축적했지만, 그 부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쓰지는 않죠. 오히려 심술을 부리며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마 장자의 태도는 조상들을 대할 때도 변하지 않습니다. 제사상을 차려주지 않으니 사마 장자의 조상들도 굶어 죽기에 이릅니다. 조상들에게 때마다 제사를 올려 음식을 바치는 것을 흠향(歆饗)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순한 접대와 다릅니다. 조상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면 조상들은 그만큼 자신들의 후손을 위해 공덕을 베풉니다. 조상들을 위해 올린 술을 후손들이 나누어 먹는 것을 음복(飮福)이라고 하는데, 복을 마신다는 뜻이죠? 결국 제사를 올리는 것은 조상들을 위한 행위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복을 받기 위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사마 장자의 조상들은 굶어 죽기 전에 열시왕을 찾아가서 사마 장자를 혼내달라고 호소합니다. 열시왕은 어느 한쪽의 얘기만 들을 수 없어 '중'을 내려보냅니다. 중은 사마 장자에게 시주를 청했다가 오히려 봉변만 당하고, 사마 장자의 집을 소(沼)로 만들어버리려고 합니다. 다행히 '며느리'가 등장해서 대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겨주어서 사마 장자의 가족 모두가 몰살되는 위기에서는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마 장자는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열시왕이 사마 장자를 잡아오라며 세 명의 저승사자를 이승으로 내려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마 장자는 꿈을 꿉니다. 며느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꿈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죽음'이라는 폭력이 그렇습니다. 죽음은 불현듯 찾아오고 보통 그 죽음의 징조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린다고 해도 인정하지 못하죠. 그래서 사마 장자의 죽을 운명을 알려주는 며느리만 오히려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며느리만 죽음을 몰고 오는 존재를 환대하고 계속해서 죽음이라는 폭력의 위기에 대해 언급하지만, 사마 장자는 귀 기울여 듣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사마 장자가 병에 걸려 상당한 고통을 느꼈을 때에야 며느리를 다시 집으로 불러들입니다.


며느리는 사마 장자를 데리고 점복을 치는 '소강절'에게 갑니다. '점복(占卜)'은 점술과 복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미래에 대한 어떤 징조를 읽어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을 친 소강절은 사마 장자에게 지시 사항을 내립니다. 창고를 열어 마을 사람들에게 돈과 양식을 나누어주라고 한 것이죠. 이 장면은 죽음이라는 폭력이 다가왔을 때 이를 인정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삶의 체제를 바꿀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인색하기로 소문난 사마 장자는 고리대금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착취하며 자신의 재산만 증식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랬던 사마 장자가 자신이 축적한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강절은 사마 장자에게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서 '굿'을 하라고도 지시합니다. 굿은 인간이 신과 소통하기 위해 마련한 제의적 수단입니다. 그동안 조상들도, 주변 사람들도 신경 쓰지 않았던 사마 장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에게 베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모든 타자들에 대한 사마 장자의 환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명의 저승사자가 사마 장자가 차린 제사상을 받아먹음으로써, 사마 장자를 함부로 데려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저승사자들은 사마 장자에게 속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맥락이든 저승사자는 사마 장자의 환대를 받아들이게 된 꼴입니다. 어쩔 수 없이 사마 장자 대신 우마 장자를 데려가려고 하지만, 우마 장자는 사마 장자와 달리 처음부터 부모, 친구, 마을 사람들, 조상 등 타인을 환대할 줄 아는 인물이었죠. 그래서 우마 장자의 집을 지키고 있는 여러 신들이 저승사자의 접근을 막습니다. 사마 장자의 환대를 받아들인 저승사자들만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마 장자가 타고 다니던 백마가 대신 잡혀 갑니다. 말 그대로 백마가 사마 장자의 대신(代身)이 된 것입니다. 사마 장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백마가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이지요. 폭력의 방향을 백마에게로 돌렸으니 사마 장자는 안전해질 수 있겠지만, 문제는 희생양이 된 백마입니다. 저승에 끌려간 백마는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며 사마 장자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합니다. 백마라는 희생양을 내세웠지만 여전히 죽음의 전염성은 끝나지 않고 다시 사마 장자에게로 돌아오게 된 셈입니다. 


그때 소강절이 사마 장자에게 '말 씻김굿'을 올리라고 합니다. 씻김굿을 통해 백마가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면 '원수가 은인이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은인이 된다는 것은 폭력의 부정(不淨)을 씻어내고 긍정적인 상황으로 전환시킨다는 뜻일 겁니다. 사마 장자는 백마를 위해서 말 씻김굿을 정성을 다해 올리고 백마의 원한을 씻어줍니다. 원한이 사라진 이상 죽음의 전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마 장자는 마침내 죽음이라는 폭력에서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사마 장자의 연명담(延命談)은 폭력을 마주했을 때 폭력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와 그 폭력을 몰고 오는 타자를 환대해야 하는 당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폭력을 거부하고 타자를 환대하지 않았던 사마 장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조상→중→저승사자'로 갈수록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폭력을 인정하고 삶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때까지 살아왔던 삶의 태도와 체제를 완전히 바꿀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 변화가 무조건 부정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 변화가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환대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 명의 저승사자를 환대했을 때, 죽음을 가져오는 무서운 타자를 조율하기에 이릅니다. 자신이 차린 굿판에 저승사자를 초대함으로써 환대를 받아들이게 만들고, 그로 인해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때문이죠. 자신이 희생양으로 내세웠던 백마 또한 '굿'을 통해 원망을 은혜로 바꾸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폭력을 받아들임으로써 기존에 자신이 추구하던 삶의 방식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되지만, 그 부정을 통해 새로운 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입니다.


사마 장자만 놓고 보면, 폭력 전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폭력 이후의 삶에서 사마 장자는 타자를 향한 환대를 실천하면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폭력을 조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한 번 폭력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사마 장자는 다시 인색한 부자가 되어서 주변 사람들과 조상들을 박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조상들이 열시왕을 찾아가서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게 되고 다시 저승사자들이 사마 장자를 찾아오게 되겠죠? 그때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장자풀이>의 서사는 끝이 났지만, 여전히 타자에 대한 환대는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장자풀이>는 '고풀이'라고도 하고 '액막이'라고도 부릅니다. 고풀이는 씻김굿에서 죽은 망자(亡者)의 한(恨)을 푼다는 뜻이고, 액막이는 생자(生者)의 삶에 위협을 가하는 부정한 기운인 액(厄)을 물리친다는 뜻입니다. 한(恨)과 액(厄)은 모두 죽음의 전염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자풀이>는 죽음의 불순함을 씻어내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자풀이>는 죽음이라는 폭력을 인정하고 이를 환대해야 한다는 점, 더 나아가 폭력으로 인해 바뀔 수 있는 삶의 체제와 태도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장자풀이>는 타자를 환대했을 때 내 삶의 체제가 흔들리고 바뀐다고 해도 그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폭력을 조율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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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호,「<장자못> 전설과의 비교를 통해서 본 <장자풀이>의 인물 형상화 방식과 신화적 의미」, 『Journal of Korean Culture』36,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 2017.
신호림,「<장자풀이>의 서사적 지향과 제의적 의미」, 『한민족문화연구』57, 한민족문화학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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